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규 나주시장의 남도일보 자치단체장 칼럼

나주는 어떻게 의향이 됐는가?

강인규(나주시장)

강인규 나주시장
전남 나주는 선비의 고장이다.

일반적으로 사림을 생원, 진사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지칭한다면 나주는 전국에서 사림을 가장 많이 배출한 도시다. 나주가 자랑하는 풍부한 물자와 토지는 중앙정치에서 논공행상의 대상이 되어왔다. 공을 세운 중앙의 관료는 나주와 관계를 맺었고 나주향교를 비롯한 사립 교육기관에서 육성한 인적기반은 오랜 시간 중앙정치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그렇기에 나주사람들의 입장에선 ‘국가의 위기는 곧 나주의 위기’였다.

나주는 국가의 위기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고 전쟁의 한복판으로 뛰어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발발 후 나주의 대표 의병인 김천일 의병장의 주요 활동무대는 나주가 아닌 호남의 울타리인 진주였고 경기 강화도이며 행주산성이었음이 이를 증명한다.

나주는 해양세력의 고장이다.

영산강이 생활권인 나주인은 바다와 선박에 익숙했다. 임란의 판도를 바꾼 해상전투에서 나주 의병의 활약은 빛났다. 나주 출신 나대용 장군은 거북선을 제작해 수많은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나주 의병은 임란 초부터 전라 좌·우수영에 자원 종군해 해상 전투에 뛰어들었다. 전선을 제작·수리하고 조선 수군과 한 몸이 되어 싸우면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든든한 후원군으로 맹활약했다. 전라도 침략전쟁이라 불리는 정유재란 최후의 수륙합동전투인 순천 왜교성 전투와 광양만 해전에 참여한 의병장 ‘임환’과 이 과정을 일기로 기록해 역사로 남긴 ‘예교진병일록’의 저자 ‘진경문’도 나주 출신이다.

나주는 국가를 지탱해준 곡식 창고였다.

조선시대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곳이 나주였다. 전쟁 시기 병사들의 군량미를 책임졌다. ‘호남절의록’에 의하면 영산강은 의곡(의병 군량미)의 수송로였고 의병 군량미가 집결한 의곡도청 기능을 했다. 임란 7년의 의병 전쟁을 지탱하고 승리로 이끈 요인을 이야기 할 때 나주의 곡식과 영산강 뱃길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이 말했던 ‘약무호남 시무국가’의 배경이기도 하다.

나주 의병의 시대적 정신은 한말로 이어진다. 1896년 단발령과 을미사변에 항거해 나주의병은 나주향교에서 봉기해 호남의병을 이끌었다. 일본군의 남한대토벌작전이 끝날 때까지 싸웠고 관찰부 무진주(現광주) 강제 이전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옛 나주역은 3·1운동 이후 최대의 독립운동으로 평가받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장소다.

지금은 나주인의 자랑스러운 의병정신을 계승하고 미래 가치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나주시는 지난 6년 간 김천일 의병장을 모신 정렬사에서 선열의 뜻을 기리는 추모제향을 지내고 있다. 대한민국의병도시협의회를 창립한 2015년 이후 나주시는 의병역사 조사·연구 활동을 꾸준히 펼쳐왔으며 광주·전남 최초로 우리 지역 독립 운동사를 정리한 ‘나주독립운동사’책자를 발간했다.

2018년에는 의병선양사업 전담부서인 문화예술과를 신설해 외세에 굴복하지 않고 목숨을 바쳐 저항했던 항일투사들의 자주독립과 애국·애족정신을 기리는 학술 심포지움, 연구용역, 문화행사 등을 시민과 함께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운영을 통해 나주학생운동가 데이터베이스 구축, 나주학생독립운동가 열전을 발간했으며 지난해에는 나주학생독립운동 진원 90주년 기념탑을 건립했다.

올해는 나주 의병사를 집대성하고자 유물을 수집하고 김천일 의병장의 일대기를 소설화해 나주 의병정신을 만방에 널리 알릴 계획이다. 이 같은 노력은 단순히 나주만의 역사를 조명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전라도 천 년의 중심도시로서 나주가 대한민국 구국정신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다. 나주시는 어떻게 의향이 됐는가?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나주는, 나주인은 시대가 부여한 책무를 성실히 이행했다.

절개 곧은 호남의 선비로서 곡식과 물자가 풍부한 고장으로서 영산강을 무대로 활동했던 진취적인 해상세력으로서 위기에 처한 국가와 운명공동체가 되어 온몸으로 화답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나주 의병정신을 잘 받들고 모시는 것, 미래 세대와 함께 새로운 의병정신을 꿈꾸는 것, 이것이 현재를 살고 있는 ‘의병의 도시 나주’에 부여된 책무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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