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22)

“정 공을 오위도총부 도총관으로 임명한다.”

거두절미하고 왕이 명했다. 왕은 그동안 정충신의 귀양살이의 고달픔과 고향의 안부를 묻는 것없이 벼슬을 내렸다. 오위도총부는 조선시대 중앙군대인 오위(五衛)를 지휘 감독한 최고 군령기관이었다. 고려 말 이성계가 병권을 장악하기 위해 설치한 삼군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를 고쳐 만든 중앙군사조직이었다. 병조는 군정(軍政), 오위도총부는 군령(軍令)을 관장함으로써 상하관계가아니라 횡적 관계를 유지했으나 도총부는 주로 병종별로 입직(入直), 행순(行巡)의 임무를 수행했다. 도총관은 정2품 무관직이지만, 일을 하자면 끝이 없었고, 하지 않으면 관명(官名)만 붙어있는 일종의 명예직이었다. 그래서 조선조 후기에는 왕의 아버지 등 왕족들이 장식품 정도로 꿰찬 관직이 되었다.

정충신은 일찍이 비변사(備邊司) 당상,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역임했기 때문에 다시 그 직을 맡는다는 것은 격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명을 받았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임명장 수여가 끝난 뒤 최명길이 정충신을 여염의 주막으로 불러냈다.

“내가 정 장수를 그 직에 밀었소. 지금 조정은 실질적이고 개혁적인 생각들은 퇴조하고 보수적인 사림정치만이 무르익어가고 있소. 김상헌 등 주류세력이 명분론과 예론을 계속 내세우고 있는데, 그것으로는 나라를 감당할 수 없소. 시대변화를 읽어야 한단 말이오. 후금의 위력을 아직도 모르고 사대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답답하오이다. 내가 외롭습니다.”

정충신은 비로소 최명길이 자신을 불러낸 뜻을 알았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정묘호란 세 전쟁을 치르면서 국토가 피폐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반의 면세와 면역(免役)이 강화되었다. 백성을 쥐어짜는 것으로 궁핍한 재정을 해결하니 민심은 사나웠다. 한편 강경 척화론으로 내치를 이끌었다. 극단적 대결주의는 백성들에게 끽소리 하지 못하게 하는 부수효과는 있었다. 일견 깃발이 선명해보이지만, 실력을 갖추지 못한 정책은 허상일 뿐이었다.

“3대 전쟁이 부른 것은 조선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사상 모든 방면에서 큰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사림사회는 변화하긴커녕 갈수록 오만과 궤변의 수구 독단에 빠지고 있소.”

광해군을 밀어내고 정권을 잡은 명분은 친명반금(親明反金), 폐모살제(廢母殺弟)였지만, 세상 만물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현재 후금의 위력은 폭풍노도와도 같다. 그런데 명을 추종하는 척화파들은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사대 예법에만 익숙하여 명과의 의리를 중시하는 도덕외교만이 최상의 정치로 여긴다. 후금에 적대감만 증폭시킨다. 정묘호란 이후 체결한 형제의 맹약을 지켜 후금과의 화친을 주장하는 주화파는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반대파들이 나를 가리켜 ‘쥐새끼처럼 기민하고 권모술수에 능하다’고 했소. 매국노라고 하였소. 정 장수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 접했지만 그래서 불렀소이다.”

최명길이 벼랑 끝으로 몰리는 것은 두말할 것없이 주류 사회의 공격 때문이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최명길의 졸기(죽은 후 사관들이 인물을 평가한 글)를 보면, 그가 사류들로부터 얼마나 배척받았는지를 알게 한다. 실록 찬자(撰者-글 작성자)는 ‘쥐새끼같은 기회주의로 화의론을 주장하여 사류로부터 비아냥을 받았다’고 썼다. 이중 경기도 광주 출신의 순암 안정복은 최명길을 가리켜 이렇게 읊었다.

憶昔崔丞相(생각하면 그 옛날 최 승상은)

頻頻使虜酋(오랑캐 추장에게 자주 가 접촉했는데) (중략)

虜勢雖云怕(오랑캐 세력이 아무리 무섭다 해도)

皇恩不可忘(명 나라 은혜는 잊지 말았어야지(중략)

聖朝三百載(우리나라가 삼백 년 동안)

養士得賢臣(선비 양성하여 어진 신하 있었건만)

到底遲川子(마침내 지천(최명길의 아호) 같은 자는)

竟將國賣人(결국 나라 팔아먹은 매국노네)(한국고전번역원 번역)

“고정된 사상은 독단에 빠지기 쉽소. 광해를 축출했으니 계속 친명반금 명분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수정되어야 하오이다. 만고불변의 이치는 없소. 달라진 세상을 보아야지요. 내가 후금과 강화를 역설한 것은 종묘사직을 위하여 보존하기를 도모한 것인데, 자문(咨文-외교문서)이 잘못되었다고 저 난리올시다.”

“지천의 뜻에 찬동하오. 함께 하겠소.”

정충신이 최명길의 손을 굳게 잡았다. 정충신은 잠시나마 고향에 눌러있었던 것을 후회했다. 지난날을 회고하고 있을만큼 세상은 한가롭지 않은 것이다. 저 거대한 수구의 검투사들이 개혁세력을 겨누어 거꾸려뜨리려 하고 있다.<‘崔鳴吉-현실론으로 국가와 백성을 구하다‘ 정성희, 장선환 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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