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중 변호사의 남도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

존엄사(Death with dignity), 아름답게 생을 마감할 권리

강신중(법무법인 강율 대표변호사)
정치적, 사회적 큰 이슈가 아니라서 이목을 끄는 일은 아니지만, 2021년 2월 4일은 연명의료결정법(법률 정식 명칭은 ‘호스피스ㆍ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본격 시행 3주년이 된 날이다. 이 즈음에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은 실제 존엄사를 결정한 임종을 앞둔 환자와 가족 336명에게 “왜 그런 결정을 하셨나요?”라는 ‘잔인한’ 질문을 던졌다.

말기 암환자나 임종을 앞둔 132명 중 36.4%가 ‘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삶을 마무리하는 기회를 갖고 싶어서’라고 답을 했다. 다음으로 31.8%가 많이 선택한 동기는 ‘생의 마지막에 예상되는 고통을 줄이려고’라고 답변했다. 16.7%는 ‘가족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임종상황에서도 가족을 걱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존엄사 선택까지 걸린 시간은 4일~1주일이 34.8%로 가장 많았으며 시간은 충분했다고 답했다.

임종환자는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이 임박한 사람을 의미한다. 존엄사는 말기 암이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말기 만성간경화 등을 앓는 환자가 더 이상 회복하기 어렵다는 의사의 판단이 나왔을 때 결정할 수 있다. 중단 대상 연명의료 행위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등이다.

임종을 앞둔 환자는 병세가 악화되어 의식을 잃은 경우도 있지만, 정신은 뚜렷한데 육체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기도 한다. 존엄사를 ‘품위 있는 죽음’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나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마무리 한다’는 말은 임종환자가 자기결정권을 행사한다는 의미가 있다. 스스로 자신의 마지막 길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마음대로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정해진 절차와 방법에 의해 존엄하게 삶을 마감할 권리를 인정한다는 전제가 포함되어 있다.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기반한 생명 불가침이라는 존엄과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인 ‘존엄과 존엄의 충돌’이라는 아이러니도 발생한다.

2018년 2월 연명의료 결정제도(존엄사)를 시행한 지 3년 만에 존엄사를 선택한 임종환자는 13만4천945명(2020년 12월 기준)에 달한다. 작년에는 5만4천942명이 존엄사를 선택하였다.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2020년 사망자(30만7천764명)의 약 18%에 해당된다. 2019년(5만1천747명)보다 6.2% 늘어난 수치이다.

연명의료중단 결정 방법은 본인이 연명의료 계획서나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하거나 가족이 부모 의사를 추정하거나 전원 합의하는 방법이 있다. 이 중에서 가족 전원 합의가 적지 않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2020년 12월까지 연명의료 중단을 이행한 사람의 31%가 가족 전원 합의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가족 전원 합의는 환자 사후 가족들에게 결정에 대한 트라우마를 남길 여지가 있다.

이윤성 서울의대 명예교수는 “연명의료 계획서 작성 시기를 말기환자 이전에도 쓸 수 있게 당겨야 한다”며 “말기에 쓰다 보니 본인이 의사를 표명할 시기를 놓치고 가족이 결정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윤성 교수는 “불치병 가능성이 있으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작성하고, 임종기에 시행하면 된다. 나중에 마음이 바뀌면 수정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존엄사 전문가인 허대석 서울의대 교수는 “임종기에 의료기술로 생명을 연장하는데 집착하기보다는 인간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여유를 갖춘 임종문화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덧붙여 두세 달 이내에 숨지는 말기 암환자와 달리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와 말기 환자 사이의 회색지대에 있는 환자는 적용대상이 아니며 회생가능성이 희박한 이러한 사각지대에 놓여진 환자와 가족들이 더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대만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범위 내에서 2000년 존엄사법을 시행하다 2019년 말기 환자, 돌이킬 수 없는 혼수상태에 처한 환자, 영구적 식물상태, 영구적 심한 치매환자를 새로 포함하여 시행범위를 넓히고 있다.

2016년 1월 국회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된 뒤 ‘웰다잉’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이전까지는 잘 먹고 잘 사는 ‘웰빙’만을 생각했지만, 인생을 어떻게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에 대하여 연구하는 죽음학 전문가들은 정신적으로 고통받지 않는 죽음을 맞이하려면 젊고 건강할 때부터 죽음을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본인의 죽음뿐 아니라 친구와 가족 등 가까운 사람이나 반려동물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미래에 다가올 죽음에 대해 고찰하면 오히려 지금 이 순간을 알차게 살아야 할 에너지가 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급속하게 초고령국가로 변하고 있는 우리 사회는 노년층이 노화와 사망을 ‘일생 중 자연스러운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학과 의료기술의 발달로 연명치료가 가능해진 만큼, 죽음에 대해 새로이 고려할 사항이 많아졌다. 자신과 가족의 죽음에 대하여 말을 꺼내는 것이 거북한 일이지만,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이성적인 판단할 수 없는 의식상태가 되었을 때에 부딪치게 되는 윤리적 고민을 미리 정리해 두는 것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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