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爲民)의 꿈…미풍양속 지켜온 가문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영광 동래정씨(東萊鄭氏) 집의공파 부정공종가 <50>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연정 전경

위민(爲民)의 꿈…미풍양속 지켜온 가문
백성 기근 구제한 명신의 후손
정사의 문과급제로 부흥 기반
영광 백수 입향…충효 가르쳐
400년 유산 보존하며 정신계승

아름다운 낙조로 유명한 영광 백수 해안도로 남쪽에는 넓은 간척지 한가운데 섬처럼 아담한 가지산(歌芝山)이 있다. 수많은 문신과 재상을 배출한 동래정씨(東萊鄭氏)는 가지산 자락의 가지마을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선조의 뜻을 계승하고 학문의 전당을 열어 후진을 양성하며 400여년 세대를 잇고 있다. 한양에서 나고 자라 남쪽 바다 작은 섬에 입향한 죽창공이 어린시절 친구였던 허균과 교유하고, 혼맥을 맺은 평생지기 벗 강항 선생과 태평성대를 갈망하는 시를 짓고 노래했던 곳, 전남 영광 백수면 가지마을의 동래정씨 집의공파 부정공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고려 호장 정지원 중시조
정씨는 신라 건국에 참여한 6촌 중 진지촌 촌장 지백호의 후손이다. 동래정씨는 안일호장을 지낸 정회문을 시조로 모시고, 고려 보윤호장을 지낸 정지원을 중시조로 세계를 잇는다. 동평현의 호장 정문도의 장자인 3세 정목(1040~1105)이 문과급제하고 벼슬에 나가 기근에 빠진 백성을 구제한 명신이다. 영청현령으로 선정을 베풀고, 직사관으로 선종실록 편찬에 참여했다. 감찰어사, 형부시랑, 예부시랑 등을 역임하고 가문을 일으켰다. 정목의 아들 정제, 정점, 정택, 정항 4형제가 모두 문과 급제하면서 세거지인 동래를 관향으로 삼았다. 정택은 찬성사를 지내고 문장과 재능이 알려졌으며, 정항은 동지공거, 한림학사를 지냈고, 그의 아들 정서가 ‘정과정곡’의 작자다. 정택의 손자인 6세 정필(?~?)이 첨사공파를 열었다.

◇재상 배출한 조선 명문 동래정씨
12세 정구령(?~?)은 결성현감으로 선정 베풀어 후손 번창의 길을 만들고, 13세 정사(1400~1453)는 문과 급제해 벼슬은 예문관직제학, 진주목사를 역임했고, 경상도 용궁 담향사에 배향됐다. 그의 아들인 14세 정난손(1424~1500)은 사헌부감찰, 경주판관을 역임하고 사헌부집의, 첨지중추부사에 올랐고 집의공파를 열었다. 정사의 셋째 아들인 정난종(1433~1489)은 성리학에 밝고 글씨에 일가를 이룬 문신으로 문과에 급제해 벼슬은 동부승지, 예조ㆍ형조 참판을 거쳐 동지춘추부사에 이르고 세조실록, 예종실록 편찬에 참여했으며, 명나라에 두번이나 사신으로 다녀와 순성좌리공신 동래군에 봉해졌다. 그가 동래부원군파를 열어 집의공파와 분파되고 정광필 등 17명의 재상을 배출하며 번성한다.

◇영광에 은거한 정홍연 입향조
정난손의 넷째아들인 15세 정광정(1466~1543)은 소과에 합격하고 한성판관, 성주목사, 상의원을 거쳐 돈녕부정을 역임하고 부정공종가를 열었다. 그의 증손자인 18세 정홍연(1565~1639, 호는 죽창)은 한양에서 성장했으나 영광 백수에 은거하며 학문하다 음사로 벼슬에 나가 거창과 동복의 현감, 양천 현령, 익산군수 등을 역임했다. 영광에 돌아와 강륜당을 열어 ‘충효’를 벽에 걸고 후학 양성에 전념하며 여생을 마감했다. 죽창집을 남겼다. 후학들과 가문의 후손들은 영조 때(1751년) 지산사를 건립하고 정홍연을 배향해 추모하고 있다. 훗날 연정을 세워 향촌 자치의 터전으로 삼았다. 가지마을 대보름 줄놀이와 같은 미풍양속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지산사와 강륜당은 영광군 향토문화유산 제7호로 지정됐다 .

◇유산 보존하며 위민 정신 계승
정홍연은 수은 강항의 절친으로 강시경(강항의 둘째아들)이 정홍연의 손녀사위가 됨으로써 혼맥도 맺었다. 강항은 지초(芝草, 은둔학자를 상징하는 불로초과 식물)를 노래하며 은거하라고 ‘가지리(歌芝里)’란 마을 이름을 지어주고, 정홍연은 구름위에 앉듯 평안히 살라는 의미로 운제(雲梯)라는 마을 이름을 지어 서로 주고 받았다고 한다. 허균의 성소부부고 18권 조관기행에는 전국 3대 조창인 법성창을 감독하러 법성포에 왔을 때 어릴적 친구인 정홍연을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교유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가문에서는 동복현감 재임 당시 궁핍한 백성을 위해 면세상소문을 올려 위민정신에 따른 신념을 드러냈다고 전한다. 그의 유품 중 거북모양 연적을 KBS 진품명품 프로그램에 감정해 진품 인정을 받은 후 도둑이 들었으나 다행히 별도 보관한 덕에 지킬 수 있었다고 한다. 종가는 정홍연의 교지 10여매를 비롯해 동경, 벼루, 연적 등 유물을 보존하며 충효 위민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연정 현판
문을 지키는 마을 수호 형상. 물고기를 닮은 형상으로 항상 깨어 있는 눈, 말을 아끼는 입을 특징으로 한다.
강륜당. 백수 인근의 인재 양성을 위해 학문을 닦고 강의했던 서당
강륜당 현판
지산사 현판. 정홍연의 덕행을 기리는 사우
지산사. 지난 여름 폭우로 지붕 천정에 비가 새게됨에 따라, 수리와 관리를 위해 비닐막을 씌워 두었다.
연정 전경
종가가 보존한 연적.벼루 물통 연적의 제작 기법이 독특하다고 평가됐다. / 부정공종가 정기권 전 도유사 사진제공
동경. 정광정의 윤씨부인으로부터 종가가 보존한 청동거울 / 정기권 부정공종가 전 도유사 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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