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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5화>명당과 아기장사 (8) 앙천대소(仰天大笑)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5화>명당과 아기장사 (8) 앙천대소(仰天大笑)

<제5화>명당과 아기장사 (8) 앙천대소(仰天大笑)

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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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날 밤 중국인은 무슨 결심을 했는지 커다란 쇠말뚝을 마련했다. 중국인은 다음날 산에 올라가 창룡주령과 장군대좌를 이은 산줄기에 쇠말뚝을 박아 혈을 끊어 버렸다.

“천하의 주인이 절대로 돼서는 아니 될 부덕하고 악한 자가 탐욕만으로 얻은 자리에 앉아 주인행세를 한다면 그 피해는 만백성이 입게 되는 법!! 출세 욕구에만 빠진 자가 천하를 쥐게 되면 천하 만민은 아귀지옥 고통 중에 빠져 헤맬 터! 권력쟁탈과 시기질투에 빠져 탐욕에 눈먼 자들에게 천하명당은 죄악일터! 어리석은 백성은 자자손손 대대로 노예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할 터! 그렇다면 차라리 이런 탐욕으로 발현될 자리는 반드시 파(破)를 해야 할 터! 으으하하하하하하하!”

중국인은 쇠말뚝을 쾅쾅 내리박고는 다시 고개를 들어 앙천대소(仰天大笑) - 하늘을 바라보며 실성한 듯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천하명당을 찾아 조선 땅까지 왔다가 결국 명당의 허상을 뒤늦게나마 깨달아 알았단 말이더냐! 오도(悟道)로다! 오도(悟道)로다! 으으하하하하하하!”

도대체 중국인이 무엇을 깨달아 알았기에 저렇게 크게 소리치며 웃는 것일까? 그로부터 며칠 후 중국인은 중국에서 가지고 온 자기 부모님 유골을 쓸 묘 자리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또 며칠 뒤 그 유골을 나주시 봉황면 덕림리 신창마을 근처에 묘를 썼다. 중국인이 그 묘를 쓰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으으하하하하하하하하!’ 크게 웃으면서 그곳을 앙천대소(仰天大笑) 묘 자리라고 했다.

앙천대소자리에 묘를 쓰고 중국으로 돌아가기 며칠 전 중국인은 산 아래 신창 마을 사람들을 새로 쓴 자기 부모 묘 앞으로 모두 모이게 했다. 커다란 돼지도 잡아 삶고 각종 생선에 과일, 떡에 나물 등 걸게 마련한 음식과 많은 술을 마을 사람들에게 푸짐하게 대접해 베풀며 중국인이 제 부모 묘를 가리키며 말했다.

“마을 분들! 추석 전날 이 묘를 벌초해 준 사람은 이듬해 가뭄도 안타고 농사를 아주 잘 지을 것이오!”

사실 이 고을에 중국인이 부모 유골을 들고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자 고을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갖고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 했는데, 이렇게 자기 부모 묘를 다른 나라 땅에 와서 쓰는 것이 아마도 풍수지리에 도통한 사람일거라고 여겼고, 그 중국인의 그때 그 말을 사람들은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그 말을 남기고 중국인은 바람처럼 홀연히 떠나가 버렸고, 이듬해 마을 사람 누군가 추석 전날 그 묘를 벌초해 주었는데 거짓말 같이 이듬해 농사가 아주 잘되었다. 그래서 정말 그 중국인이 풍수지리에 도통한 도사로구나 생각하고는 너나없이 다투어 벌초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던 어느 해인가 이 앙천대소 묘에 음력 팔월 열 나흗날 밤 첫닭이 울고 바로 가서 벌초를 하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이 퍼졌고, 마을 사람들이 앞 다투어 앙천대소 묘를 먼저 벌초하려고 추석 전날 밤을 거기서 꼬박 지새우기도 하는 것이었다. 중국인은 해마다 조선 땅에 올 수 없었기에 제 부모 묘의 관리와 벌초를 위해 그런 나름의 비기(秘技)를 썼던 것이 아니었을까!

한편, 장군대좌에 묘를 쓴 김씨의 아내는 바로 태기가 있더니 열 달 만에 떡 두꺼비 같은 옥동자를 낳았다. <계속>

정희윤 기자  star@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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