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단, 22차례 회의 백지화된 까닭은
장봉현(남도일보 전남 동부권취재본부 부장)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대기오염물질 배출 수치 조작 위반 기업들이 민·관협의체가 도출한 권고안 수용을 거부하며 전남도의 연구 용역 설명회에 불참하는 등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기업들이 수용에 난색을 표하는 부분은 자신들이 분담해야 할 여수산단 주변 환경오염 실태조사, 주민건강 역학조사 및 위해성 평가용역 등이다.

이들은 환경오염 실태조사와 산단 주변 주민건강 역학조사를 위한 용역비 53억3천만원이 지나치게 많다는 입장이다.

연구용역도 공정성과 전문성이 결여됐고, 조사 범위와 방법 등 기업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문제 삼고 있다.

그동안 22차례 걸쳐 진행된 민·관협의체 회의에 비용을 부담해야 할 위반 기업들이 단순히 참고인 자격으로 참여해 죄인 취급을 받아 왔다는 점에서 일견 수긍할 수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안타깝다.

첫째 연구 용역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자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2019년 4월 배출 수치 조작 사건이 터진 직후 위반 기업 대표들은 여수시와 시의회를 잇따라 찾아 사과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 마련과 보상 등 모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이번 수용 거부에 앞서 기업들이 전남도에 여러 의견을 개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일방적으로 권고안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이들의 입장은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지역민과의 신뢰와 약속을 우선시하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먼저 보여야 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앞선다. 권고안을 거부한 것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둘째 순서가 잘못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민·관협의체 회의를 통해 권고안 내용이 본격화 된 건 지난해 1월부터다. 이후 수차례 회의가 열렸고, 일부 단체가 주도하고 전문가 입장이 결여된 연구용역이 진행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진작 반발했어야 했다. 잘못됐는데도 일방적으로 마련됐다면, 기업들이 그런 거버넌스를 상대로 반박을 하는 것은 흠잡힐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주민 등 여러 단체가 22차례의 회의를 통해 어렵게 도출한 권고안에 대해 이제와서 수용할 수 없다고 거부하는 모습은 모순처럼 느껴진다.

또 수용 거부 입장을 전남도와 관련 단체에 전달하기 전에 먼저 언론사에 입장문을 배포했다는 점도 언론플레이를 시도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그렇다고 전남도에 책임이 없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여수산단 환경관리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전남도의 빨리 털고 싶은 마음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민·관협의체를 구성하면서 전남도는 책임에서 쏙 빠져나간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수산단 대기오염물질 배출 수치 조작 문제에 대해 지역사회가 언제까지 끌고 갈 수는 없다. 따라서 전남도와 산단 위반 업체들은 하루빨리 마무리 지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관련 기업과 전문가, 민·관협의체가 참여한 가운데 용역 검증 작업을 벌이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만약에 말이다. 산단 기업들이 표면적으로 문제 삼고 있는 용역비를 전남도 또는 관련 기관에서 예산을 세워서 조사를 진행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후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을 요구한다면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기업들의 몫이다. 그 어느 때보다 양보와 소통이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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