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일 남도일보 대기자의 세상읽기

호남은 이낙연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박준일(남도일보 대기자)

어느덧 화사한 벚꽃이 흩날리던 가지에서 연푸른 새잎이 돋았다. 봄의 끝자락에서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보냈다. 5년 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광주 금남로에서,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들고 밤을 세워 박근혜 탄핵을 외쳤다. 새로운 세상이 올 거라는 굳은 믿음 속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그런데 벌써 차기 대선이 10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초기 벚꽃이 만개했던 것처럼 그런 봄날은 가고 최근 30%대로 추락하면서 ‘문재앙’ ‘대깨문’이라는 신조어를 탄생 시켰다.

한동안 차기 대권후보 지지율 부동의 1위,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과 함께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10%대에서 한 자릿수로 급격히 추락했다. 호남권에서조차 줄곧 1위를 유지하던 이낙연 전 대표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밀리며 점차 가시권에서 벗어나고 있다.

4선의 국회의원을 거쳐 전남도지사에서 국무총리로 발탁되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총리로 재직하던 2년 넘는 기간 동안 차기 대권후보 지지율 1위를 지켰다. 서울 종로에서 5선 국회의원이 되고 집권여당 대표까지 거머쥐면서 대권으로 한 걸음 다가가는가 싶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윤석열, 이재명의 선두 다툼에서 멀어진 3위권 후보가 됐다. 그 이유야 많겠지만 김대중 이후 포스트 DJ를 기대했던 호남사람들에게는 안타까움과 실망으로 만감이 교차한다. 이낙연을 바라보는 시선은 기준과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지지율 1위로 잘 나가던 때 왜 본인만의 색깔 없이 지나치게 ‘엄중 이낙연’에만 머물러 있었는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에서 비롯된 보궐선거를 위해 기존 민주 당헌까지 개정하며 공천을 강행해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승부수를 던져 결국 악수(惡手)를 두었는지 원망스럽다. 지난해 4·15 국회의원 총선에서 180석의 거대 여당을 만들어 준 지 불과 1년 만이다. 물론 이번 재·보궐 선거 막판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기 의혹 파문이 국민적 공분을 사는 등 돌발변수가 발생 했지만 충격적 패배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민감한 시기, 이 전 대표의 추락을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지난 1월 중순 광주에서 한 국회의원은 이재명 지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포럼도 벌써 3∼4개가 경쟁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정치인들의 줄서기는 본인의 판단에서 기인한 것이지만 뒷말이 무성하다.

그렇다면 대권주자로서 이낙연 카드는 아직 유효한 건가, 이제는 그런 마음을 접어야 하는 건가. 호남 민심의 고민이 깊다. DJ는 물론 노무현, 문재인에서 보듯 호남에서 민심을 얻어야 전국 기반을 기대할 수 있다. 태생이 전남인 이낙연 전 대표는 더욱 그렇다. 여기에 전북 출신인 정세균 전 총리까지 호남 주자를 자임하며 대권 레이스에 가세해 반등의 기회를 잡기가 녹녹지 않다.

자칭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은 차고 넘치지만 호남 민심을 선택받은 정치인은 현재까지는 이낙연 전 대표다. 따라서 호남 민심이 이낙연을 포기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하고 싶다. 고향은 어머니의 품과 같다. 어머니의 품안은 늘 따뜻하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치러지는 오는 9월 10일까지는 5개월의 기간이 있다. 지금은 포기할 때가 아니다. 아직 반등할 수 있는 한 두 번의 기회는 더 있다. 삼보일배라도 하는 심정으로 다시 호남의 절대적 지지부터 회복해야 한다.

응원이 무슨 뜻인가. 곁에서 성원하고 호응하여 도와주는 것이다. 소중한 인적 자산을 금방 팽개치기는 쉬워도 다시 만들기에는 많은 세월을 필요로 한다. 평생을 노력해야 할지 모른다. 지금과 같은 프레임 씌우기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객관적 사고를 갖지 못한다. 돌이켜보면 DJ도 천형과도 같은 지역감정의 벽에 갇혀 번번이 대권 도전에 실패했다.

71년 4월 27일 54살의 박정희에 맞서 47살의 김대중은 제1야당인 신민당 대선후보로 나서 낙선한 이후에도 수없는 도전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98년 마침내 제15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다. DJ 개인적으로는 대권 도전 27년만의 결실이었고 한 맺힌 호남민들의 응어리도 그렇게 풀어졌다. DJ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날 광주 금남로 일대와 전남도청 앞 광장에는 수 많은 인파가 몰려 축제로 밤을 세웠다. DJ 이후 20년 만에 처음으로 전국적 지지기반을 고르게 가진 집권 여당의 대권후보가 이낙연 전 대표다. 그런 이 전 대표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자.

호랑이는 아무리 배가 고파도 풀을 뜯지는 않는 것처럼 자신의 입신양명과 출세를 위한 정치인이 아닌 당당한 기백으로 추구하는 길을 올곧게 가길 기대한다. 사소한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가라. 부디 이 전 대표가 친문의 정치가 아니라 이낙연의 정치를 해주기를 바란다. 거기에서 호남은 대권의 희망을 보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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