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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이야기 = ‘순수·위험’ 경계에 선 섬·섬사람들
섬 이야기 컷
 

남도일보·목포대도서문화연구원 공동기획 = 전남 희망 아이콘 ‘섬·바다’이야기
<11> ‘순수·위험’ 경계에 선 섬·섬사람들
새로운 질서 창조·구현하는 개척자 면모 키웠다
독자적인 공동체 정신·가치 구현 ‘뚜렷’성향
육지 중심 국가에 편입되지 않은 채 독립 향유
‘조선시대 공도·해금정책’ 섬 천시 풍조에서 비롯

흑산도 일대 섬들1
섬은 육지와 바다의 경계선에 서 있다고 해서 옛부터 일탈적이고 기형적인 것이며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조선시대 공도·해금 정책은 섬 천시의 풍조와 섬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낳는 시발점이 됐다. 하지만 이런 풍토가 섬 사람들에게는 되레 개척자이자 선도가의 면모을 키우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그래서 설득력을 갖게 한다. 사진은 흑산도를 중심으로 하는 서남해안 다도해 전경.  /위직량 기자 jrwie@hanmail.net

영국의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Mary Douglas)는 자신의 저서 ‘순수와 위험’에서 공동체의 문화와 종교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순수(purity)와 불순(impurity), 오염(pollution), 위험(danger), 리스크(risk), 금기(taboo)의 개념을 분석하였다. ‘경계에 선 것’을 비정상, 일탈, 예외, 변칙이라고 부르면서 ‘순수하지 않은’ ‘위험한 것’으로 간주하는 종교적 의례의 상징성과 그 의미에 주목했다.

‘경계에 선 것’은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기 때문에 ‘오염된 것’이고 그래서 ‘위험한 것’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경계에 선 것’은 ‘위험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예컨대 점성이 있는 끈적한 물질은 고체와 액체의 경계에 있는 까닭에 ‘일탈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경계에 있는 관계로, 경계선에 존재하기 때문에, 경계를 위반한 것이고, 그래서 ‘일탈적인 것’이고 ‘불결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처럼 명확하고 분명한 분류체계의 경계선을 위반하는 것은 불결한 것으로 취급된다.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거나 두 가지 범주의 경계선에 걸쳐 있는 것들은 기존 질서와 체계를 위협하는 ‘일탈적인 것’, ‘불결한 것’, 그래서 ‘불순한 것’이고 ‘위험한 것’이다.

섬은 육지와 바다 사이의 ‘경계에 선 것’이다. 그래서 섬은 육지와 바다의 경계에 있는 관계로 ‘일탈적인 것’이고 ‘기형적인 것’이며 ‘비정상적인 것’이다. 섬은 육지와 해양, 내륙과 바다라는 분명하면서도 명확한 이분법적인 분류체계를 위협하는 ‘불순한 것’으로 규정되어 결국 ‘위험한 것’으로 낙인찍힌다. 이런 이유로 ‘경계에 선 것’은 천시되거나 편견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칙적인 것은 의례를 통해서 모호한 상징성이 부여된다. 경계를 상징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질서의 전복이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육지 중심의 분류체계에서 벗어나는 섬의 존재는 육지 또는 땅과 같은 정상적인 존재들로부터 비정상, 기형, 변칙이라는 낙인을 통해 ‘상징적으로’ 분리 또는 격리된다.

이런 의미에서 섬은 육지로부터 고립, 분리, 유배를 통해 ‘상징적으로’ 분리 또는 격리된 ‘경계에 선’ 장소이다. 섬은 ‘육지의 경계’를 통과해 육지 밖으로 나온 존재이기 때문에 더럽고 불결하고 오염된 존재로, ‘위험한 것’으로 인식된다. 이는 육지 중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기인한 것으로, 육지의 관점에서 섬은 ‘나’인 육지와 ‘외부’인 바다의 경계를 교란하는, 매우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섬 사회는 공동체의 유지와 지속을 위해 상징적으로 ‘순수’가 아니라 ‘불순’ 또는 ‘부정’이라는 ‘오염’ 또는 ‘위험’을 활용하는 사회이다. 섬 사회에서 행해지는 정화(淨化) 의례들은 섬 생태 환경이나 사회질서를 재조정하기 위해, ‘순수’와 ‘위험’의 통일을 꾀하는 창조적인 활동인 것이다.

조선 시대의 ‘섬 비우기’(空島) 정책과 ‘바다 금하기’(海禁) 정책은 섬 천시의 풍조와 섬에 대한 편견, 선입견을 낳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런 부정적인 인식은 섬을 바다로 둘러싸여 육지와 단절된 고립적이고 분리된 공간으로 간주하고, 섬사람들을 못나고 열등하고 후진적인 사람들로 바라보는 편견에서 비롯되었다. ‘섬놈’, ‘뱃놈’, ‘갯것’과 같은 용어들은 이러한 편견을 반영한 것으로, 섬에 대한 국가적 통제와 섬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천대와 천시의 결과로 생겨났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Michel Serres)의 표현을 빌리자면, 섬사람은 노이즈(noise), 즉 소음, 그중에서도 ‘오염된 소음’으로, 순수를 위협하는 ‘위험한 소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섬들, 특히 전남의 섬들은 육지로부터 고립되고 분리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저마다 고유하면서도 독자적인 토속신앙과 토착의례를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육지 사람들이 섬사람을 못나고 미개하며 열등하다고 생각하여 ‘섬놈’, ‘뱃놈’, ‘갯것’이라 비하하여 칭하기도 했다. 섬사람은 경계를 위반한 ‘불순한 것’, ‘위험한 것’으로 낙인찍혀 배제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순한 것’으로 낙인찍혀 배제되는 것들, 즉 ‘경계를 위반한 것’ 또는 ‘경계에 선 것’들이 새로운 질서 창조의 힘을 지닌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경계에 서 있거나 경계선을 위반한, ‘불순한 것’은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고 구현하는 개척자이자 선도자이다. 이런 의미에서 섬사람은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해체하여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혁신가이자 창조자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불순한 것’들은 분류의 경계선을 위반하는 기존 질서의 정원 속에 잡초들과 같은 존재들이다. 기존 질서 속에서 이러한 ‘불순한’ 잡초들은 뽑히거나 솎아지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배제되거나 외면당한 ‘불순한’ 잡초들이 뽑히거나 솎아져서 썩은 다음 잡초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후에 어떻게 다시 퇴비가 되어 새로운 질서에 이바지하는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즉, ‘순수’를 위해 ‘불순’을 배제함으로써 생겨나는 ‘불순한 것’들의 종교적, 상징적 에너지를 그 사회가 체계 확립을 위해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면밀하게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순수’에서 배제되고 외면당하면서 생겨난 ‘불순의 힘’이 어떻게 다시 ‘순수’를 만들어내고 변화시키는지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섬사람들은 오랜 세월 육지 사람들로부터 억압과 탄압을 받았던 역사와 문화 속에서 ‘불순한 것’으로 낙인찍혀 배제되어 경계선을 위반하는 상징과 의례의 과정을 통해 고유하면서 독자적인 섬과 섬사람들 나름의 공동체 정신과 가치, 규범을 유지, 발전시켜왔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경계에서 자연생태친화적이면서 인간존중 배려적인 면모를 강하게 드러내는 섬의 토속신앙과 의례에 잘 반영되어 있다. 그들은 자생적이고 토착적인 토속신앙과 의례를 발전시켜 저마다의 고유하면서도 독특한 섬사람들 특유의 정체성과 세계관을 형성, 변모시켜 나갔다.

전남 서남권의 다도해는 섬과 바다의 접경수역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해역 또는 수역이다. 다도해는 ‘경계에 선 것’이다. 육지로부터 끊임없이 일탈하고 위반함으로써 나름의 독립적이고 창조적인 힘을 키워낼 수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다도해의 섬과 섬사람은 육지 또는 내륙 중심의 국민국가에 편입되지 않은 고립과 독립, 분리, 자유를 확보하고 누릴 수 있었으며, 접경수역의 특장점을 유지·보존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도해처럼 접경수역에서 살아가는 섬사람들은 국민국가의 지배와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꾸려가는, 이른바 ‘국가와 중앙정부의 지배를 받지 않은 사람들’ 즉 ‘조미아(zomia)’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다와 육지, 해양과 내륙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변방’과 ‘주변’의 사람들로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창조하고 선도하는 주역들이다. 지금이야말로 이들처럼 ‘경계에 선’ ‘변방’과 ‘주변’의 가치와 의미에 더 많은 관심과 이목을 집중해야 할 때다.

글/홍석준 교수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장·고고문화인류학과)

정리/박지훈 기자 jhp9900@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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