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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밀양박씨(密陽朴氏) 정혜공파 태양공종가 <57>

장성 밀양박씨(密陽朴氏) 정혜공파 태양공종가 <57>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역사에 길이 빛나는 ‘청백리(淸白吏)’…백비 가문
수양 전횡 개탄하며 은거한 박연생
본관 태인으로 바꾼 돈재공 후손들
청백리 박수량 정혜공파 열어
청렴정신 계승 공간 ‘백비’·청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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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군에서 복원 관리하는 청백당 전경

수많은 공직자와 선비의 본보기가 됐던 조선의 ‘청백리’로는 황희, 맹사성, 박수량이 꼽힌다. 전남 장성 황룡면 아치실에는 조선 명종조 청백리 박수량을 계승하고 ‘백비’에 담긴 청백리정신을 대대로 실천하고 있는 밀양박씨(密陽朴氏) 돈재공후 정혜공파 태양공종가가 있다. 청빈한 생활로 선공후사(先公後私), 여민동락(與民同樂) 등 선비의 삶을 실천한 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박언상 중시조, 박연생 돈재공파 열어
밀양박씨는 신라를 개국한 박혁거세를 시조로, 그 후손인 30세 밀성대군 박언침을 중조로 모신다. 장성 밀양박씨 정혜공파는 밀성대군 8세인 고려 도평의사사 밀직군 박언상(?~?)을 중시조로 모시며 계대를 잇고 있다. 박언상의 7세손으로 소감을 역임했던 박거인(?~?)이 고려말 정쟁에 화를 입고 인의현(태인)에 유배돼 전북 태인과 연을 맺었다. 그의 아들 박승봉(?~?)이 고려에 절의 지켜 낙향 은거한 의인으로 알려졌다.

박거인의 증손인 11세 박연생(?~?, 호는 돈재)은 단종조 충무시위사 대호군을 역임했으나 수양대군의 왕권 탈취를 개탄하며, 남쪽으로 낙향한다. 세조는 좌익원종공신녹권을 내리며 출사를 권유했으나 박연생은 병을 핑계로 벼슬하지 않고 담양 월산에 은거하며 박거인을 1세로 하는 태인박씨로 개관했다. 이 때부터 1831년 후손 박규혁 등이 상소로써 밀양(밀성)박씨 돈재공파로 복관 승인을 받을 때까지 태인을 본관으로 했으며 박수량도 태인박씨로 과거급제한 기록이 남게 됐다. 밀양 본관의 돈재공파의 분파로서 정혜공파 등이 계대를 잇고 있지만 현재도 하남처사 박수온의 후손은 태인을 본관으로 하고 있다.

◇박수량 정혜공파 백비 보존
박연생의 손자 박현손(?~?)은 선략장군을 증직 받고 다섯 아들을 두었는데 큰 아들 박종원은 박수량의 아버지고, 세째 박이종은 모친 전주이씨 가문에 외손봉사했으며, 다섯째 박계종(1447~1512, 호는 야당)은 홍문관교리를 역임하고 경북 안동에 야당정을 짓고 은거해 야당공파를 열었다. 14세 박종원(?~1527)의 네 아들 중 박수온(?~?)은 학덕으로 경기전 참봉을 제수 받았으나 재야에서 학문에 매진한 처사이고, 둘째가 청백리에 녹선된 백비의 주인공 박수량이다.

15세 박수량(1491~1554, 호는 아곡)은 홍문관교리를 역임한 김개(?~?)의 문인으로 문과 급제하고 벼슬은 광주향교 훈도, 승문원부정자, 예조좌랑, 춘추관편수관, 동부승지, 경연참찬관을 거쳐 공조·호조·예조 참판, 한성부판윤, 형조·호조 판서,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했다. 지방관으로는 충청도사, 고부군수, 보성군수, 나주목사, 함경도관찰사, 담양부사, 경기도관찰사 등을 맡아 예법을 지키고 지극한 효성의 본보기를 보였으며, 가뭄과 흉년 대책을 세우고 전염병을 우려하며 의약품을 확보하는 등 마음으로 백성의 고통을 살피는 청렴한 목민관으로 알려졌다.

30여년 관리 생활을 지중추부사로 마감하고 죽음에 이르렀을 때 한양에 집 한 채도 없었고 자손들이 장례 치를 비용이 없다는 사실을 안 명종은 청렴 소탈한 덕을 칭송하며 장례 제수와 호송인력을 제공했다. 나라에서 청백당을 지어 으뜸 선비 박수량의 뒤를 따르도록 권장했으며 장성 수산사에 배향했다.

◇유물 보존 청렴정신 계승 힘써
청백당은 정유재란에 불타고 현대에 장성군이 청백한옥체험관으로 복원했으며, 청렴교육을 위해 백비를 찾는 공직자들의 연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8세 박태양(1731~?)은 장성 황룡 아곡리의 아치실에 종가를 열고 8대를 잇고 있다. 행의청심(行義淸心, 마음을 맑게 가지고 바른길을 취하여 행하라)이라는 가훈을 남겼다. 장성군이 운영하는 청백당에 비해 종택은 매우 왜소하고 토지 분쟁에 휘말려 수난을 겪고 있다. 종가는 종택이 비록 한국전쟁 때 불타고 다시 세웠을지라도 박수량 생가가 존재했던 위치에 현존하는 건물인 만큼 복원 연구 및 보존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며 선조의 청렴정신 계승에 힘쓰고 있다.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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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사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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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사 숭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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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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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재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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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량 묘비인 ‘백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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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량 묘와 백비. 박수량의 청렴을 알면서 비에 새기는 것은 오히려 잘못 알려질 수 있으니 비문 없이 그대로 세웠다는 ‘백비’다. 그가 전라도관찰사로 있을 때 “가을부터 따뜻하고 무더운 것은 봄 여름의 환절기 같기도 하고, 강풍(强風)과 폭우(暴雨)에다가 우박이 내리고 눈이 날리는 등 한냉(寒冷)한 기후는 겨울 같기도 하며, 짙은 안개가 사방에 깔려 아침 내내 걷히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절후가 순조롭지 못할 때에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기 쉬운데 임신부는 더욱 병에 걸리기 쉽습니다. 약제(藥劑)를 내려 보내어 백성의 목숨을 널리 구제하게 하소서.”라며 장계를 올린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 백성을 사랑한 목민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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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한 청백당 앞 경포정과 수령 350년된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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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한 청백당 안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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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한 청백당의 강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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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한 청백당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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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량 사당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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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량 사당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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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량 생가터로 추정되는 종가 종택. 훼손을 막고 보존하기 위해 보호천막을 설치했다.
박수량의 생가터로 추정하는 곳은 장성 황룡 아곡리에 세 곳이다. 첫째는 효자로 알려진 하원 박학구의 가옥이고, 둘째는 사당과 재실이 있는 은행나무 앞이며, 세째는 현재 태양공종가가 있는 곳이다. 종가는 노사 기정진의 노사집 기록 등을 근거로 박수량 생가터가 태양공종가터에 전승되어 오다가 한국전쟁 때 소실되고 그자리에 재건축해 현재에 이르렀다고 전한다.

서정현 기자  ndpl@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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