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192>11장 청년장교

며칠 후 무과 시관은 전원 교체되었다. 그들이 정충신이 이항복 대감의 사가(私家) 하인 쯤으로나 여기고, 업신여긴 나머지 덮어놓고 젊은이의 의기를 꺾어버린 월권을 행사했다고 보기 때문에 덮어둘 수 없었다. 정사를 보는 데 있어서 이항복 병판 대감은 빈틈이 없었다.

“관복을 입거라.”

다음날 이항복 대감이 정충신을 불러 명했다. 헐었으나 깨끗하게 다린 의관을 정제하자 이항복이 그를 데리고 입궐했다. 군관의 몸으로 입궐하니 모든 것이 새삼스러웠다. 어전에 들어 넙죽 엎드려 예를 취하자 왕이 말없이 턱으로 정좌하기를 권했다.

“상감마마, 마마께옵서 정충신이 이천 수백리를 한달음에 달려와 장계를 올린 충정을 보시고 무척 감탄하시고, 정충신의 재조 또한 비상하다고 하셨는 바, 이번에는 무과에 방안(榜眼)급제 하였나이다.”

이항복이 아뢰자 왕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니, 장원급제가 아니고?”

“제가 그렇게 하였나이다. 건방을 떨까 싶어서 일부러 그렇게 조처하였나이다.”

이항복은 여러 말 하기가 귀찮아서 그렇게 응답했다.

“에이, 그것도 부정이로다. 그렇게 하면 어린 것이 상심이 크고, 마음으로 승복하겠느냐?”

“아니옵니다. 방안도 소신으로서는 영광이옵니다.”

정충신이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답했다.

“그래? 어린 사람이 벌써부터 깊은 도량이구나. 정충신은 과인 곁에 있어야 하느니라. 용호영 좌초(左硝)의 초관(哨官)으로 임명하면 어떻겠는가? 과인은 늘 좌초를 지나 통군정에 오른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항복과 정충신이 동시에 외치고 머리를 조아렸다. 열여덟 소년 장교가 졸지에 근위병 중에서도 가장 지근거리에서 왕을 모시는 초관으로 임명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첫 벼슬자리에서 얻은 보직이라서 주변을 놀라게 할만 했다.

용호영은 국왕을 호위하는 친위군영이었다. 우수한 무관들로 구성되어 조선시대 무재(武才)를 시험하여 인재를 등용하는 시취(試取)들이 모인 곳이었다. 금군청(禁軍廳)이라고도 불리는 용호영은 조선조 초기 국왕의 친위군으로 창설됐다. 금군청의 금군(禁軍)은 내금위(內禁衛)·겸사복(兼司僕)·우림위(羽林衛)의 3위가 설치되어 각각 200명 내외의 군원이 왕을 호위하고 3명의 장(將)이 이들을 지휘했다. 반란을 일으키려 해도 용호영(금군청)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음심을 품을 수가 없다는 막강한 군사조직이었다. 금군의 우수한 자는 용호영 내의 당상군관·교련관, 외방의 무관직과 각 군영의 무관직으로 진출하는 이른바 무관으로서 출세의 대로(大路)였다. 환도 후 도성에서는 인정전, 월랑(月廊:큰 궁궐의 연결된 건물들)의 입직, 도성 8문 등을 비롯한 요소요소에 분배입직(分配入直)했다. 왕이 다시 말했다.

“적간(摘奸)도 행하렸다!”

“네?”

무슨 뜻인지 몰라 정충신이 묻자 이항복이 나섰다.

“상감마마께서 하교를 내리실 때는 반문하는 법이 없다. 바짝 정신 차려야 하느니라. 적간이란 대궐 주변에서 난잡한 행동이나 부정한 일을 하는 자를 조사하고 적발하는 역할을 말함이다. 행재소가 어수선한 틈을 타 불한당들이 기웃거린다, 알겠느냐.”

그러자 왕이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그렇게 나무라면 되겠느냐. 나는 볼수록 소년 군관이 호두알처럼 단단해보인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두 사람이 똑같이 복창했다. 다음날 정충신은 좌초의 초관으로 복무했다. 어느날 젊은 패거리들이 초소를 기웃거렸다.

“너희들 뭣이여?”

정충신이 군호를 묻고 그들 행동을 정지시켰다.

“뭣이여, 라니? 이게 안봬나?”

한 놈이 자기 군모에 부착된 군표를 손으로 가리켰다. 군모에는 명군의 것인지, 북방 똘마니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손톱만한 철제 표딱지가 빼뚜름하게 부착되어 있었다.

“나는 몰겄다. 여기서 얼쩡거리지 말고 길 밖으로 나가!”

정충신이 눈을 부라리자 덕대 큰 자가 물러서지 않고 대꾸했다.

“너희놈들이 뭐간대 오라마라 야단이야? 꼴을 보니 패잔병 그대로구만!”

“뭐라는 것이여? 여긴 궁궐이여!”

“여기가 궁궐이라면 우리집 해우소는 황궁이다야.”

“이 새끼가 뭐라는 거여.”

정충신이 그 자의 멱살을 쥐어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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