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소신
최형천(㈜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여당 대표의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언급이 일파만파 파장을 불러왔다. 극렬한 반대 표명과 옹호로 나뉘어 중립적 입장에서 판단하는 사람의 설 자리는 없다. 곧 정치의 계절이 오나 보다 하는 느낌이 피부로 전해져 온다.

우선 차분한 대응을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나랏일이란 감정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 소중하다. 이왕 논의가 이루어진 마당에 국가 차원에서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판단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해서다.

머리를 식힐 겸 역사에서 사례를 찾아보자. 링컨은 노예제도 반대 입장을 내걸고 1860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에 분노한 남부 주들이 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하자 링컨은 남북전쟁을 통해 반란을 제압하고, 마침내 헌법을 수정하여 노예제도 폐지를 관철한다. 재선에 성공한 뒤 링컨은 전후 재건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보이며 관대한 화해 정책으로 국가통합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는 모든 방향에서 공격을 받았다. 노예제도를 반대하던 자당(공화당) 급진파에는 남부에 대한 좀 더 강력한 조치를 하라는 압력을 받았고, 전쟁에 반대했던 민주당에서는 평화와 협상을 요구했다. 또한 분리독립주의자들은 링컨을 적으로 간주했다. 이런 각양각색의 의견표출의 극단은 마침내 링컨의 암살로 귀결되었다.

역사상 가장 훌륭한 미국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링컨이었지만 당시에는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극심한 갈등 속에서 링컨은 반대편에 대한 지원책을 펼쳐 지지를 끌어내려 진력하였으며, 끊임없는 대중 연설을 통해 미국의 통합을 설득하였다. 흔히들 링컨의 노예제도 반대 근거를 그의 인도주의 사상 또는 성서에서 찾는다.

하지만 링컨의 관심사는 노예제도 존폐문제보다도 이를 두고 대립하는 남부와 북부의 분열을 막아 미연방을 유지하는 데 있었다. 후세 사가들이 만약 미국이 그때 남북으로 분리되었다면 멕시코보다 못한 국력을 가진 별 볼 일 없는 국가가 되었을 것으로 예측하는 걸 보면 그의 소신은 칭송받을 만하다.

링컨의 경우를 보면 정치인의 길은 실로 험난하고 위험하다. 국민 개개인은 나름의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찬성과 반대가 갈리므로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과제를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시지프와 같다. 또 하나는 지금 결정의 옳고 그름은 역사가 판가름하기 때문에 모두가 신중하게 지혜를 모아야지 잘못하면 먼 훗날 후회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감이 든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두 쪽으로 크게 양분되어 끊임없이 반목하며 사생결단식 싸움으로 일관하니 이제 국민은 피곤하다고 하소연한다. 진정 나라를 염려하는 큰 정치인이라면 이런 분열을 종식하고 어떻게 하면 이 나라를 통합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우린 어차피 함께 살아가야하는 하나의 국민이며 공동운명체이기 때문에 싸우더라도 상처를 최소화하고 승자는 패자를 보듬어 안아야 한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엄정한 법을 적용하여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민주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법집행이어서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러나 법만으로 세상이 움직이거나 법이 만능이 아님은 이제 우리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차가운 법을 뛰어넘어 용서하고 훈훈한 화합의 장을 만드는 역할은 사람의 일이며 정치의 영역이다. 물론 국민의 공감이라는 대전제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한 정치인이 돌팔매를 각오하고 우리에게 국민통합이라는 과제를 던졌다. 그의 소신발언을 진정성에 대한 검증도 없이 배신의 프레임을 씌워 매도할 만큼 우리가 그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한동안 부동의 1위 대선 후보감이었으며 진보가 길러온 정치적 자산이 아니던가?

이제 그의 진정성에 관한 판단은 우리 국민의 몫이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잘 판단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한 정치인은 대의를 위한 일이라 확신하면 그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비난도 감수하며 극복할 의지를 가진 그런 소신 있는 인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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