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사회에 행복한 개인은 없다
이정희(한국전력공사 상임감사위원 )
 

“입시를 위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10대는 ‘재미’가 없다. 대입 전보다 더 취업공부를 하고 있는 20대는 ‘미래’가 없다. 30대는 ‘집’이 없다. 40대는 ‘돈’이 없다. 50대는 ‘일’이 없다. 노인 빈곤률과 자살률이 OECD에서 1위인 나라에서 60대 이후는 ‘모든 것’이 없다.”

경제학자 최배근 교수가 최근 저서 ‘이게 경제다’에서 한 말이다. 그가 보기에 “청년 세대는 우리 사회가 매우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금수저’와 ‘흙수저’ 표현에서 볼 수 있듯이 청년들이 보기에 우리의 현실은 출발부터 공정하지 못하고, 온갖 반칙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1996년,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린 적이 있다. 고교 졸업 후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독학으로 서울대 수석 입학한 장승수씨의 자서전이다.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렇듯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열려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개천 용’이 사라지고 있다. “10년간 4년제 대학 진학률을 추적 조사했더니 고소득층 자녀는 72.9%가 진학했지만, 저소득층 자녀는 39.3%만이 진학했다.” 서울대 구인회 교수는 교육이 오히려 계층 격차를 확대시키는 수단이 되었다고 말한다.

지금 세계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불평등’과 ‘부의 양극화’ 문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10억 달러 이상 보유자 중 상속부자가 74.1%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부자가 되려면 부자의 자식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또 국토교통부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땅의 97%를 인구 10%가 소유하고 있다. 국민의 약44%는 무주택자다. 부동산 값이 오르면 가진 사람들만 이득을 보고, 양극화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장래 희망이 공무원이나 건물주라는 청년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운동장은 이미 기울어지고 교육사다리마저 무너진 상황에서 가난한 아이가 부모가 되어 가난한 아이를 낳는 것을 피할 수 없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노동해서 버는 속도보다 빠른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역설적이게도, 90년 생으로 통칭되는 요즘 젊은이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이 ‘불공정’이라고 한다. 태어날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접한 젊은 세대들은 ‘공정성’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바라는 공정은 그저 ‘노력하면 미래의 삶이 바뀔 수 있는 사회’이다. 그러나 요즘의 상황을 보면서 청년들은 좌절감과 무기력, 우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국인 저널리스트 다니엘 튜더는 대한민국을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로 표현했다. 무한경쟁시대로 접어들면서 심해지는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정신적 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불평등과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사회, 그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사람들은 주변을 돌볼 여유가 없고, 자신에게만 신경을 쓰게 된다. 그러면서 사회는 분열되고, 생산성은 낮아지고, 국력은 약화되는 것이다. 얼마 전 발생한 칠레 시위 역시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경제가 양극화되자 분노가 극에 달한 시민들이 거리에 나선 것이었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도 나 혼자 잘 살면 행복하다 할 수 있을 것인가.

문제의 해답은 ‘공존’이다. 구성원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것이 나와 내 가족이 잘 사는 길이라는 ‘공존 = 상생’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때 비로소 무너진 공동체가 복원되고, 단절된 사회적 관계망이 회복될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소득이든 교육이든,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사회적 이동성’에 대한 희망이 보장된다면, 그 사회는 미래가 있고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불평등과 양극화에 대한 해소 없이는 한국사회와 국가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또 불행한 사회에 행복한 개인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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