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9)군왕지상(君王之相)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왜 이성계는 비렁뱅이 거지 옷을 부러 걸쳐 입고 가서 하필 그 비렁뱅이 거지가 골라 짚은 물을 문(問)자를 고른 것일까? 그것에는 이성계 나름의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일까?

이성계가 손가락으로 짚어 고른 물을 문자를 자신의 손가락으로 매만져 보던 소경점쟁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누더기 옷을 걸쳐 입고 앉은 이성계를 향해 땅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며 말했다.

“좌군우군(佐君右君)하니 분명 군왕지상(君王之相)이라!”

그 뜻인 즉 물을 문(問)자를 뜯어보니 왼쪽을 보아도 군왕의 형상이요, 오른쪽을 보아도 군왕의 형상이니 당신은 분명 군왕이라는 것이었다.

“에이! 이 양반아! 오늘 낼 하는 비렁뱅이 거지더러 군왕이라니! 크악 퉤!.......”

이성계는 깜짝 놀라 병자인척 가느다랗게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치면서 비렁뱅이 거지와 똑같이 침을 뱉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좌우의 구경꾼들을 살피며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만약 그 자리에 혹여 자신을 알아보는 자가 있어 고려 왕실에 이 사실을 발고라도 하는 날에는 역적의 죄를 뒤집어쓰고 잡혀가 정말로 큰일을 치를 것이었다.

“허허! 내 오늘 두 번 공탕을 치겠다했더니 여지없네 그려!”

복채도 주지 않고 피해 달아나는 이성계의 귓전에 소경점쟁이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흐흠! 과연 저 소경점쟁이가 신인의 경지에 이른 천하의 실력을 갖추었단 말인가!’

이성계는 속으로 그 소경점쟁이의 신통함을 경탄해 하며 혀를 내둘렀다. 이성계는 당시 고려왕조를 들어 엎어버릴 엄청난 계획을 가슴에 품고 있던 터라 ‘그 일이 실패할 것인가? 성공할 것인가?’를 노심초사 걱정하며 거사를 단행할 것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저 소경점쟁이가 누더기 옷을 걸쳐 입은 자신의 점괘를 보고 ‘군왕지상’이라니 이는 곧 성공을 예견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렇다면 과연 소경점쟁이는 무슨 연유로 비렁뱅이 누더기 옷을 걸쳐 입고 온 거지와 이성계가 물을 문(問)자를 똑같이 골랐는데도 그 점괘를 정반대로 다르게 판단하여 풀이했단 말인가? 바로 그 소경점쟁이는 겉모습과 실상의 다름을 깊이 깨달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소경점쟁이는 눈이 멀어 사물의 외관(外觀)은 절대로 볼 수 없었는데, 바로 그것이 핵심이다. 일반 사람들은 사람들의 돈과 권력과 지위와 미추(美醜)와 먹을거리의 외관에만 치중한 나머지 그 내면의 깊은 실상은 절대로 알아보지 못하는데, 그 소경점쟁이는 같은 글자를 고른 자라도 그 내밀한 실상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각기 정반대로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것은 돈과 지위와 권력을 가진 겉모습만 기름지고 화려한 그 누구라도 그 내밀한 실상은 전혀 다를 수 있음을 말함이다. 연줄이나 아부아첨, 거짓에 갖은 뇌물로 얻은 자리에 버젓이 올라앉아 터무니없이 많은 대가를 챙겨가면서 그것도 부족해 뇌물이다 뭐다 하여 눈치껏 백성의 고혈(膏血)이나 맛나게 빨아먹으며 나 잘났다고 우쭐거리면서 온갖 협잡과 악행 그리고 남모르는 부정부패에 절어 치부나 하는 자라고 한다면 그가 곧 칼 안든 강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한 외관과 실상의 다름의 경지를 소경점쟁이는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계는 어떠한가? 이성계 또한 그 소경점쟁이 못지않다. 무장(武將) 이성계는 조선의 기틀을 세운 문인(文人) 혁명가 삼봉 정도전을 알아본 혜안을 가진 자가 아닌가! 그것은 마치 문왕이 강태공을, 유방이 장량을, 유비가 제갈량을, 조조가 순욱을, 이세민이 위징을, 칭기즈칸이 야율초재를, 주원장이 유기를 알아본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세상의 빛나는 온갖 허울을 뒤집어쓰고 허명에나 잔뜩 도취해 살아가는 자들로서는 어찌 가당키나 하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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