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행옥 변호사의 호남정맥 종주기

(33) ‘접치-노고치’ 구간(2019. 9. 14)

급경사 오성산 밧줄 타고 정상 오르니 평평한 풀밭

작은 표지석·산불감시초소만 덩그러니 있을 뿐

우거진 솔숲 헤매다 겨우 유치산 닿아…체력소모 커

산 높고 골 깊은 승주-순천 구간 인물 많이 날 풍수
 

‘접치-노고치’ 구간 산행길에 만난 호남정맥 능선들.
유치산 정상을 향하는 길에 만난 솔숲.
오성산과 조계산 갈림길을 안내하는 접치재 이정표.
희아산 정상.
유치산 정상 표지석
유치산과희아산을 안내하는 노고치 이정표.

추석 연휴기간 술에 찌든 몸을 이끌고 9시 20분 오성산 등산로 입구에 닿았다. 오늘은 어쩔 수없이 단독산행이다. 다리를 건너와 구 도로에 있는 오성산 등산로 입구에는 주암산악회에서 꽤 큰 안내표지판을 세워 놓아 산행기점을 찾기가 쉽다.

막 떨어지기 시작하는 알밤을 주우며 잘 정비된 길을 따라 오성산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이미 이슬도 걷힌 시각이지만 군데군데 거미줄이 앞길을 막는다. 오성산(606m)은 강원도에서 군생활 할 때 상황보고시 매일 듣던 이름이다. 적근산, 대성산과 달리 북쪽에 있어 ‘적 오성산’으로 불리운 오성산은 갱도화 진지가 구축된 요새지이다. 언젠가 팀스피리트 훈련 시 우리 사단이 오성산 밑으로 행군하다가 워게임에서 ‘사단 전멸’이란 판정을 받고 말았었다. 기동로를 요새화 진지 밑으로 잡았으니 다 몰살할 수밖에.

이런저런 헛생각을 하며 오성산에 오르는데 나온 술 배로 인해 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거기다가 오성산은 급경사로 이루어져 마지막에는 등산로에 설치된 밧줄에 의지해서 올라야 했으니 겨우 1시간이 지나서야 오성산 깃대봉에 닿았다. 정상에는 50cm 정도의 정상석과 산불감시초소만 덩그러니 있을 뿐 평평한 풀밭이다.

오성산은 올라올 때도 급경사였지만 내려가는 길도 심한 경사로 이루어져 있다. 한참을 내려와 이름 없는 재를 넘은 다음 390봉 두 곳과 460봉까지는 그런대로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어서 이미 초벌 땀을 흘린 체력으로 비교적 쉽게 넘었다.

그러나 웬걸 474봉으로 오르는 곳부터 정맥 길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한발만 옆으로 가도 정글숲이다. 천신만고 끝에 474봉까지는 올랐는데, 이번에는 유치산으로 통하는 등산로가 보이지 않는다. ‘J3’ 리본을 옆에 두고 30여분을 미로에 갇힌 사람처럼 헤매다가 우거진 솔숲 사이에 달린 리본을 겨우 발견하였다. 여기는 솔숲이 가로막고 있어서 아무리 보아도 육안으로는 등산로 같지 않다. 등산로는 겨우 찾았지만 발바닥을 살피지 않으면 길이 끊어지는데다 계속해서 소나무와 산딸기나무가 길을 막고 가끔 칡넝쿨도 발을 건다. 엄청난 체력소모를 겪으며 거의 세 시간 만에 유치산에 닿았다.

1시간 30분 예상한 거리를 세 시간이 걸려서 도착하는 통에 체력은 이미 급속도로 저하된 상태이다. 유치산에서 20여분 거리에 있는 닭재고개는 닭봉으로 오르는 길에 있어서 도대체 고개라기보다는 중간 봉우리로 느껴진다. 닭재를 중간에 끊어가는 지점으로 선택하는 것은 접근로가 나빠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닭재고개에서 닭봉(739m)까지도 심한 오르막이 계속되어 결국 오후 2시 40분경에야 닭봉에 닿았는데, 이미 송치까지 가는 것은 포기한 지 오래이다. 그래도 중간 중간에 생질과 아들, 그리고 최영호 전 남구청장 등 여러 사람이 명절인사를 전화로 하는 통에 심심하지는 않다.

이왕 늦은 김에 희아산 정산에 들렀다가 노고치에서 오늘 산행을 끝내기로 하고 희아산으로 향하는데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지만 꽤나 힘들게 오르막을 거쳐서 정상이 그 품을 허락한다.

트랭글상으로는 희아산이 800m가 넘는 고지로 나온다. 희아산에서 다시 닭봉으로 하산하여 10여분을 다시 배틀재로 내려오니 키가 큰 통신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다. 배틀재에서부터는 완만한 경사의 작은 봉우리들이 계속되는데, 지도와는 달리 마지막에 닿은 ‘훈련봉’은 트랭글상 659m로 나온다.

오성산부터 이름이 범상치 않더니 마치 군대에 다시 온 듯 훈련봉을 만나다니. 여경으로 막 훈련을 시작한 둘째 딸아이가 왔어야 하는 코스다. 60을 석 달 앞둔 내가 갈 길은 아니다. 며칠 동안의 과음은 탓하지 않고 험한 산만 탓하며 오후 4시 40분에야 노고치에 닿았다. 주암 개인택시에 전화했더니 노고치의 위치를 잘 모르시는데, 나중에 보니 ‘고지마을’이란 생태마을을 순천시에서 노고치 바로 아래에 조성해 놓아서 고지마을이라고 해야 안단다.

온통 군사용어에 시달리며 험한 산길을 걸었지만, 사실은 조계산부터 깊어진 승주와 순천의 산자락의 경치에 함몰되어 하루를 잘 즐겼다. 지금까지 지나온 호남정맥 중 위 구간이 산이 깊고 골도 깊어서 아마도 큰 인물이 많이 나올 풍수이다. 택시기사님께 그 얘기를 했더니 이쪽에서 국회의원이 여러 명 나왔고, 닭재 너머 곡성 목사동면에서는 이정현 의원도 나왔다니 내 얼치기 풍수가 맞았다. 다음 주에는 노고치에서 송치까지 쉬엄쉬엄 가야겠다. /글·사진=강행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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