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옥 송원대 교수의 남도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
당신의 2020년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백현옥(송원대 상담심리학과 교수)

한 해의 시작인 1월 1일이다. 시간이 빠르다 했지만, 지난해는 하루가 유독 길고 일년은 짧게 느껴졌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사람들간의 만남을 줄이고, 회의를 줌(Zoom)으로 진행하고, 학생들을 만나지 못한 채 동영상을 찍어 올리고, 마스크가 생활화 되었다. 어딜가던지 체온 측정과 QR코드가 일상이 되었고, 눈길 닿는 장소마다 손소독제가 놓여 있었다. 우리의 일상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많은 것들이 달라지고 있다.

우스개 소리로 “언제 밥한번 먹자”라던 인사가 “코로나-19 끝나면 밥한번 먹자”로 바뀌었다고 한다. 코로나-19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장난처럼 했던 말이 요즘 다시 전파가 심해지면서 더욱 자주 사용되는 말이 되어버렸다. 마스크의 일상화로 감기환자가 많이 줄었다는 것도 하나의 변화일 것이다. 일부 해외에서는 사라졌던 야생동물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는 기사 역시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긍정적 변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코로나-19가 가져다준 변화는 부정적인 것들이 훨씬 많았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가정내에서 은밀하게 행해졌던 아동학대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었다. 가정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더 가혹하고 길어진 학대가 온라인/오프라인 수업이 병행되면서 선생님들에게 드러난 것들이 한편으로는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던 일일 수 있었으니까.

또, 학생들이 동영상으로 수업을 받다보니 초등학교는 기초학습 부진이, 중고등학교는 교과과정을 제대로 따라오는지 체크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기사도 있었다. 대학생들 역시 온라인 수업이 되면서 많은 학부생들이 더 나은 학교를 위해 재수공부를 병행했다는 것 역시 공공연한 사실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들간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외출을 꺼려하다보니 자영업자들의 한숨도 늘어가고 있다. 많은 자영업자들이 휴업이나 폐업 신고를 했다는 기사가 이미 몇 달 전부터 쏟아지고 있었고, 이 와중에 가장 고생할 의료진들의 처우에 대한 이야기도 전면으로 대두되었다. 이밖에도 아마 코로나로 인한 영향을 꼽으라면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을 다 더해도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면 희망은 우리 곁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코로나-19로 자가격리 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에게 전해주었던 온정의 손길에 대한 기사를 보면서 그래 아직 따뜻한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또, 청소년들을 위한 손을 놓지 않기 위해 온라인으로 캠프를 계획하고, KIT를 제작하여 배송하고 프로그램을 온라인으로 만드는 시도들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어딘가에서 소외되고 힘들어할지 모르는 청소년들을 위해 끊임없이 전화통화를 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 노력하는 직원들을 보면서 ‘청소년지도자’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생각을 더해주는 시간을 갖게 해준 것 같아 감사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내가 썼던 글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2018년 9월에 시작했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그 때 당시의 TV 프로그램과 유행했던 말들, 사회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특히 올해 3월 썼던 ‘소확행’이 다시금 나에게 다가왔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어쩌면 코로나-19로 지쳐있는 우리에게 가장 힐링이 될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홈트’,‘혼술’, ‘줌 파티’ 등 혼자지만 소통하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직업적 가치를 돌아볼 수 있는 일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과 끝맺음을 할 수 있는 일들이...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은 늘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한다. 코로나-19로 침체되어 있는 올해는 더욱 그런 것 같다. 모두가 어렵고 힘든 시기를 거쳐가고 있는 상황에서 ‘새해엔 힘내자’ 이야기는 늘 공허한 위로처럼 느껴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할 세상이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하기 위해서라면 조금은 힘을 내봐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로운 마음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소확행을 다시 펼쳐보았으면 좋겠다. 편한 옷과 따뜻한 공간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와 함께 하는 시간. 그 시간에 묻는다면 당신의 대답은 어떨지 궁금하다. 당신의 2020년을 완전히 삭제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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