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홍의 역사소설 깃발-충무공 정충신 장군(639)

6부 6장 포도대장, 깃발 펄럭이며

“아버님, 왜 지천 어른을 부르십니까.”

아들 빙이 방으로 들어와 물었다.

“왜구가 쳐들어온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남쪽의 왜적은 비록 우리나라가 간청한다 할지라도 이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왜 그렇습니까. 대처에서는 왜국이 침략한다는 소문이 자자합니다.”

“아니다. 왜국의 통치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란 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다. 그는 수길(히데요시)이와 같이 호전성을 갖고 있는 인물이 아니다. 상업으로, 공업으로, 농업으로, 물건 만들고, 농사짓고, 배 만들어서 고기 잡는 것 따위로 부를 창출하려는 자야. 지들끼리 소소한 내전은 있을지라도 외국과의 전쟁은 피하려 한다. 밖으로는 전쟁을 억제하고, 안으로는 나쁜 놈은 손을 보지만 대저 영주들에게 봉토를 나눠주면서 대들지 말라고 달래고 있다. 수길이와 근본적으로 발상이 다른 자야. 그 자가 필경은 일본을 먹여살릴 것이다. 우리가 크게 근심할 쪽은 북쪽 오랑캐다.”

“북쪽 오랑캐와 형제의 연을 맺었지 않습니까.”

“맺었어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더 큰 화를 부른다. 철석같이 믿었는데 배신하면 증오심이 더한 법이다. 우리가 애초에 후금과 맺은 형제의 연을 무시했던 것이 문제다. 무시하니 꼬투리 잡아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겁박한다. 조정은 그런 그들을 잘 모르거니와 이해하려하지 않는다. 한번 불상놈은 영원한 불상놈으로만 생각한다. 그것이 양반들의 한계다. 인류사에서 영원한 야만은 없다.”

“지천 어른께서 조문사절로 온 후금의 차사들을 살피러 홍제원으로 나가셨다 합니다. 후금 차사들과 조문의 예를 협의하는 중에 사고가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감독차 나가셨다 합니다.”

1636년 2월 17일 후금국은 조선 왕비의 국상 조문사절이라 하여 차사(差使)로 용골대와 마부대를 파견했다. 그들은 수행원 200명을 이끌고 홍제원에 들어왔다. 홍타이지가 1월 여진족, 몽골족, 한족, 세 민족을 통합한 황제라 칭하고, 국호를 대청(大淸) 제국이라 고친 것도 알리기 위해 조문 사절로는 규모가 큰 200명의 수행단을 이끌고 온 것이다. 당연히 대청의 위세를 보이기 위해 꾸민 수행단이었다

조선은 정묘호란 때 쓴물 삼키듯 굴욕적으로 형제지국의 화의(和義)를 맺은 후 해마다 괴상한 옷을 입고 묘한 이름을 가진 낯선 얼굴의 오랑캐 사신들이 들락거린 것이 내내 불쾌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는 수백 명을 이끌고 들어오니 배알이 뒤틀릴대로 뒤틀렸다.

조정은 조선국 통사(通使)로 하여금 홍제원으로 나가 용골대, 마부대 일행을 북평관에 묵게 하였다. 이 무렵 명나라에서도 조문사절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모화관에 머물렀다. 완전히 품격이 다른 접대였다. 북평관은 평범한 영접 숙소라면 모화관은 취타대와 의장대를 갖춘 정식 외교사절 영빈관이고, 숙소 또한 최상급이었다.

청나라 사신이 가져온 봉서는 여러 장이었다. 그중 한 장은 ‘금국집정팔대신(金國執政八大信)’이라 쓰고, 또 한 장에는 ‘몽고제왕자(蒙古諸王子)’라 쓰고, 앞면에 ‘봉조선국(奉朝鮮國)’이라 씌어있었다. 접반사가 이를 보고 대노한 나머지 크게 꾸짖었다.

“어찌하여 너희 나라 대신과 몽고 서달족 무리가 무엄하게 우리 상감께 글을 바친단 말이냐. 감히 우리 상감을 욕보이겠다는 것이냐?”

이 말을 듣고 용골대가 껄껄 웃으며 소리쳤다.

“우리 칸이 공덕과 무용이 높아서 한번 치면 반드시 이기고, 싸우면 반드시 굴복을 시키니 명나라 운수도 다했다. 명나라가 우리 앞에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고서야 정신이 들겠느냐? 도대체 귀국은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알겠느냐?”

“뭣이, 이놈이?”

“이놈이라고 했겄다? 자, 보거라. 안으로 8대신과 몽고 서달족이 우리 칸을 추대하여 천자 정위에 오르게 했거니와 조선은 우리와 형제국이라 이 소식을 들으면 대단히 기뻐할 줄 알고 소식을 갖고 왔는데 국상중임에도 노여움을 보이다니 가히 귀관이 왕을 섬기는 자인가?”

“만족(蠻族)이 천자라니, 어허, 세상이 물구나무 섰구나.”

“니들이 신주단지 모시듯하는 사대국 명나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니까.”

“변괴로다, 변괴로다. 오랑캐가 천자라니, 하늘이 두 쪽 나는구나. 과연 이런 욕된 것들을 가만 둘 것인가.”

접반사는 용골대를 노려보고 “나쁜 새끼“라고 투덜대며 통사를 돌아보고 쫓으라는 시늉을 하고는 국서와 편지도 받지 않은 채 밖으로 나와버렸다. 그는 말을 몰아 급히 도성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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