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VS 이발관그림

이재남(양산초등학교 교감)

예술작품의 세계는 참 묘하다. 물감을 대충(?) 흐뿌려 놓은 작품으로 유명한 잭슨폴락이라는 화가의 그림은 얼마나 할까? 2015년 9월 헤지펀드사 창립자는 잭슨폴락의 ‘NO.17A’를 우리돈 2천133억에 구매하였다고 한다. 2천억짜리 그림 한점이면 학교를 10개나 지을수 있다. 이런 그림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비싼걸까? 누가 훔쳐갈까 무서워서, 집안에 걸어놓을수도 없을 것 같다. 100년전 뒤썅이라는 예술가가 철물점에서 변기 오줌통(작품명:샘)을 전시회에 출품했는데, 이 작품은 <세기의 변기>로 평가받고 있다. 참 모를 일이다. 우리 집에 있는 소변기는 개도 거들떠보지 않는데, 비엔날레 전시관에 있는 연탄집게는 예술이고, 우리 집 난로는 고물장수도 안가져 가는지.

어느 재벌가가 재산축적을 위해 생전에 모아두었던 그림을 사후에 사회기여 차원에서, 국가에 기증한다고 한다. 3조원의 소장품 속에는 모네의 <수련>이라는 그림도 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시가로는 몇백억쯤 되는 대가의 작품을, 외국에 팔지 않고 국내서 볼 수 있어서 예술보국의 은혜로운 일이라고 수근 된다.

예술작품은 금융상품에 비해, 묵혀둘수록 값이 올라가서, 재벌들의 절세와 부의 축적 수단으로 애용된다고 한다. 신성한 예술을 돈벌이로 생각한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을 법하지만, 도대체 예술작품 속에는 무엇이 있길래 이다지 비싼 것일까. 나는 언젠가 어떤 전시회에 가서, 옆지기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왜 저런 그림보다, 이발관 그림이 더 좋은지 모르겠다. 닭들이 한가하게 노닐고, 싸리문 초가지붕 옆에는 물레방아가 돌고, 높은 산 구름 한 점 드리우고, 폭포수 물안개 피우며, 미역감는 아이들, 낚시하는 강태공, 해 질 녘 지게 지고 외나무다리 위로, 소몰고 오는 저 그림이 나는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고 하자, 그이는 뜨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경멸스럽다는 듯이, 수준이 이발관 수준이라서 그런다고 한다. 아무리 수준을 높이려고 꼰 뒤 발을 서서 봐도, 잭슨폴락의 저 대충 뿌려놓은 물감 그림은 나도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불온함(?)이 가시지 않은 이유는 뭘까. 천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에 문제가 있는지, 보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지 둘 중 하나에는 이상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나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저 비싼 그림 앞에서 처절한 의문의 1패를 당하며, 이 무식함과 자괴감의 근원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예술의 위대함은 예술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내재되어 있는가? 세기의 명작이라고 거론되는 작품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걸작일 수 있는가. 집안에 나뒹구는 개밥그릇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며, 경매에서 고가에 구입하면 걸작이 되는가. 복사 불가능한 예술의 세계가 풍기는 고유한 아우라를 느껴보라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뒤썅의 변기는 그냥 오줌통일 뿐인 걸 어쩌란 말인가. 고상한척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씩 줄을 서서 모나리자의 실루엣만 구경하고 온 날 무엇인가에 사기(?)당한 느낌은 무지한 탓일까. 혹자는 작품이 탄생하던 그 시대로 돌아가서 반추해 보면 작품의 위대성이 보일 것이라고 하지만, 이 시대도 호흡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시대까지 돌아가기에는 상상력과 지력의 고갈이다.

모네의 <수련>이 전시되면, 꼭 찾아가서 작품 속에 있는 예술적 가치를 느껴볼 요량이다. 어느 재벌가의 사회적 선의(?)가 아른거리지 않고, 오직 작품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압도당해볼 생각이다. 몇백 억대 작품의 은혜를 받아서, 언젠가는 심 봉사가 눈을 뜨듯이 범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겁나 비싼 아우라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종일 봐도 다 못보는 거실의 저 <이발관그림>이 식구들의 눈총을 잘 견딜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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