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34)

6부 6장 포도대장, 깃발 펄럭이며

딸랑딸랑 말방울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퍼지는 가운데 말 잔등에 앉은 정충신이 감회어린 시선으로 주변 경치를 살폈다.

“이렇게 터놓고 얘기를 나누며 가는 것도 모처럼만의 일이군. 마음 놓고 주유천하를 하면서 자유롭게 사상을 논의하면 얼마나 좋겠소. 어쨌거나 지천(최명길의 호), 나는 떠나가지만 대신 상감을 잘 모셔야 하오.”

그러나 그것은 고군분투하란 말이니 최명길로선 마음이 어둡고 무거웠다. 정충신마저 떠나고, 지금 왕의 주변에는 척화론 일색의 주류 진영들만이 포진해있다. 그것은 가히 임립(林立)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이들에 의해 절화(絶和:화의를 단절)하자는 의론이 높아지는데 최명길은 후금의 요구에 응하여 나라를 지탱하면서 양병하자고 주장했다. 이이의 양병론은 여전히 유효한 국방정책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하는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주류세력의 위세는 반대파를 허용하지 않았다.

후금이 명나라를 공격함에 있어 조선이 원병을 보낼 것과 국경개시(國境開市)를 요구하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 외교협상으로써 길을 찾자는 것인데, 주류세력은 간사하고 교활한 간(奸策)이라면서 일거에 배척하고, 최명길을 이조판서-호조판서-이조판서직으로 뺑뺑이를 돌렸다. 정국의 주도세력은 철저히 김상헌 오달제 윤집이었다.

“일찍부터 척화론 일색의 조정에서 홀로 강화론을 펴는 것이 간사한 짓으로 비치니, 내가 꼭 흙탕물에 빠지는 것 같소이다. 정묘난을 당하고도 헤어나지 못하니 걱정입니다.”

최명길은 거듭 현실적 대처 방법은 강화론 밖에 없다면서 계속 화의를 주장하였다. 정충신도 불어닥칠 전쟁에 대비해 최소 9만의 군사를 양성하자고 주장했다.

“양반들의 사병을 정규군으로 투입하고, 상민과 양반 자제도 징병하면 9만 병력을 만들 수 있소이다. 일본의 재침과, 오랑캐의 재침은 빤한데, 우리는 임진왜란, 정묘호란으로 전쟁 경험이 있는 자만도 기만명이오. 이들을 몇년 의무복무토록 하면 강군이 되오이다.”

그런데 이런 요구가 거부되었다. 9만 병력이라면 주식과 부식, 피복, 무기 제조 등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데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의지만 있다면 해결이 어려운 게 아니다.

“조세를 일원화하고 호패법을 기반으로 만17세 이상의 장정들을 신분에 관계없이 징병해 국가상비군을 편성하여 요충지에 배치한다면 조선은 강국이 될 것이오. 필요 자금은 잡세 폐지와 호조를 통한 조세금납화 실시로 얻을 수 있소. 왜나라와 무역도 하고요. 우리가 막강 군대를 보유하게 되면 어떤 전쟁도 대비할 수 있고, 나의 9대조인 정지 장군이 갈망했던 왜국의 규슈 지방을 점령할 수도 있소. 왜국은 섬마다 나라이니 그중 몇 개 섬만 점령해버리면 저것들 꼼짝 못하고 머리를 수그릴 것이오. 그러면 자연 침략도 막고, 국토도 새로 얻게 되는 것이오. 그런데 안으로만 파고들어 애먼 백성들만 조진단 말이요.”

그들이 기득권이다. 요즘 세상의 말로 하면 보수기득권인데,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인 국토보전과 사회안정은 헛 구호일 뿐, 부패와 타락 가운데 빠져있다. 그러면서 군림하며 호령한다. 나라의 미래를 고민할 필요도 없으니 백성 위에 올라타 착취하고 수탈하면 되는 것이다. 상민과 노비만도 인구의 절반에 가까우니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노동 자원은 무한대로 열려있다. 고민없이 이들만 쥐어짜면 호의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변화가 필요하겠는가.

인조는 처음 개혁파의 의견에 따라 대동법을 실시하고 사회 제도를 개혁하려고 했으나 강고한 구세력의 개입과 차단으로 그들에게 얹혀가버렸다. 애초에 대가 약하고 무능한 그는 왕의 자질이 없는 사람이었다.

정충신이 말했다.

“나야 상민 출신으로서 세상에 대한 불만을 갖고 살아왔지만 지천이야말로 대대로 명문사족의 문반 아닌가, 그런데도 나라의 재구성에 고민하고 있소. 고민하지 않아도 되잖소?”

“그것이 아니지요. 부자는 부자대로 살아야 하고, 가난뱅이는 가난뱅이로 살아야 한다는 기계론적 유물론이야말로 지식인이 배척해야 할 일이지요. 인간은 출신 계급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철학이야말로 인간 본성을 파고하는 악이지요. 출신 계급의 이익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 삶의 복잡성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조선 사회가 타락한 것은 지식인 계층이라는 사대부가 영역을 구분지어 계급을 단정지어놓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양반의 지위에 있지만 고통받고 소외받고 아파하는 가난한 자의 곁에 있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이자 길이라고 믿습니다. 배운 것을 배불리 먹고 사는 것에만 사용한다면 그 인생이 얼마나 가볍고 처량합니까.”

“옳은 말이오. 과연 지천답소. 상당히 멀리 왔으니 이제 들어가야 할 것 같소. 이별은 아프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견딜만 하지요.”

한강에 이르자 정충신은 최명길에게 이별의 손을 내밀었다.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한 척의 배가 정충신 배를 추격했다. 그리고 두 배는 나란히 동작나루에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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