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북스-사랑은 내가 주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사랑은 내가 주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김삼환 지음/마음서재

“삶과 죽음은
사랑이라는 하나의 무늬를 짜며
다시 태어난다”
한 차를 타고 가다 아내를 잃은
저자가 눈물을 이겨낸 과정 기록
앞으로 아플 수도 있는 이들을 위해
두 팔 벌려 안아주는 따스한 위로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모든 추억이 아름답다. 사막여행은 고통의 체험인 만큼 황홀한 아름다움을 남기는 여행이다. 북극성으로 떠난 아내는 돌아오지 않고, 나는 이제 더 이상 혼자 사막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p187)

사별과 이별, 상실은 모두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다. 그러니 어떤 불행도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책의 저자, 김삼환 시인은 말한다. 책은 먼저 아팠던 저자가 앞으로 아플 수도 있는 모든 이들을 두 팔 벌려 안아주는 진실의 일기다. 그 팔에는 상처와 멍이 가득하다. 상처에는 이름들이 붙어 있다. 진실과 사랑, 영원 같은 것들이다.

남편, 아버지, 가장으로서 모범적으로 살아온 한 남자의 인생은 아내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이후로 완전히 달라진다. 같은 차를 타고 함께 여행 가던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내를 남편은 여행복 차림 그대로 배웅한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나서 남편은 하염없이 걷고 또 걷다가, 한 번도 가까이한 적 없던 낯선 나라로 훌쩍 떠난다. 살아생전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함께했으면 좋겠다던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책은 저자가 아내와 사별 후 걷고, 떠났고,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눈물을 이겨낸 방법을 담은 뜨거운 기록이다. 저자는 30여년을 함께 했던 아내를 갑작스럽게 떠나보내고, 한국의 길을 수백키로 걷다, 문득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고 싶어했던 아내의 바람을 기억해낸다. 그렇게 1958년생 저자는 우즈베키스탄에 코이카 국제봉사단이 되어 도착했다. 그곳의 카라칼파크국립대학교에서 한국어를 지도하며 혼자로 살아갔던 261일의 시간을 글로 남긴다. 이런 까닭에 책은 매일매일 연재되는 글을 읽는 기분이 든다.

1장 ‘나는 떠났다’에는 아내와 사별한 아픔을 잊어보려던 저자가 우즈베키스탄으로 떠나 낯선 이국의 땅에서 적응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는 동해안 해파랑길을 비롯한 많은 길을 발길 닿는 대로 걷고 또 걷는다.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건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해외봉사단원을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함께 하자고 말한, 그립고 그리운 아내의 꿈이 담긴 일이었다.

2장 ‘나는 그리워했다’는 세상을 떠난 아내를 향한 저물지 않는 사랑, 사무치는 그리움이 응축되어 있다. 저자는 사별한 아내가 있는 곳을 ‘북극성’으로 표현한다. 맑은 가을날 꽃과 바람과 가을 햇볕이 서로 어우러진 장면 몇 장을 사진 찍어 북극성으로 보내는 편지에 동봉한다고 말한다. 바람의 주머니에 편지를 넣어 북극성으로 보낸다는 그의 애절한 마음은 생사를 뛰어넘는 지고한 사랑을 보여준다.

3장 ‘나는 걸었다’에는 무너진 마음을 끌어안고 일어서려는 순간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갖가지 풍경들로 가득한 길을 걸으며 아픔을 치유해가는 과정, 나아가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얻은 빛나는 통찰을 보여준다. 누쿠스의 도슬릭 강변을 산책하며 누군가의 설움에 겨운 눈물로 인해 도슬릭 강의 높이가 한 뼘쯤 높아졌다는 시인만의 감수성과 사유가 돋보인다. 저자는 누쿠스에 머물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풍경과 무늬를 받아들이는 한편, 아내와 함께했던 오지 여행의 추억들을 풀어놓는다.

마지막 장인 4장 ‘나는 가르치고 배웠다’는 저자가 누쿠스의 카라칼파크국립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슬픔과 그리움을 녹이는 모습을 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실크로드의 중심에서 섭씨 45도를 웃도는 한여름 더위와 영하의 날씨가 계속 이어지는 겨울을 무사히 보내고 새봄을 맞이하는 동안 마음에 평온이 깃든다. 저자는 봄빛이 완연해질 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의 기습으로 중도에 귀국하게 되지만 짐을 풀고 다시 싸는 일 또한 인생의 흐름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저자는 수십 년 전 아메리칸드림을 꿨던 자신처럼 희망을 품은 눈망울로 코리안드림을 꾸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청춘들을 바라보며 다시, 가슴이 뛴다.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 있는 듯하지만 아내를 떠나보낸 그날 이후 겨우 숨만 쉬던 일상에 다시 훈김이 새어 나오고 숨결에도 온기가 돌아오기 시작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말에 생기가 돌고 행동에 에너지가 솟구치는 걸 느낀다.

인생에서 가장 큰 정신적 고통이라는 사별을 겪고 나서 저자는 걷고,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여정을 통해 영원히 출구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터널에서 마침내 빛의 세상으로 걸어나온다. 앞으로 주어진 삶은 무엇이 되기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숙고하겠다는 저자의 담담한 결심이 가슴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김명식 기자 msk@namdonews.com

저저 김삼환.

▶저자 김삼환은

1958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다. 광주상업고등학교와 세종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예술경영학과,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은행에서 오래 근무했고 외환은행 지점장을 지낸 후 은퇴했다. 1991년 ‘한국시조’ 신인상으로 등단했고, 한국시조작품상과 중앙시조대상을 수상했다. 시조집으로 ‘묵언의 힘’ 등이 있고, 시집으로 ‘일몰은 사막 끝에서 물음표를 남긴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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