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나주 남평은행나무 수목원에서 무슨일이…
주민 간 갈등 속 방문객 차량 통행 방해 ‘갈등’
응급환자 이송 문제 두고 결국 주먹 다툼까지
나주시 늑장 행정 …‘사태 키웠다’ 지적도

나주 남평 은행나무 수목원이 노란 은행나무잎들이 내뿜는 아름다움 속에 멋진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남도일보 DB

<“아이가 아파요 병원 응급실에 가야 하니 좀 비켜 주세요”, “뭐~이 00야 안돼 절대 못 비켜줘~”>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급히 가려는 사람을 마치 누군가가 막아서고 못 나가게 하는 듯한 참담한 대화가 오고 간 장소는 다름아닌 전남 3호 민간수목원인 나주 ‘남평 은행나무 수목원(이하 수목원)’인근 주차장이었다. 8 만여평의 대지에 수 백그루의 매실나무와 이를 지키듯 서 있는 수령 50년 이상된 수 천그루 은행나무가 즐비해 아름답기로 소문난 ‘남평 은행나무 수목원’에선 이날 무슨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건의 발단

이 대화가 이뤄진 날은 지난 10월 11일 오후 2시께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 은행나무를 구경하기 위해 약 300여명 이상의 방문객들이 수목원을 찾았다. 차량 대수만 100여대 이상.

하지만 이날 이 차량들은 옴짝달싹 못한 채 발이 묶여 버렸다. 수목원 진출입구에 커다란 농업용 트랙터가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난장을 유발한 것은 수목원 인근 한 마을주민이었다. 비켜달라는 방문객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해당 주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문객들을 향해 욕설과 고성으로 윽박질렀다는 것이 당시 목격자들의 증언.

그러던 중 한 차량에서 내린 운전자가 “아이가 아파서 응급실을 가야 하니 일단 내 차만 나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이 주민은 이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수목원 소유주가 나섰지만 별 성과가 없었고 급기야 언쟁이 이어지던 중 주먹다짐까지 발생했다. 현재 수목원 소유주와 가족 그리고 해당 주민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마을 주민이 남평은행나무 수목원 주차장 진출입로에 트랙터를 세워두고 방문객들의 출입을 방해하고 있는 모습. /독자 제공

◇갈등의 고리 ‘시작과 끝’

이 사건은 수목원 소유주와 주민간 갈등에서 비롯됐다.

수목원 소유주가 처음 이곳을 매입한 것은 지난 2014년 무렵. 당시엔 수목원으로 지정이 되지 않아 사진 작가들 사이에서 가칭 ‘남평 은행나무길’로 불릴 때였다.

이전 수목원 주인이 매실나무를 키우면서 울타리 목적으로 은행나무를 심은 것이 현재에 이르렀는데 은행나무 수령만 대략 5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수목원 소유주는 본업에서 은퇴와 동시에 아내와 남은 여생을 함께할 곳을 찾다 지인 소개로 이곳을 알게 됐고, 아름다운 경치에 매료돼 구입을 결정했다. 당시엔 은행나무 주변으로 철조망으로 둘러쳐 있어 외부인 방문이 제한됐었다.

수목원 소유주는 은행나무 숲의 아름다움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자는 공익적 목적에서 무료로 대중에 공개하기로 했다. 자연스레 SNS에 단골로 소개되기 시작했고, 유명세가 더해지면서 지난해엔 무려 20여만명이 찾는 지역 핫플레이스가 됐다. 2019년에는 전남도로부터 사립수목원으로 지정됐다. 지자체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관광지가 된 것이다.

갑자기 얻은 인기는 곳곳에서 갈등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주말 하루 평균 수 백대씩 차량이 밀려들었는데 이를 수용할 만한 기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탓이었다. 불법 주정차가 빈번했고 수목원 인근에서 농사를 짓던 마을 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됐다. 일부 주민들은 급기야 차량 통행을 막기에 이르렀다. 앞선 폭행사건 역시 이같은 일련의 과정의 연장선이었다.
 

나주시가 올해 5월부터 추진 중인 ‘광촌리 은행나무길 도로 확포장 사업’현장 모습. /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주민 갈등 ‘나몰라라’하는 나주시

수목원으로 들어갈수 있는 길은 남평읍 풍림리 풍강마을 (30여 가구)입구와 나주시 남평읍 광촌리 1구 마을(150여 가구) 입구 등 총 2곳이다. 이 중 수목원 방문 차량 등으로 인해 피해가 예상되는 곳은 풍강마을로 5~ 6가구가 피해를 호소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갈등이 심화되면서 풍강마을 진출입구는 지난 10월께부터 사실상 폐쇄된 상황이다. 이 곳 일부 주민들이 중심이 돼 수목원 소유주를 비방하는 내용의 현수막 수 십장을 거리에 게시하는 등 소위 망신주기에 나서고 있다. 주말에는 마을 곳곳을 돌며 확성기로 비방전을 펼치며 여론몰이 중이다. 수목원 주변으로 진행된 숲가꾸기 사업 등을 ‘특혜’라며 허위사실(나주시 공식 발표)을 유포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같은 마을 주민들 중에서도 일부는 쓴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각종 소음 피해는 물론이고 동네 창피하다는 것. 수목원을 둘러싼 갈등이 마을 사람들간 분열까지 야기하고 있는 꼴이다.

나주시의 무능한 행정력이 도마위에 오른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 발생 소지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뒷짐만 지고 있어서다. 이번 사태의 원초적 책임은 사실 나주시 몫이라는 의견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6년 나주시는 현장조사를 통해 인근마을에서 수목원으로 연결되는 비포장 도로를 확장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수목원을 찾는 방문객들이 늘어날 것이란 판단에서다. 바꿔말하면 시설 확충이 늦어질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나주시가 예측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지난 2017년께 국토부 승인을 거쳐 총 23억원(국비 90%·시비 10%)규모의 ‘광촌리 은행나무길 도로 확포장 사업(총 구간 430m 길이, 폭 8m, 교량 2개소 설치)’을 확정·추진했다.

하지만 나주시는 ‘예산이 제때 내려오지 않았다’는 등 석연치 않은 이유로 착공조차 진행하지 않았고, 3년여가 지난 올해 5월이 돼서야 겨우 관련 공사를 시작했다. 이번 수목원 갈등은 늦장행정이 빚은 결과물인 셈이다.

지역 한 주민은 “실질적으로 마을에 피해는 크게 없는데 아무래도 노인들이 사는 동네라 외부차량이 오면 안전에도 문제가 있고, 농사에도 약간은 지장이 있지 않겠냐”라며 “마을에 유명 관광지가 들어오며 지가 상승은 물론 동네 이미지도 좋아지니 반대할 이유가 없다. 다만 이를 뒷받침할 기반 시설이 빨리 들어와야 하는데 너무 늦어지다 보니 주민들간 갈등도 생긴 것이다”고 안타까워 했다.

중·서부취재본부/심진석 기자 mourn2@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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