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중 변호사의 남도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

‘관계맺기’를 교육받을 절호의 기회!

강신중(법무법인 강율 대표변호사)

지난주 코로나19로 파행적인 교육을 경험했던 우리 아이들의 수능이 치러졌다. 대학 입시가 마무리될 때까지 아직도 남은 일정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관문을 무사히 지나온 것 같아 다행이다. 입시 수험생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학교에서는 이제 입시 공부 이외에 그동안 미뤄뒀거나 소홀히 여겼던 부분에 시간과 노력을 할애할 필요가 있다.

수능시험을 마친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진학하든지 사회에 진출하게 되는데, 가족과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서 좋든 싫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현실이 펼쳐지게 된다. 우리 교육과정에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지내는 게 건강한 관계인지 가르치는 교과목이 없다. 기성세대들도 이에 대하여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

영국의 경우 2020년 9월부터 학교에서 필수교과목으로 ‘관계 맺기(Relationships)’ 교육과정을 도입하였다. 우리와 영국의 사회문화적 차이는 있겠지만 주변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는 실제 삶 속에서 안내 지도나 나침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영국의 ‘관계 맺기’ 교육과정은 연령별로 다르게 구성되어 진행된다.

초등학교 영역에서는 가족 혹은 나를 돌봐주는 사람들, 친구 사이의 배려·존중하는 관계, 온라인에서의 관계, 안전하기(Being safe)를 다룬다. 중등학교에선 그것을 심화해서 여러 형태의 가족, 존중하는 관계, 온라인과 미디어, 안전하기, 친밀하고 성적인 관계와 성 건강을 가르친다.

이 가운데 ‘안전하기’에서 가르치는 것은 가끔 아동 청소년에 대한 성범죄가 뉴스를 차지하는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안전하기’의 교육목표 중, 초등학생(12살까지)은 또래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종류의 경계들(Boundaries)이 적절한지를 교육한다. 자신의 몸은 자신의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신체적 혹은 다른 접촉에서 적절한 것, 부적절한 것, 안전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교육한다.

어떤 성인에 대하여 느끼는 불쾌하거나 안전하지 않은 감정을 어떻게 인식하고 보고하는지를 배운다. 조언과 도움을 누구에게 어떻게 요청하고 그것을 들어줄 때까지 계속 시도하는 방법을 배운다.

중등 학생(18살까지)은 성적 동의, 성적 착취, 학대, 그루밍, 강압, 희롱, 강간, 가정 내 학대, 강제결혼, 여성할례 등의 개념과 이와 관련된 법률, 그리고 이런 행위가 현재와 미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배운다.

어떻게 적극적으로 의사소통하고, 성적 동의를 포함해서 다른 이의 동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언제 어떻게 그 동의를 철회할 수 있을지를 배운다.

의무교육 기간에 필수과목으로 위와 같은 내용을 가르치면 적어도 몰라서 생기는 피해와 가해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르친다고 해서 모두가 충분히 다 이해하고 배우는 것은 아니겠지만 안전을 지키는 혹은 해치는 것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개념을 아는 것은 존재를 인식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자녀들은 자기 경계를 알아가면서 자라고 있을까? 안전함을 느끼는 물리적 경계(Physical Boundary)를 잘 알아서 불편한 신체접촉이나 안전한 공간을 침범당하는 것에 대하여 분명하게 거부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까? 자신의 지적 경계(Mental Boundary)를 소중히 여겨 남의 의견을 따라가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의견을 말할 수 있을까? 타인의 기대와 요구와 필요를 아는 정서적 경계(Emotional Boundary)를 만들어나가고 있을까? 이러한 교육과정을 통해서 타인의 감정까지 자기 탓이라 여기는 자학이나 자신의 감정을 타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원망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관계맺기’교육은 적어도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언어와 문법을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건강한 ‘관계 맺기’를 영국처럼 굳이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모와 학교, 사회가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자기를 지켜나가는 관계의 중요성을 교육한다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를 미리 대비하고 건강하고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입시가 끝나면 학생은 물론 학부모와 학교도 할 일을 다 한 것으로 치부하여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남은 시간 무엇을 하여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시간을 허비하기 일쑤인데, 커리큘럼 중에 이러한 ‘관계 맺기’교육의 한 꼭지를 넣는다면 청소년들의 인생에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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