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옥 송원대 교수의 남도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
사람이 살아가면서 밟아가야 할 단계

백현옥(송원대 교수)
 

한 인터뷰에서 여배우들은 주연으로 데뷔하고 조연으로 은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자신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주인공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혼란을 겪는다는 인터뷰도 본 적이 있다. 화려하게 데뷔를 하지만 나이에 따라 자신의 역할이 변해가는 단계를 쉽게 인정하기도, 받아들이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 ‘윤여정’ 배우가 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수상하는 그녀의 뒤로 그녀가 지금까지 해왔던 다양한 역할이 스쳐지나갔다. 조연으로 배역을 소화하더라도 흔히 말하는 ‘믿고 보는 배우’ 중 한명이었고, 한국인 최초로 오스카 시상식의 후보로 그리고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을 보니, 그녀의 삶에서는 진정한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녀가 주축으로 나오는 윤식당과 윤스테이를 보면서 항상 배우려는 태도와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하는 모습, 능숙하게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 등이 꽤 멋져 보였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아, 저렇게 살아야 겠구나’ 사람들은 누구나 거쳐야 할 단계라면 꼭 그녀만큼 멋지게 해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사람은 살아가면서 다양한 과업을 이수해야 한다. 이 과업은 본인 스스로가 이루어야 하지만 주변에서 충분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신체적 접촉, 심리적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것부터 출발해서 죽기 전 스스로의 일상을 잘 정리하는 것까지 모두를 포함한다. 나의 과업은 어떤 것일까?

언제나 내 품안의 자식일 것 같던 딸 아이가 지난 4월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친구처럼, 어떨 때는 엄마처럼, 대개는 딸처럼, 내 곁에 있어줄 거라 생각했었는지 마음이 참 어려웠다. 여러 달 결혼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혼자서 척척 해 나가는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엄마의 역할이 없어서 참 과정에서 나도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식 날 사위 옆에 서있는 딸을 보면서 눈물이 났다.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서른이 넘은 딸인데도 벌써 보냈다는 마음이 든다.

그렇게 눈물 젖은 결혼식이 끝나갈 무렵, 양가 부모님들 만세삼창 하라는 사회자의 진행 멘트에 어느 누구보다 큰 목소리로 만세를 외쳐주신 안사돈 덕에 울다가 웃는 마무리가 되었다. 덕분에 여러 사람들이 딸이 시댁에서 많이 사랑받고 환영 받는다는 말을 듣고 감정이 많이 가벼워졌다. 결혼준비를 지켜보고 결혼식이 진행되는 내내 딸을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아들 하나 더 들였네.’라고 이야기 해주어 생각의 전환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람은 늘 큰 행사가 생기면 그로 인해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생긴다고 하는데 이번 일로 나는 참 많은 사람을 얻고 또 한참 배웠다.

안사돈과 함께 혼주 메이크업을 받는 동안, 꽤 여러번 “사돈, 나는 다 끝났어요. 내 아들이 며느리 남편이 되는데 너무 좋아요.” 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너무 밝은 표정의 사돈 모습이 한편으로는 부럽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쾌하게 넘기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자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을 들인다는 사고가 반가웠고, 내 아이를 아껴주겠다는 약속이 감사했다.

이번에 결혼식을 한 딸은 착실하게 본인의 과업을 잘 이루어 가고 있는 것이다. 마냥 어리게만 여겼던 아이가 한 가정을 꾸리고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에 놓였다고 하니 서운하고 신기하고 믿기지 않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자녀들이 결혼 할 생각을 안 한다고 걱정하는 것을 보니 그 단계를 잘 밟아나간 딸이 고맙고 또 미안했다.

자신의 역할을 잘 찾아가는 윤여정 배우님처럼, 또 자신에게 오는 변화를 누구보다 긍정적이고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나의 사돈처럼 나도 내가 겪어내야 할 단계들을 좀 더 의연하게 받아들일 연습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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