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76)

5부 정묘호란 1장 다시 백척간두에서 (476)

“그러면 한윤이란 놈을 대접해야 하겠군.”

다음날부터 한윤과 그 일당은 잠자리부터 달라졌다. 호피가 깔린 게르에서 편히 지내는데, 식사 또한 마블링이 뚜렷한 쇠고기 안심과 말젖, 구하기 힘든 사슴의 고환과 신을 쪄낸 고기가 제공되었다. 그들의 식생활이 육류 위주라는 것은 알지만, 하루 아침에 최고급 고기가 제공되니 배불리 먹긴 하면서도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이거 먹다가 목에 걸리는 것 아니오?”

막료 백달봉이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백달봉은 과부를 손댔다가 고을 원님에게 붙들려 치도곤을 당하고 천민으로 추방된 구성 고을에서 한문깨나 익힌 생원급이었다. 한명련이 구성순변사로 부임해왔을 적에 쫓기다 한 패가 되었는데, 이괄의 난으로 한명련의 목이 달아나자 그 아들 한윤과 함께 후금 땅을 밟았다.

“무슨 꼼수가 있을 것이오.”

“후한 대접은 한윤 대장의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오. 생각해보니 덩굴째 굴러들어온 호박이란 말이오. 조선을 혼내주어야 하는데, 마침 조력자가 나타났다. 조선 조정과 척을 진 자가 후금에 들어왔으니 얼마나 좋겠소?”

“그렇다면 배짱을 내밀어야 하겠군.”

금세 태도가 변했다. 한마디로 가벼운 사람이었다.

“그러면 안되지요. 좋게 대할 때 좋게 상대해야지 상대방 허점을 노리고 버팅기다가는 골로 가는 수가 있소. 진정으로 도와야 하오이다.”

“허면 어떻게 도울 것인가.”

“강홍립 장군이 볼모로 잡혀 있으니 그와 함께 손을 잡고, 조선을 칠 때 안내역을 맡으면 되지요.”

“역시 백달봉 씨는 아는 사람답소. 참모로서 제갈량에 비해도 손색이 없소.”

다음날 한윤은 패륵 중 한사람을 만나줄 것을 초병을 시켜 요청했다. 잠시 후 망고이태가 그를 불렀다.

“왕자를 부른 것은 무슨 연유냐.”

“나를 대접한 것은 고맙지만, 연일연장 쳐박아두면 뭐할 거냐. 조선 침공 생각을 접었나?”

“비밀이다. 너를 믿을 수 없다.”

“믿고 안믿고는 너희들 자유다. 하지만 내가 조선 침공의 묘안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냐.”

“강홍립 장수를 써먹어야 할 것이다. 그를 내세워 조선을 치러 가야 한다. 물론 조선을 치는 것이 아니라 인조 세력을 치는 것이다. 강홍립은 광해의 사람으로서, 명나라 구원병으로 차출되었지만, 광해의 밀서를 받고 후금에 투항한 사람이다. 광해 임금은 명나라의 강권으로 할 수 없이 강홍립 장군을 파병했지만, 후금과의 관계를 고려해 싸우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후금에 투항하도록 했다.”

“그래서?”

“그렇게 해서 귀국에 투항한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이다. 광해 정권을 타도한 현재의 인조 정권은 아시다시피 후금을 배척하고, 명나라를 맹종하고 있다. 그들은 지금 명과 합세해 여차하면 후금을 치려 할 것이다.”

“그 말 사실이렸다?”

“사실이다. 명은 우리가 사대하는 부모국이고, 너희는...”

“우리는 짐승의 피를 먹고, 짐승 똥으로 취사하고, 말을 타고 다니며 약탈하고, 여자를 훔쳐가는 만인(蠻人)이라고 보는 것이지?”

“그렇다. 여진족, 즉 후금 세력은 금수에 속하는 만인이다. 글을 모르는 축생이다. 조선 조정은 후금을 타도 대상으로 보지 선린국으로 삼을 생각이 없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는군. 가진 것이라곤 수염과 도포자락 뿐인 것들이 어른 행세하기는. 수염과 도포자락이 칼이 되냐, 쌀이 되냐. 나도 조선 사정을 손금 들여다보듯 알고 있다. 너의 아비 한명련과 이괄이 권력을 쥔 서인은 아니지만, 우리에 대해서도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괄은 북방에서 근무하던 무장이었기 때문에 대치 중인 우리와 늘 대결적이었지. 구성순변사 한명련도 마찬가지다. 우린 후방 지역 안정화 후 명나라 침공을 하려 했는데 조선군이 목의 가시였지. 지금 곡식도 고갈 상태에 있고, 위쪽은 명나라, 아래쪽은 조선, 그래서 우리가 먼저 무너지게 되어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인데 진실로 우릴 돕겠느냐?”

“너희와 함께 아비의 원수를 갚겠다.”

망고이태는 이 자가 아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모국을 치자는 것이 야비한 놈으로 비쳐졌으나 손해될 것이 없고, 오히려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홍타이지와 아민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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