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최형천( ㈜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미국 대선의 결과가 민주당의 승리로 밝혀졌지만 트럼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지지자들과 함께 저항하고 있다. 미국의 주류 언론은 이러한 불복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한 도박이라고 맹비난을 펴고 있지만, 정작 이번 선거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번 미국 선거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지난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 다시 말하면 미국 서민이 선택할 마땅한 정당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퇴행이다.

글로벌자본주의 기조 하에서 지난 40년 동안 미국의 시민들은 그들이 노력하여 축적한 부를 상위1% 자본가에게 몰수당하였고 일자리까지 잃어버린 중산층이 대거 몰락했지만 거대 양당의 주류세력들은 이를 외면해 왔다. 드디어 2016년 예비선거에서 이런 문제에 주목한 인물들이 출현했다. 민주당에서는 버니 샌더스가, 공화당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반란을 도모했다. 하지만 민주당 내에서 샌더스의 정치혁명은 좌절되었고, 공화당에서는 트럼프가 러스트벨트 노동자계급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포퓰리즘 전략으로 당을 단숨에 장악해버렸다.

이렇게 2016년 대선에서 미국 시민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신자유주의를 여전히 옹호하는 민주당과 자신이 대자본가이면서 노동자를 대변하겠다는 공화당 후보 중에서 고르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런 참담한 정치현실로 인해 분노와 적개심에 휩싸인 시민이 지난 대선에서 마지못해 선택한 사람이 트럼프였다.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현대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부정의를 ‘경제 부정의’와 ‘문화 부정의’로 구분한다. 그리고 경제영역의 부정의는 ‘잘못된 분배’를 의미하고 그 해결책은 ‘재분배’이며, 문화영역의 부정의는 ‘무시’로 대표되고 그 해결책은 ‘인정’이라고 보았다.(낸시 프레이저,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2016)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요인 중 하나는 ‘문화 부정의’에 초점을 맞춰 여성이며 유색인종을 대표하는 해리스를 부통령 후보로 합류시킨 전략이었다. 지난 선거에서 젠더란 유리천장에 막혀 눈물을 흘리던 클린턴을 보면서 함께 분루한 이들을 ‘인정’하면서 결집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런 문화적 정의도 중요하지만 지금 미국 국민에게 더욱 절실한 것은 경제적 정의라 할 수 있다. 바이든의 민주당 정부는 통합을 구호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재분배’에 초점을 맞춰 서민들의 삶을 개선해야 한다. 혁신적인 버니 샌더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과감히 펼쳐야 한다.

“유럽평의회는 사회통합은 모든 시민의 장기적 안녕을 보장할 수 있는 사회의 능력이며, 장기적 안녕이란 가용한 자원에의 공평한 접근, 다양성을 통한 인간존엄성의 존중, 개인적?집합적 자율성, 책임감 있는 참여로 구성된다고 정의 한다.”(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한국사회의 질>, 2015). 최근 코로나19로 지구상 최고의 부국인 미국에서 죄 없는 시민들이 속절없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 ‘장기적 안녕’이란 말이 뼈를 때린다.

낸시 프레이저는 부정의를 해소하는 방책을 긍정적 해결책과 변혁적 해결책으로 구분한다. 긍정적인 해결책이 부정의를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구조나 틀을 문제 삼지 않은 채 그 결과를 교정하는 방법이라면, 변혁적인 해결책은 구조와 틀 자체를 재구성하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은 몇 가지 복지제도를 보완하는 정도가 아닌 구조를 새롭게 짜는 혁명적인 변혁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유럽과 달리 심각하다. 분배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 미국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이제 한국은 미국정치에서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우리는 정치적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대기업 중심경제, 엘리트 중심의 정치, 관료, 사법부, 언론체제는 아직도 공고하다. 그리고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 지는데 부동산은 고공 행진하여 빈부격차가 미국 다음으로 심각하다. 한마디로 좋지 않은 것까지 미국을 따라가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그 해결책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거악은 제도화되어 있으며 법이라는 미명으로 무장되어 있다. 직업 정치인들은 하는 척하면서 시간을 끌고 그들만의 리그를 위하여 시민의 실망을 정치적 무관심으로 유도한다. 일본의 어느 무사는 울지 않는 새는 죽여버린다던가? 소리 내지 않는 시민은 무시당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만다. 그것이 오늘의 미국 정치에서 한국 시민이 배워야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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