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생들에게 월계관을
김홍식(일동중 교장·전 광주서부교육장)

42.195㎞! 아테네군이 마라톤 평원에서 페르시아 10만 대군을 물리친 승전보를 아테네에 전하기 위해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라는 병사가 달린 거리라고 한다.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그렇게 사실로 믿고 싶은 익숙한 숫자다. 비록 마라톤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숫자와 이야기만큼은 익히 잘 알고 있다. 특히 우리에게는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것이 정서적으로도 크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우리 광주에도 ‘빛고을독서마라톤’이 있다. ‘다양하고 지속적인 독서 운동으로 책 읽는 공동체 문화 형성’과 ‘범시민 독서 운동을 전개하여 독서 기반 문화중심도시 구축’이라는 목적으로 15회째 이어지고 있다. 거북이부터 악어, 토끼, 타조, 사자, 호랑이, 월계관까지 7개의 코스가 있는데 자신의 독서 소화 능력에 맞게 하나의 코스를 선택한다.

이번에 각자 나름대로 다양한 코스를 선택해서 참여한 학생들이 많지만 특히 1학년 학생 중 월계관코스를 완주한 세 학생은 아주 특별하다. 이들이 읽은 분량은 무려 45,206쪽, 43,160쪽, 43,100쪽으로 모두 마라톤의 완주 거리인 42,195쪽을 훌쩍 넘겨서 월계관 완주증서를 받았다. 지난해 3월 30일부터 11월 30일까지 약 8개월에 걸쳐 읽은 독서량이다. 요즘 우리 학생들의 하루 생활이 그렇게 녹록지만은 않은데 실로 놀랍다. 특히 이번에는 코로나로 인해 원격수업과 대면수업을 오가며 많은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학교 수업, 숙제, 학원 수강 등으로 좀처럼 시간적 여유를 찾기 힘든 아이들이다. 그런데도 이만큼의 책을 읽었다는 것은 놀랍고 대단하다는 말 이외에는 할 말이 없다. 너무도 자랑스럽고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다. 350쪽 단행본 기준으로 볼 때 123권에서 130권 정도의 책 분량이고 월 15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는 말이다. 이틀에 한 권 내지는 그 이상의 분량을 소화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우리 광주가 알고 보면 그다지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도시다.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통계를 보더라도 연간 독서량을 기준으로 할 때 전국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문화예술도시를 자처하면서 영 체면이 서지 않는 부분이다. 독서가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문화예술도시라는 말이 한참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우리 빛고을 도시 전체가 책 읽는 분위기로 넘쳐났으면 좋겠다. 저마다 하는 일과 관심사가 다르기는 해도 자기 분야를 포함해서 읽어야 할 책들은 너무도 많다. 우리 아이들이 보란 듯이 해내는 걸 보면 바쁜 시간과 고달픈 현실만 마냥 탓할 일이 아니다. 어쩌면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시간이 더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이렇게 놀라운 독서량을 소화했다는 것은 책을 읽지 않은 어떤 이유도 모두 핑계에 불과하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대학의 한 친구 말을 전해 본다. “지식을 축적하고 통찰력을 키워 주는 건 부차적이고,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인내심입니다. 좋아하는 책도 있지만 읽기 싫거나 힘든 책을 참으며 오랫동안 읽다 보면 탁월한 인내심과 자제력을 갖춘 성향이 형성되면서 성공적인 인생으로 나아간다고 했지요.”

완주증서를 전달하면서 나눈 대화 속에 다시 한번 놀랐다. 아직 어린 중1 학생인데도 벌써 자신의 진로가 뚜렷하고 자기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교사 아니면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자신에게 주어진 그 직분을 누구보다 잘 수행할 것이라는 든든한 믿음까지 들었다.

이게 바로 독서의 힘이려니 생각하니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많은 책을 읽고 접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 조성이 매우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이 더했다.

문화중심도시의 기초 체력은 독서를 통해 길러진다고 확신한다. 우리 모두 ‘독서마라톤 운동’이 ‘빛고을 책 읽기 범시민운동’으로 크게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리더(reader)가 리더(leader)다”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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