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기고-아버지와 막걸리 한잔

어성용(농협 구례교육원 교수)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 했어요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 잔’

최근 ‘막걸리 한잔’이란 노래를 듣던 중 위 가사에 눈길이 멈춘다.

어렸을 적 동생과 나에게 있어 가족이라는 범주의 90% 이상을 어머니가 차지했다. 그 만큼 모든 걸 어머니가 다 해주셨다. 화물트럭을 운전하시던 아버지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밖에서 일하는 날이 대부분이였고, 어쩌다 집에 계시는 날도 아버지의 존재적 역할은 작 기억나지 않는다. 당연히 어렸을 적 아버지와 추억도 찾기 어렵다. 그만큼 아버지는 희미하고 어려운 존재였다.

그런 아버지께서는 가끔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셨다. 그때는 그 심부름이 그렇게 가기 싫었다. ‘나와 동생이랑 좀 놀아주시지…’ 하는 생각과 함께 막걸리 드시고 바로 주무실 아버지 모습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노래 가사처럼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본인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살고 싶다며, 농촌에 터를 잡고 소일거리로 밭농사를 조금 하신다. 본격적인 농사철의 시작이라, 지난주 고추를 심기 위해 고랑을 따고, 비닐을 덮고, 고추심을 구멍을 비닐에 낸 후 흙으로 덮어주는 일을 하고 왔다.

점심시간 아버지가 막걸리 한잔을 내어 오신다. 농사일로 땀을 흘린 후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니, ‘카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역시 막걸리다.

막걸리 잔을 함께 얼마나 기울였을까? 그제야 비로소 당신의 노력과 고된 삶이 녹아든 아버지 인생을 듣게 되었다. 눈물이 왈칵한다. 그저 철없던 시절 아버지의 부재만으로 아버지를 원망했던 그 자식을 키우기 위해 희생이라는 단어만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그런 삶이였던 것이다. 아버지 인생에 자신은 없었다. 그저 자식과 가족만을 위해 살아오신 아버지만 있을 뿐….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막걸리 한잔’ 노래를 흥얼 거린다. 나에게 있어 막걸리는 아직도 추억이다. 아버지의 심부름이 싫었고, 자식들과 함께 하기보다 그 막걸리를 드시고 주무시는 아버지가 싫었던… 썩 유쾌하지 못한 추억이다.

어느덧 나도 아버지가 된지 16년 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난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 인가?’ 스스로를 반성해 본다. 문득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나보다 더 바쁜 아들과 함께 할 추억을 만들 기회가 쉽지 않음을 알았다.

장기화된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되며 혼술 문화가 늘어나고,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들이 직접 막걸리 담그는 모습이 방송되며, 옛것을 즐기는 ‘뉴트로 감성’ 문화를 경험하려는 ‘막걸리를 직접 만들어 먹기’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한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시골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뵈려 한다.

내 아들에게는 농촌의 한가로움이 주는 여유를 가르쳐주고, 내 아버지가 드실 막걸리를 함께 담그며, 나의 아들에게 막걸리에 대한 유쾌한 추억을 만들어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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