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478)

5부 정묘호란 1장 다시 백척간두에서 (478)

그때 정충신은 모처럼 휴가를 받아 고향에 갈 차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전쟁터를 누비느라 아버지 임종도 놓치고 3년상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나라를 위해 전선을 전전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불효를 한 것이었다. 그는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렸다.

-신은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국가의 공신이 되었사오니 간뇌(肝腦:육체와 정신)를 땅에 바른들 어찌 다 천은을 보답하겠나이까. 신이 난중에 한양과 북방을 지킨 뒤 한 번도 고향 땅은 물론 선친의 묘에 성묘를 못했사오니 신이 평안병사로 부임하기 전 열흘간만 휴가를 허하여 주십시오.

상소문을 읽고 난 임금은 “그런 일이 있었구먼.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한 서자들은 그렇다 치고, 아비 살아생전에 아비라 부르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떠나보냈으니 얼마나 애달플 것인가. 가서 성묘를 하라. 보름의 휴가를 명하노라” 하고 휴가를 주었다. 왕은 일등공신의 녹훈대로 정충신의 조부모와 부모에게도 훈호(勳號)를 내렸다.

조부 석주 공에게는 가선대부 호조참판이 증직(贈職:작고한 뒤 官位를 追賜하는 것)되고, 조모는 정부인(貞夫人:정2품 종2품 종친 및 문무관의 부인에게 주는 훈호) 작위를 내리고, 부친 윤(倫) 공에게는 순충적덕병의보조공신(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 승정대부 판중추부사에 금천군(錦川君:금성정씨, 즉 나주정씨를 딴 작호)을 내렸다. 모친에게는 정경부인(貞敬夫人:정1품 종1품 문무관의 부인에게 내린 훈호) 작위를 내렸다. 이로써 정충신의 가대는 한미한 집안의 하류층 신분에서 조정 신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위를 누리는 양반 신분이 되었다.

정충신은 금빛 장식의 교지를 가지고 금의환향하는데, 연락병과 기라병들이 먼저 떠나 정충신의 행차를 각 고을 수령과 백성들에게 알렸다. 절도사이며 금남군의 제후(諸侯) 자격으로 길을 나서니 가는 곳마다 연도에 각 지방 수령들이 나와 술상을 올리고 환영식을 열었다.

정충신은 감개무량하였다. 열여섯의 나이로 광주목사관의 통인(通引:목사관에 소속돼 잔심부름하는 吏屬. 知印이라고도 함)으로 있을 때, 압록강 변경까지 도망간 왕에게 전라도 이치·웅치전투 승리를 적은 권율 목사의 장계를 단 스무닷새 만에 이천오백리 길을 달려서 의주행재소에 알린 이후 어언 48세가 된 지금, 고향 땅을 밟는 것이다. 전쟁 중 이슬 마를 시간만 잠깐 스쳐지나간 적은 있지만 제대로 된 귀향은 실로 30수 년만의 일이다. 아버지 세대는 벌써 저 세상 사람이 되었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도 어느덧 장년이 된 세월이다. 그를 알아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너무 늦게 온 것만 같아 그는 만감이 교차했다.

전라도로 들어서니 전라감사가 여산까지 병방과 비방을 환영사절로 보냈다. 전주에 당도하자 판관은 육방관속을, 중군(中軍)은 휘하장교를 인솔하고 서문까지 마중을 나왔다. 정충신은 마상에서 예교(禮敎:예절과 경의)를 받으며 선화당 3문 앞에 이르렀다. 감사가 뜰로 내려오고, 모든 관속, 군관들이 도열해 머리를 조아렸다. 정충신이 전라감사의 손을 잡으며 예를 취했다.

“이렇게 뜨겁게 환영해주어서 고맙소이다.”

“고향의 정 장군을 뵈오니 힘이 납니다. 광영이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정충신은 전라감사의 안내를 받아 선화당으로 올라가서 미리 준비한 접대연을 받았다. 그리고 하루만 더 쉬어가라고 길을 떠나려는 정충신을 극구 만류했다.

“실은 내가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오.”

“정 공이 총각 시절 이치전투와 웅치전투에서 유격병으로 활약하셨지요?”

“그렇습니다.”

“그때 한 고을에서 젊은 여인을 만났지요?”

생각해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그러나 30수 년전의 일인지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마는...”

“진사의 딸이 혼인을 했으나 젊은 신랑이 일찍 죽고, 그때 왜병이 그 신부를 납치해 가려던 것을 정충신 유격병이 용맹과 지략으로 구해냈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신부와 약조한 바가 없었습니까?”

“글쎄요. 하도 오래된 일이라서...”

“그 약조 때문에 신부가 장군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지금까지 수절하고 있습니다.”

“네?”

“정 절도사께서 오신다는 연락을 받고 그가 전주 관아를 찾아왔나이다. 반드시 데리러 온다고 약조해서 지금껏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날이 지금이라고 들떠있군요. 들어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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