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28)‘갑낭재-봇재’ 구간(2019. 6. 22)
‘작은산’ 올라서니 보성·장흥 땅이 한눈에
바위길·바람과 씨름 끝에 제암산 멋진 바위 봉우리 만나
곰재 ‘가족바위’, 부부-아이 손 맞잡은 모양에 애틋함 절로
일림산 서자 일망무제 조망…중턱엔 보성강 발원지 ‘선녀샘’

작은산 정상 바위와 산 아래 능선들. 보성·장흥땅이 다 굽어보인다.

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6시 30분에 갑낭재에 도착하였다. 갑낭재는 도선국사가 관산덕론기에서 지형이 보검출갑(寶劍出匣)의 형국이라서 갑낭치(匣囊峙)라 불렸는데, 이후에 감낭재로 발음이 변하면서 표준말로 감나무재, 시목치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갑낭재에 서 있는 호남정맥 안내표지판에는 제암산까지 거리가 5.2km, 사자산까지는 또다시 3.8km라고 적혀져 있다.

갑낭재에서 10여분을 올라가니 오른쪽에 소공원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아마도 옛날에는 이곳이 갑낭치가 아니었을까 추정해 본다.

멍석이 깔려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20여분 만에 올라간 소공원에는 로타리클럽에서 비치한 바퀴모양 탁자가 놓여 있다. 날은 금방 큰 비가 올 것처럼 흐리나 안개가 끼어서 시원하기 그지없다.

갑낭재가 해발 220m라서 소공원 위의 ‘작은산(679m)’까지도 꽤나 심한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다만 군데군데 멍석이 잘 깔려 있어서 등산화 바닥에 딱 붙어서 오르기가 편하고 안전하기도 하다.

등산시작 1시간이 지나 ‘작은산’에 오르니 보성과 장흥 땅이 다 굽어보인다. ‘작은산’은 제암산보다 작다는 뜻에서 이름지었는지 몰라도 근처를 아우르는 크고 높은 산이다.
 

제암산 정상 표지석
일림산 정상 표지석

‘작은산’부터는 가파르지는 않지만 꽤나 험한 바위길이 이어진다. 40여분간 안개 속에서 바람과 씨름하다 보니 드디어 제암산의 멋진 바위 봉우리가 나타난다. 일주일 전 제암산 휴양림에서 인재육성아카데미 회원의 밤 행사를 하고 다음날 트래킹으로 올라 온 봉우리를 다시 만난다. 비록 단독산행이라 일주일 전처럼 정상에서 마실 막걸리와 족발 안주는 없지만, 지난주를 회상하며 제암의 멋진 모습을 사진 찍는 것으로 대신했다.

제암산에서 곰재 쪽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우측에 가족바위가 있다. 부부가 아이와 손을 맞잡은 모양의 바위가 너무 애틋하다. 제암산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는 곰재를 지나 맨 먼저 만나는 봉우리는 ‘제암산 철쭉평원’이란 표지석이 서 있는 630고지다. 위 길은 20년 전 우성정공 박화석 사장님과도 걸었고 보리수산악회 따라서도 종주했던 천상화원의 철쭉 군락지이다. 일림산에 철쭉을 인공적으로 식재하기 전에는 곰재에서 사자산까지의 구간이 제일 멋진 철쭉 군락지였다.

비를 걱정하여 발걸음을 잽싸게 놀렸더니 10시 정각에 사자산 미봉(706m)에 닿았다. 사자산 두봉은 장흥읍 쪽으로 뻗어 있는데 이는 사자지맥으로 불리고 호남정맥은 아니다.

호남정맥은 사자산 미봉에서 왼쪽으로 삼비산이라 불리는 첫 번째 일림산을 향하여 계속된다. 표지판에 삼비산으로 쓰여진 것이 헷갈려 폐타이어가 깔린 계단 길을 두 번 오르락내리락 한 것을 빼곤 전혀 알바 없이 11시 20분경 골치사거리에 닿았다.

골치사거리에서 임도를 걸어서 용추폭포 쪽으로 가면 포장도로가 나오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아 골치에서 하루코스를 끊어가기에는 골치가 아프겠다. 골치사거리에서 한참을 올라가니 작은 골치산이 나오고 다시 10여분을 오르니 해발 610m인 큰 골치산 정상이 나온다. 벌써 11시 40분이 되었길래 골치봉 정상의 데크 위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12시경 첫 번째 일림산 정상으로 향하는데 정상 200m 아래에서 오늘 처음으로 등산객을 만났다. 이분은 용추폭포 쪽에서 올라왔다고 한다.
 

가족바위

일림산 정상에 12시 14분에 올라보니 660m라는 높이에 어울리게 일망무제의 조망을 볼 수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서 급히 사진을 찍고 626고지로 향했다. 일림산에서 두 번째 일림산이라고 불리는 626고지로 향하는 곳에 보성강 발원지를 알리는 안내표지판이 서 있다.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정맥 길에서 벗어나 200m를 용추폭포 방향으로 내려가니 ‘선녀샘’이라는 보성강 발원지 샘이 나타난다.

일림산 중턱 540고지에 위치한 위 선녀샘에서 발원한 보성강은 용추폭포를 타고 보성군 웅치면, 장흥군 장평면, 보성군 노동면, 보성읍, 미력면을 지나 보성댐에 이르고 그 뒤로 다시 주암댐을 지나 곡성 압록에서 섬진강 본류를 만날 때까지 300여리를 흘러가게 된다. 곡성 쪽에서는 대황강이라고 부르는 보성강은 우리나라에서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유일한 강이다. 선녀샘의 차고 맑은 물을 잔뜩 마시고 수통에도 한통 가득 채우니 오전 나절의 긴 산행에 지친 심신에 기운이 솟는다. 옛부터 장가 못간 노총각들은 선녀샘에서 기도를 하면 선녀같이 예쁜 각시를 얻게 된다니, 다음에 낙수나 슈렉도 데리고 한번 더 와야겠다.

선녀샘에서 해찰하다가 두 번째 일림산인 626고지를 12시 50분이 넘어 지났고, 아미봉이라 불리는 416봉에는 오후 1시 35분경 다다랐다. 그곳부터 한치재를 향해 계속 내려가다가 아스팔트 도로인 한치재에 다다랐는데, 정맥 길은 포장된 도로를 따라 삼수마을까지 2km를 이어진다. 뙤약볕에 도로에서 올라오는 열기를 참아가며 들판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더니 정맥 길은 삼수마을을 오른쪽으로 뒤돌아 나가 언덕 정상에서 비로소 활성산을 향해 이어진다.
 

보성강 발원지 ‘선녀샘’ 표지판.

이곳에는 보성군에서 ‘삼수길’이란 둘레 길을 조성해 놓았는데, 활성산까지는 정맥 길을 따라 조성되어 있어 삼수길을 따라 오르면 된다. 활성산을 200여 미터 앞두고 휴대폰 배터리가 다 되어 휴대폰을 끄다 보니 트랭글도 여기에서 기록을 멈춘다. 트랭글 기록으로는 그때까지 21.9km를 시속 2.9km로 걸었다고 나온다. 지친 몸을 이끌고 활성산 삼거리에 이르러 활성산 정상 등정은 포기하고 우측으로 봇재 쪽으로 이어지는 하산 길에 이른다. 활성산 삼거리에서 봇재까지 1.6km 정도의 완만한 하산길을 지났더니, 차밭이 잘 가꾸어져 있는 봇재가 나타난다.

오후 3시 30분에야 봇재에 닿아 장흥 장평택시(061-862-0044)로 전화를 하여 귀가 길에 올랐다. 도상거리 25km가 넘는 길을 9시간 동안 단독 종주하면서 제암산, 일림산의 품안에서 즐긴 하루였다. 글·사진/강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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