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빌어보시게요

이성자(동화작가)

며칠 후면 정원대보름입니다. 어린 시절, 오곡밥에 부럼 깨고 나물 먹고 쥐불놀이하던 일들이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그 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놀이는 막내삼촌을 따라다니며 즐겼던 쥐불놀이에요. 할아버지가 빈 깡통에 나뭇가지 따위를 넣고 불을 붙여주면 손잡이를 잡고 휙휙 돌려요. 금세 불길이 올라와요. 쉬지 않고 돌리며 삼촌 뒤를 따라 싸리문을 나가지요. 동네 아이들이 다 모이고, 우리는 논두렁과 밭두렁에 불을 질러서 마른 풀을 태우곤 했지요. 혀를 날름거리며 퍼져나가던 불길이 무서워 나중에는 울음을 터뜨렸던 기억이 납니다. 문득 비대면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2021년 보름에 무얼 하고 지낼까?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물론 놀이문화가 다양해진 요즈음이라 집안에서도 즐길 수 있는 놀이는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래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혼자여야 한다는 안쓰러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휴대폰이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많은 시간을 홀로 보낼 것 같으니까요. 우리가 자라던 그 때처럼 보름에 시골 할아버지 댁에 달려가서 사촌들과 쥐불놀이 하고, 달집도 태우며, 더위도 팔고, 둥근달 올려다보며 소원을 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참으로 걱정입니다. 비대면 상태로 오랜 시간 지내다보면 사촌들과도 서먹서먹해지겠지요. 이름도 괴상한 코로나19 세대가 되어, 이제는 함께 모여서 즐기는 일이 정말 어색할지도 몰라요. 비대면이 사회생활의 단절로 이어지지 않도록 다양한 방법을 찾아봐야겠어요.

이번기회에 가족끼리 ‘비행기 소원놀이’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요? 재미있으면서도 층간소음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놀이거든요. 먼저 알록달록 색종이를 준비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의 색종이에 소원을 적어 비행기를 접고, 달 모양의 둥근 바구니를 향해 날립니다. 쉽게 들어갈 것 같지만 몇 번이나 반복해야 들어갑니다. 촬영한 영상을 친구들과 공유한다면 라이브로 즐길 수 있어요. 이 놀이는 혼자서도 할 수 있고, 두 명 혹은 세 명도 같이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놀이에요, 소원은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인내와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걸 놀이를 통해 배울 수 있어요. 참, 소원비행기가 바구니 속으로 단번에 들어가면 정말로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어요. 끝까지 확인을 안 해봐서 나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요.

보나마나 이번 보름에 저도 남편과 둘이서만 보낼 것 같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전히 풀리면 다녀가라고 미리 일러두었거든요. 그렇게 말해두어야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예요. 저는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초등학생 ‘해오’를 불러 소원비행기 놀이를 해볼 생각입니다. 해오 아빠 엄마는 일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있을 거라 했거든요. 해오가 요즈음 검은 마스크에 모자까지 깊게 눌러 쓰고 다니더라고요. 전에는 멀리서 봐도 달려와 인사했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내 앞을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일부러 불러 세울 수 없어서 고개를 돌리고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곤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흥얼흥얼 트로트 부르며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일저일 참견하던 해오였는데 어쩌다 이리됐는지 많이 아쉽네요.

온 가족들이 다 모여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해의 건강과 풍요를 빌었던 정월대보름! 그 옛날이 가슴시리도록 그리울 거예요. 그리워도, 그리워도 올해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코로나19 예방접종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마음 단단히 먹고 지혜롭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다 같이 크게 심호흡을 하고 마음속 둥근 달을 향해 소원을 말해보게요. 올해는 개개인의 소원은 모두 접어두고 딱 한 가지 소원 “달님,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소원합니다!”라고 큰소리로 빌어보시게요. 코로나 1차 대유행 당시 대구에서 사투를 벌였던 간호사가 말했듯 “이 싸움에서 이기려면 내가 곧 너이고, 네가 곧 나인 듯 서로를 지켜야”하기 때문이지요. 보름달이 둥근 이유는 둥글게 서로를 배려하면서 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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