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22) ‘유둔재-어림고개’ 구간 (2019. 4. 20)
신선대서 바라본 무등산, 누에봉·천왕봉 능선이 한 눈에
산행 출발길 만개한 산벚꽃들 순백의 청순함 뽐내며 반겨
북산 정상엔 너덜들 쌓여… 먼 옛날 무등산 화산 폭발 흔적
낙타봉 지나 무명봉우리 넘자 안양산 봉우리 코앞서 손짓

신선대에서 바라본 무등산. 누에봉 능선과 천왕봉 정상이 장불재와 안양산 능선까지 거느린 장엄한 모습이다.

손꼽아 기다리던 무등산 구간을 지나는 날이다. 설레임에 새벽 4시에 일어나 6시에 조식을 먹고 한참을 뜸들이다가 8시에 집을 나섰다.

유둔재는 지금은 가사문학면으로 이름이 바뀐 담양 남면 소재지에서 유둔재 터널 쪽으로 올라가다가 터널 1km 전방쯤에서 우측의 옛날 도로로 빠져서 올라가면 닿는다. 9시에 유둔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국립공원 무등산 구간이라서 그런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커다란 탐방로 안내표지판도 서 있는데, 구자창, 저삼봉을 거쳐 신선대가 있는 북산(777m)으로 가는 오전 산행 코스가 잘 안내되어 있다.

고도가 높은 곳이라 산벚꽃도 이곳에서는 막 만개하여 순백의 청순함을 뽐내고 있다. 잡목이 일체 없고 군데군데 야자껍질로 만든 덕석이 깔린 길을 걸으니 다리가 편안하다. 20여분만에 420봉을 넘고 또 10분만에 자창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구자창 고개에 이르렀다. 자창마을에 만개한 벚꽃나무는 엄청 커서 혼자서 온 마을을 하얗게 밝히고 있다. 구자창에서 바로 올려다 보이는 저삼봉에 이를 무렵 앞서가는 산꾼을 만났다. 50대로 보이는 산꾼과 이런저런 산 얘기를 나누며 동행을 하게 되었다. 위 분도 트랭글을 켜고 진행하는 통에 핸드폰에서는 안내메시지가 자주 흘러나온다.

30여분의 동행 끝에 무돌길이 지나는 백남정재에 닿아 잠시 쉬면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는데, 위 분은 무돌길을 1박2길로 완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나는 무돌길을 김홍빈 대장 따라서 한나절 걸은 일이 있는데, 시간이 나면 무돌길도 종주 한번 해야겠다.

무등산 철쭉과 정상.

백남정재에서 북산까지는 약 350미터의 고도를 거의 직선으로 오르는 가파른 길이다. 북산 정상에는 너덜들이 쌓여 있는데, 먼 옛날 무등산 화산이 폭발할 때 이곳도 오름 중 하나였음이 틀림없다.

산행시작 두시간 반만에 북산 정상에 닿았다. 정상에는 통신 중계탑이 하나 서 있을 뿐 흔한 정상석 하나가 없다. 발바닥 통증이 있어서 속도가 느린 산꾼과 이곳에서 헤어져 다시 단독산행을 시작하면서 속도를 높였다. 오늘 어림고개까지 가려면 겨우 4분의 1을 온 셈인데 시간을 너무 썼다.

곧바로 10여년 전 가끔 야등을 하면서 라면도 끓여 먹었던 신선대를 지났다. 북산 바로 50m 아래에 신선대가 있다. 신선대 정상 바위 위의 무덤은 그대로이다. 누군가가 돌보는지 항상 잔디도 깨끗하다.

신선대 쪽에서 보는 무등산은 누에봉 능선과 천왕봉 정상이 장불재와 안양산 능선까지 거느린 장엄한 모습이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도 이러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산은 만나지 못했다. 강원도의 1,300에서

백남정재 이정표와 필자.

1,500고지 산들은 고개 자체가 높아서인지 전라도의 600고지 산보다 낮아 보인다.

증심사 쪽 주차장이 해발 100m라서 무등산은 서석대만 올라도 꼬박 1,000m 고도를 올라야 하는 산이다. 나는 줄곧 무등산이 우리나라에서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라고 주장하는데, 산행기점인 재에서 1,000m 이상 올라가는 산은 대한민국에 극히 드물다.

꼬막재에서 장불재로 가는 무등산 순환등산로에 다다르니 25도를 웃도는 기온에 땀이 범벅이 된다. 길에 깔린 덕석 위에는 샛노란 양지꽃들이 무더기로 피어나 있다.

무등산 순환로에는 맞은편에서 오는 등산객들이 가끔씩 보인다. 시무지기 폭포로 내려가는 삼거리를 지나 광석대가 우뚝 솟은 규봉암에 닿으니 12시 30분이 되었다. 규봉암에서 잠깐 목을 축이고 지공너덜을 거쳐 석불암에 닿았다. 석불암 약수터에서 약수를 두 바가지 마시고 수통에도 전부 가득 채웠다. 석불암 약수는 근동에서 소문난 석간수로서 이 물로 차를 끓여 마시면 그렇게 차 맛이 좋다고 한다.

유둔재에서 시작한 산행길에 만난 산벚꽃들.

이왕 늦은 김에 점심은 장불재에서 하기로 마음먹고 속도를 내니 1시가 막 넘어 데크로 된 식탁이 놓인 장불재 안부에 닿았다. 찬 약수에 말아서 밥 한 공기를 먹고 있는데 왠 분이 앰프시설을 지게에 지고 간다. 누군가 했더니 바로 뒤에 스님 한분이 짐을 잔뜩 지고 따라오신다. 법명이 관묵(觀默)이라는 위 스님은 자기가 비어 있던 석불암에 기거하게 되었다면서 처음 보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스님에게 내가 걷고 있는 호남정맥에 대해서 설명드렸더니, 언제든지 석불암에 차 한잔 하러 오시고 자고 가도 된다고 하신다. 드디어 나도 무등산에서 묵어 갈 곳과 아는 스님이 생겼으니 호남정맥이 맺어 준 귀한 인연임이 틀림없다.

1시 40분경 장불재를 통과하여 통신시설이 잔뜩 있는 군부대 옆을 지나 안양산 방향으로 향하였다. 이곳에는 뒤늦게 만개한 진달래꽃이 군데군데 산을 빛내고 있다. 아직 봄이 오지 아니한 장불재 위의 무등산도 위 진달래꽃 뒤에 있으면 화사한 봄이다.

안양산 정상 표지석.

해발 936m의 낙타봉을 지나 작은 서석대처럼 보이는 무명봉우리를 넘으니 밋밋한 안양산 봉우리가 코앞에서 손짓한다. 해발 853m의 안양산은 그 자체로는 밋밋한 억새밭이다. 가을철이면 이곳의 억새가 하얗게 능선을 뒤덮어 장불재에서 안양산에 이르는 능선의 별칭이 ‘백마능선’이다.

오후 3시 반에 안양산 정상을 통과하여 안양산 자연휴양림이 있는 둔병재를 향하여 하산을 시작하였다. 앞서 가던 산꾼 셋이 내 부산한 발걸음을 눈치 챘는지 길을 양보해 준다. 5∼6년전 이 지역 중학생들을 인솔하여 기 살리기 훈련한다고 인재육성아카데미 동행회원들과 위 안양산을 거꾸로 넘은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그때 참가한 중학생이던 강의준 목사님 차남 정한군은 벌써 서울대 2학년에 다니고 있으니 세월이 참 빠르다.

3시가 넘어서 둔병재에 닿았는데, 다행히 도로를 건너지 않고 출렁다리를 통해서 정맥 길이 이어진다. 안양산 휴양림에는 편백숲이 잘 가꿔져 있는데, 출렁다리를 지난 편백숲에서 계란을 두 개 까먹으니 조금은 기운이 난다.

다시 힘을 내서 10여분을 숨을 헐떡이며 오르니 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나오는데 그 뒤로 보이는 604고지까지는 아직도 까마득하다. 자꾸만 둔병재에서 끊어가고 싶은 유혹을 뒤로 하고 604고지에 닿으니 한낮의 태양의 열기가 온 몸을 휘감는다.

계절의 여왕 5월이 되기 전에 25도의 높은 온도를 맛보다니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분명하다. 604고지를 넘고 나니 이제부터는 밋밋한 능선이 계속된다. 잔잔한 능선을 따라 갓 피어난 철쭉도 즐기면서 ‘준·희’가 ‘625.1m’라고 적어 놓은 지도상 622고지를 넘어 서니 이제 산행도 막바지에 다다른다.

그런데, 오른쪽 능선에 석산을 개발하는 것인지 온통 산을 파헤치고 무너뜨려 놓은 광경이 하루 동안의 힐링을 망치고 있다. 애써 그곳을 외면하면서 능선을 따라 630봉에 이르니 왼쪽으로 어림고개로 통하는 임도가 나 있다. 나는 굳이 정맥 길을 고집하느라 잎이 돋기 시작한 산딸기나무와 씨름하며 대밭까지 통과하여 어림고개로 내려왔는데, 그냥 위 임도를 통해 어림고개로 내려오는 편이 나았겠다.

오후 4시 30분경 산행을 끝내고 화순 이서면에는 택시가 없다고 하여, 화순읍 만연택시(061-371-8559)로 전화하여 택시를 불렀다.

무등산의 진면목을 종일 만끽한 길고 즐거운 하루 산행을 유둔재에서 차를 회수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글·사진=강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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