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20)‘과치재-선돌고개’ 구간(2019. 3. 30)
새벽공기 벗삼은 정맥길…연산이 ‘이리오라’ 손짓
'호복히'<넉넉히> 내린 봄비에 진달래 만개…온갖 수목들 이파리 내밀어
방아재서 작은 무명 고개 오르내리자 펑퍼짐한 ‘만덕산’ 닿아
산행 1년 만에 ‘호남정맥 중간지점 231km’ 통과해 감개무량

밤새 내린 봄비를 맞은 진달래가 호남정맥길에 물기 머금은 채 만개해 있다.

오후에 인재육성아카데미 행사가 있어서 7시에 친구를 만나 과치재에서 선돌고개까지 약 10km를 걷기로 했다. 등산 초입지인 과치재는 호남고속도로 옥과 IC에서 옥과 쪽으로 좌회전한 다음 첫 삼거리에서 또 좌회전하여 3∼4분 가면 언덕배기에 신촌주유소와 골동품 경매장이 나오는데 그곳이 과치재다.
7시 30분경 과치재에 닿았는데 고속도로를 지하도로 건너야 하기 때문에 실제 등산은 8시에야 시작되었다. 신촌주유소 뒷길로 해서 오른쪽으로 200m 정도 가서 지하도를 통과한 다음 다시 왼쪽으로 돌아와 철계단 길을 올라서 왼쪽으로 몇십 미터 가면 340고지에 오르는 정맥 길이 시작된다.
밤새 호복히(넉넉히) 내린 봄비로 진달래는 물기를 머금은 채 만개하였고, 온갖 수목들이 자그마한 이파리들을 내밀려고 용을 쓰고 있다. 깨끗한 새벽공기를 마음껏 들이키며 340고지로 오르는데 동네 야산이 그러하듯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초벌 땀이 이마를 적시고 나서야 겨우 340고지에 올랐더니 능선 너머 연산이 이리 오라고 손짓한다.
340고지에서 연산까지는 평이한 오르막길이다. 능선을 따라서 조금씩 고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거의 힘이 들지 않는다. 진달래꽃들의 환영 속에 55분 만에 연산(505m) 정산에 닿았다. 큰 나무 옆에 잔뜩 달린 리본들이 우리를 반길 뿐 숲이 우거져 주위 경관은 볼 수 없다.
연산을 지나 460고지부터는 방아재를 향하여 상당한 내리막길이 계속되어 10여분 만에 방아재에 닿게 되었다. 담양 대덕면에서 곡성 오산면으로 통하는 이 고개는 포장도로이지만 지나가는 차는 거의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한가한 고개다.

담양 만덕산 정상인 할미봉 표지석과 필자. 할미봉에서 20분쯤 내려가면 호남정맥 중간지점을 만난다.

방아재에서 350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금성범씨 선산이 잘 조성되어 있다. 제일 아래에 전남대 학장을 지낸 범대순 교수님의 묘비가 있는데 묘비에 “잘 가거라 白紙여, 그리고 돌아보지 마라”는 시구가 새겨져 있다.
390봉을 넘은 다음 정맥은 조그만 무명고개를 다시 내려갔다가 500고지를 향하여 솟구치며, 500고지 다음에는 평평한 육산이 펼쳐져 있는데 이곳이 만덕산이다. 친구 얘기로는 옛날에 창평대대에 예비군 훈련을 오면 이 산을 오르곤 했다고 한다.
만덕산은 이름처럼 덕을 갖춘 펑퍼짐한 산이며, 정상인 할미봉(575m) 바로 아래에는 1835년생인 분의 산소가 모셔져 있다. 만덕산 오르는 길에 전라도 산꾼인 ‘문규한’씨의 리본이 보인다. 우리나라 4대 산꾼으로 꼽히는 백계남씨도 고인이 되었다는데, 아직도 가끔씩 017 핸드폰번호가 적힌 백계남씨의 리본도 정맥 길에 보인다. 사람은 가고 그가 남긴 리본만이 그가 세상에 존재했었고, 그 산을 다녀갔음을 알리고 있다.
만덕산에서 10여분을 순탄한 길을 따라 내려오니 담양군에서 세운 팻말에 ‘만덕산 60m’라고 잘못 새겨져 있다. 누군가 그 옆에 검은 매직으로 ‘920m’라고 써놓았다. 600m로 써야 할 것을 페인트공이 잘못 썼음이 틀림없다. 그나마 담양군이 지자체 중에서는 제일 호남정맥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는 눈치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위험한 구간에 밧줄이라도 설치하고, 2km 정도마다에 표지판 하나쯤 설치해 주었으면 좋겠다.
만덕산에서 20여분 내려온 지점에 ‘호남정맥 중간지점 231km’라고 쓰여진 스테인리스 표지판이 서 있다. 북위 35˚, 동경 127˚의 호남정맥 중간지점에 산행 시작한 지 1년 만에 닿은 셈이다. 벚꽃 위에 봄을 시샘하는 눈이 내리던 날 장안산을 올랐었는데, 다시 내 사무실 앞에 벚꽃이 만개하는 봄날에 중간지점을 통과하게 되니 감개무량하다.

호남정맥 종주를 동행하는 친구가 호남정맥 중간지점에 도착한 뒤 기뻐하는 모습. 호남정맥 산행을 시작한 지 1년만에 중간지점에 닿았다.

중간지점을 지난 정맥 길은 수양산 쪽으로 방향을 잡아 2km쯤 능선 길이 계속되는데, 수양산 정상을 왼쪽에 두고 선돌고개 쪽으로 우회전하여 내려가게 된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593고지인 수양산을 올라가 보고 싶으나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 주려 죽을진들 채미도 하난 것가. 비록애 푸새앳 것인들 그 뉘 땅에 났나니”라는 성삼문의 시조를 읊조리는 것으로 대신하고 선돌고개로 하산하기로 했다.
수양산 갈림길에서 10여분쯤 가파른 길을 내려오니 마을 길이 나오고 이어서 자그마한 선돌이 서 있는 선돌고개에 12시쯤 닿았다. 이곳은 행정구역상 담양군 대덕면 입석리인 모양인데, 새로 지은 멋진 전원주택들이 정맥 길옆에 즐비하다. 선돌고개에서 ‘창평 개인택시(061-383-5500)’를 전화로 불렀더니 10분도 안되어 기사님이 도착한다.
10km가 안 되는 구간이었지만 진달래꽃들의 향연 속에 봄비 뒤끝의 맑은 공기를 마음껏 즐긴 반나절의 산행이었다. 다음에 갈 구간 초입지가 반대편 오른쪽 산기슭임을 확인하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글·사진=강행옥

수양산 자락 마을에 세워진 선돌.
수양산의 춘란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