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구자의 땅 연변에 서려있는 민족의 애환”

“선구자의 땅 연변에 서려있는 민족의 애환”
◇2019 동북아평화탐방단 중국 동북3성 항일유적지를 가다
(하)평화의 길 통일의 꿈
봉오동·명동촌·일송정 등 독립운동 역사 오롯이
윤동주 시인 생가에서 시비 보며 ‘삶·문학’ 느껴
두만강 건너 북한 바라보며 평화·통일 중요성 실감
 

동북아평화탐방단 학생들이 용정 3·13 반일의사릉을 찾아 참배하며 묵념하고 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흘러간 그 옛날에 내님을 싣고/떠나던 그 배는 어디로 갔오/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님이여/언제나 오려나~’

두만강을 건너 항일투쟁에 참여했다 총살당해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그리워 한 아내의 사연이 담겨있다고 한다.

동북아평화탐방단 학생들은 일제강점기 1938년 발표된 민족가요 ‘눈물젖은 두만강’을 들으며 두만강 북중접경을 바라봤다. 물은 푸르지 않았다. 멀리 북한 주민이나 경비병을 보았다며 “저기! 저기!” 손으로 가리키기도 했다. 두만강 광장에 전망하는 장소를 제외하고는 북중접경에 철조망 공사가 한창이었다. 을사늑약으로 시작된 민족사 비극은 아직 두만강처럼 탁하게 흐르고 있었다. 2019 동북아평화탐방단 여정은 백두산 천지를 지나 5일차 연변·도문·용정 등 항일 독립운동 유적지로 이어졌다.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전투 기념비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들은 독립운동을 위해 압록강과 두만강 국경을 넘어 만주나 간도로 이주했다. 동포들이 가장 먼저 터를 잡은 곳이 조선족자치주가 있는 중국 길림성이다. 조선족자치주는 길림성 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52년 9월 3일 성립됐다. 주요 행정구역은 연길, 도문, 돈화, 용정 등으로 인구는 218만명이며 이중 36%정도가 조선족이다. 연길은 인구 52만명(2008년 기준)으로 조선족이 58.4%, 한족이 39.4%다. 시내 곳곳에 한국어 간판이 즐비해 중국풍 한국도시 같은 착각을 들게 했다.

탐방단은 9월 10일 오전 연길에서 두만강 북·중 접경도시인 도문으로 이동했다. 도문은 지난 1920년 홍범도·안무 장군 등이 이끄는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추격대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봉오동전투 기념비’가 있는 곳이다. 이동 중 잠깐 들른 봉오동 전투 현장과 기념비는 영화 ‘봉오동전투’ 개봉과 한·중 관계 악화 등으로 중국 당국의 통제가 강화된 상태였다. 탐방단은 봉오저수지 경계에서 기념촬영 후 멀리 보이는 전적지를 살피는 데 만족해야 했다.
 

윤동주 시인이 태어나서 15살까지 살았던 길림성 용정 명동촌에 있는 생가.

▶독립운동의 역사 살아숨쉬는 용정

탐방단은 봉오동 전투 유적지에서의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한 채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이 오롯이 자리해 있는 ‘용정’으로 방향을 틀었다. 용정은 인구 26만명의 소도시지만 전체 인구 중 조선족 비율이 67%로 압도적으로 높고 두만강을 건너 우리 동포들이 터를 잡고 개척한 대표적 지역이다.

용정 곳곳에는 우리 민족의 사연과 애환, 역사가 살아숨쉬고 있다. 또 가곡 ‘선구자’로 알려진 일송정과 해란강이 있으며 시인 윤동주의 고향으로 그의 무덤이 있다.

버스에서 내린 도문 두만강 북중접경에선 북한이 지척이었다. 강변 철조망에는 ‘비법월경을 금지한다’는 붉은색 팻말이 선명했다. 해방 후에도 두만강을 건너 북한과 중국을 크게 어렵지 않게 왕래하던 시절도 상당 기간 있었지만 현재는 갈수록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는 현지 가이드 설명이다.
 

윤동주 시인 생가

이어 방문한 곳은 명동학교옛터기념관과 윤동주 시인 생가. 명동학교는 1908년 명동촌에 세워져 일본 탄압 등으로 1925년 폐교되기까지 17년간 1천200명이 넘는 독립운동가·민족교육자·애국청년을 배출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윤동주, 문익환, 송몽규 등도 명동학교를 다녔다. 당시를 재현한 교실에는 실제 명동학교 학생들이 배웠던 교과서가 함께 고증돼 꽂혀있었다.

윤동주 생가는 명동학교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시인이 15살까지 살았던 곳으로 ‘별 헤는 밤’ 등 시를 통해 그리워 한 북간도의 집이다. 대지 990㎡에 외양간 등이 실내에 있는 함경도 전통가옥의 본채와 별채가 그대로 복원돼 관광객을 맞고 있다. 생가 내부에는 윤동주 시인의 사진과 시비 등이 있어 그의 삶과 문학을 기리고 있다.

정호종(동성고 2년)군은 “교과서로만 배웠던 윤동주 시인의 생가와 유적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며 “다시는 일제시대 같은 비극이 일어나지 않고 하루 빨리 통일이 돼서 남북이 모두 평화롭게 살고 조선족 동포들과도 자유롭게 왕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송정에서 바라본 평야. 들녘 중앙으로 해란강이 흐르고 있다.

탐방단은 이후 용정시 중점 문화재보호단위인 3·13 반일의사릉을 참배하고 일송정으로 향했다. 일송정에선 길게 흐르는 해란강이 보였다. 끝 없이 펼쳐진 평야 한 가운데 있는 산, 그 산 정상에 정자 모양으로 커다랗고도 꼿꼿이 서있는 소나무. 멀리서도 잘 보이는 그 소나무를 보며 우리나라가 언젠가는 독립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들을 했다고 한다. 탐방단 학생들은 일송정에서 독립운동 영화를 조별로 재현하는 ‘미션’을 수행했다. 멀리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탐방단 학생들이 귀국길에 연길공항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평화와 통일로 여는 미래

2019 동북아평화탐방단의 5박6일 일정은 명동학교와 윤동주 시인 생가 등 용정 일원을 돌아보는 것으로 모든 여정이 마무리됐다.

학생들은 마지막 날 아쉬움에 밤잠을 설친 학생들이 많았다. 피곤함과 함께 학생들은 그 며칠 사이에도 성장한 듯 보였다. 학생들은 이번 탐방을 통해 분단의 현실과 중국 동북 3성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조선족 동포들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우리 선조들이 터를 잡고 뿌리내린 동북3성 일원은 지금 남의 땅이지만 그곳에 살고 있는 동포들은 우리와 같은 피와 문화를 공유한 ‘한민족’임도 확인했다. 또 하얼빈과 연길, 용정 등에서 모진 삶을 이어가고 있는 동포들과 두만강 건너 북한 산하를 바라보며 평화와 통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실감했다.
중국 연변·용정/김경태 기자 kkt@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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