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의 호남정맥 종주기 (32)‘빈계재-접치’ 구간 (2019. 8. 24)

고동산 오르자 조계산 장군봉이 어서오라 ‘손짓’

정상 조망감 ‘일품’… 금석산·제석산도 손에 잡힐듯

빈계재서 나무다리 건너 쭉쭉 뻗은 편백나무 숲속 향해

‘선암사-송광사’ 잇는 큰 굴목재엔 등산객들 북적 북적

홍수때 배를 바위에 댔다는 전설 간직한 ‘배바위’도 만나
 

배바위와 조계산 능선들. 배바위 옆으로 이어진 조계산 능선들이 시원스럽다.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에 오른 필자와 친구.
배바위 안내문. 홍수때 산들이 물에 잠기자 배를 바위에 묶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산행길에 만난 영지버섯.
고동산 정상 표지석

6시 30분에 친구를 태우고 순천시 외서면 신덕리를 네비에 찍고 출발하여 7시 30분에 예정대로 빈계재에 도착하였다. 빈계재부터는 고동산, 조계산으로 통하는 호남정맥 등산로가 잘 안내되어 있고, 길 또한 잡목 하나 없이 깨끗이 정비되어 있다.

조그만 나무다리를 건너 5분쯤 오르다 보니 쭉쭉 뻗은 편백나무숲이 나타난다. 아직 아침이슬이 걷히지 아니한 시각이라 친구는 길에서 주운 나뭇가지로 풀잎에 맺힌 이슬을 털면서 나아간다. 가끔은 거미줄이 앞을 막기도 해 나뭇가지는 매우 유용한 물건이다.

빈계재가 워낙 높은 곳에 있어서인지 상탕군산 옆을 지나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하다. 여기서부터는 500여미터의 그만그만한 봉우리들이 계속 나타나는데,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아서 산성 위를 트래킹 하는 기분이다. 하늘은 벌써 높아졌고 기온도 약간 쌀쌀한 느낌이 들만큼 많이 내려가 쉴 때는 자켓을 입어야 할 지경이다.

길이 워낙 편안하여 산행 두시간 만에 고동치에 다다랐는데 재위에는 산림청에서 ‘고동산-조계산-고동산, 16.4km’ 지도가 새겨진 안내비석을 세워 놓았다. 고동치에서 고동산까지는 1.1km인데, 고동치 우측의 낙안면 목촌리 마을쪽까지 시멘트 포장이 된 도로가 있어서 고동치를 산행 중간기점으로 삼아도 무방할 것 같다. 해발 709m의 고동산에는 20분 후인 10시경 도착하였다. 고동산 정상에는 데크로 된 탁자가 놓여 있어서 근처를 조망하면서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정맥 길 오른쪽에는 바위가 많은 금전산과 제석산이 손에 잡힐 듯 보이고, 왼쪽으로는 기상관측탑이 있는 모후산이 멀리 보이고, 바로 앞쪽으로는 6.6km 전방에 조계산 장군봉이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고동산 정상의 데크 위에서 포도와 계란 등을 간식으로 먹고 조계산을 향하여 다시 출발하였다. 고동산부터는 마치 고속도로를 지나는 것 같이 잘 정비된 길을 따라가면 되고, 고동산이 높다 보니 약간씩 내려가는 느낌마저 온다.

엊그제 큰 비가 와서인지 등산로 곳곳에 물이 흘러간 작은 수로 자국이 나 있다. 오른발 발톱이 깨지고 새로 난 부분이 아파서 조심조심 발을 디디며 1시간 만에 장안치에 도착하였다. 장안치 왼쪽으로 가면 닿는 장안마을까지는 8.7km라고 안내표지가 되어 있다. 장안치에서 20여분 걸리는 705고지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위 705봉을 넘어 다시 작은 고개가 나타나 위 곳이 굴목재인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 아니다. 하긴 굴목재에 사람 한명이 안 보일 리 없다.

다시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힘내어 오르니 이곳이 깃대봉이고 트랭글 상에는 690m라고 나타나 있다. 깃대봉을 내려가니 큰 굴목재라고 부르는 ‘선암사-송광사’를 잇는 재가 나타난다. 역시 내 예상대로 이곳에서는 점심을 먹는 부부와 가족끼리 또는 연인끼리 산에 온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근처의 보리밥집은 아직도 장사를 하는지 궁금하나 가 볼 수는 없어서 큰 굴목재 옆의 데크 탁자 위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었으니 12시에 점심을 먹는 것이 이른 편도 아닌데, 고동산에서 과일과 계란을 충분히 먹어서인지 밥 한공기를 다 못 먹고 남긴다. 앞 벤치의 아낙은 남편에게 연신 부채질을 해주고 있으면서 “누가 보면 내가 애인인 줄 알겠소. 이 나이에 나만큼 하는 사람 있소”라고 농담을 하고 있다. 나이 먹어서 부부끼리 다정한 사람들을 보면 젊은 연인들 보다 멋있고 부러워 보인다.

큰 굴목재에서 1km쯤 산길을 오르면 작은 굴목재가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장군봉까지는 0.8km이고 고도계를 보니 작은 굴목재가 해발 640m에 위치해 있다. 작은 굴목재에서 10분쯤 산을 오르니 ‘배바위’가 나타난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옛날에 큰 홍수가 나서 산들이 물에 잠겼을 때 배를 위 바위에 댔다는 전설이 있다. 아마도 소행성이 지구에 떨어져 큰 해일과 홍수가 온 땅을 덮은 사건이 수천년 전에 있긴 있었나 보다.

하긴 ‘노아의 홍수’ 얘기는 바빌론이나 수메르 점토판에도 기록이 되어 있다 하니 남도의 산 곳곳에 이런 전설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인류문명의 뿌리가 우리 민족에게 있음은 미국이 일제시대 때 한반도에서 수집해 간 콩 종자가 수천 종에 이르는 점에서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배바위 위에 올라가 조망을 보면서 사진을 찍고 다시 힘내어 조계산 정상에 오르니 역시 산꾼들이 가득 차 있다.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산꾼은 “네시간 반이나 버스를 탔어요. 너무 멀어요”라고 엄살을 부린다. 포도 몇 알을 주면서 “힘내세요”라고 격려했더니 너무 고마워한다.

정상석 위에 올라가 친구와 만세를 부르며 인증사진을 찍고 서둘러 접치로 가는 하산로로 접어들었다. 장군봉에서 연산봉으로 가는 길로 10여분 가다보면 865봉 삼거리에 접치로 가는 오르막길이 나오는데, 여기서만 주의하면 엉뚱한 길로 갈 염려는 없다. 865봉에서 접치까지는 2.7km 정도인데 그야말로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편안한 길이 이어진다. 다음에는 꼭 접치에서 산행을 시작해 장군봉에 올라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쾌적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30여분을 쾌속으로 내려 오다보니 벌써 아래쪽에서 차소리가 들린다. 호남고속도로는 접치고개 아래로 통과하기 때문에 위 소리는 지금은 국도가 되어버린 옛날 고속도로에서 나는 소리이다. 접치고개에는 늦게 피서 온 사람들이 차량을 방으로 개조해 쉬고 있다. 머리 벗어진 아저씨 한분이 “아이고 보약 한재 자셨군요”라면서 산에서 내려오는 우리를 보고 덕담을 건넨다.

오성산에 오르는 등산로를 알아두기 위해 리본을 따라 다리를 건너다보니 벌써 도착한 택시가 빵빵거린다. 오성산 등산로는 접치 2차선 옛날도로 우측에서 시작되는 것을 확인하고 16.4km의 산행을 마무리지었다. /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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