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경주이씨(慶州李氏) 성암공파 월곡 종가 <62>
한류콘텐츠 보물창고 광주·전남 종가 재발견

청렴한 절의정신·효행으로 빛나는 가문
신라 화백회의 수장 이알평 시조
고려 대문장가 이제현 배출
기묘사화 낙향 이해·이영우 추모
효행 계승하며 영강사 보존 힘써

영강사 전경

풍요로운 남도의 젖줄 영산강이 굽어 흐르는 나주 영산포에는 ‘삼한 명족’경주이씨(慶州李氏) 의 영강사(나주 향토문화유산 제18호)가 있다. 나주 경주이씨의 세거지는 나주 동강 장동리인데 성암공파 월곡종가는 한국전쟁 때 다도면 덕동의 선산으로 종택을 옮겨 가문의 전통을 잇고 있다. 청렴 강직한 선조들의 절의정신을 학덕과 효행으로 계승하고 있는 경주이씨 성암공파 월곡종가를 찾아 가문의 내력을 살펴본다.

◇강직한 고려 충신 이인정 중시조
경주이씨는 사로 6촌 중 알천양산촌 촌장으로 신라 아찬에 오른 이알평을 시조로 모신다. 그는 6촌의 수장으로 화백회의를 주재해 혁거세를 국왕으로 옹립하는 활약으로 신라 건국에 공을 세워 좌명공신이 됐고 유리왕으로부터 이씨 성을 받았다. 신라 진골의 관등인 소판을 지낸 이거명(?~?)을 중시조로 세계를 잇고 있다. 그 손자 이금서가 신라 경순왕의 사위로서 고려조 삼한공신에 녹훈됐다.

중시조 16세인 이인정(?~?)은 성품이 강직한 고려 충신으로 우정언, 광주판관, 전중시사, 기거사인을 역임하고 영강사에 배향됐다. 그가 성암공파를 열었다. 그의 조카인 16세 이제현(1287~1367, 호는 익재, 역옹)은 고려조 성리학자이며 경지에 오른 문장가로서 과거 급제하고 서해도안렴사를 거쳐 원나라 연경 만권당에서 충선왕을 보필했다. 중국 내륙 강남, 서촉 등을 사신으로 왕래하며, 고려를 대표해 조맹부 등 중국 문인들과 학문과 식견으로 교유했다. 정당문학, 도첨의정승, 문하시중에 오르고 공민왕의 개혁정치 당시 국정을 총괄했다. 과거를 주관하는 지공거로서 이곡, 이색의 부자를 문생으로 선발했고 ‘역옹패설’, ‘익재난고’ 등의 저술을 모은 익재집과 원대시기 고려역사서로 가치를 인정받은 ‘국사’를 남겼다.

◇기묘사화 후 낙향 은거해 후학 양성
성암공 이인정의 8세인 이해(1468~1525, 호는 모산)는 생원시에 합격하고 사림의 정계진출에 참여했는데, 기묘사화에 연루됐다고 안방준의 기묘유적에 기록됐다. 이해의 조카 이영우(?~?, 호는 야은)는 효행으로 알려지고 마음 씀이 구차하지 않고 뜻을 세운 것이 꿋꿋해 조광조의 개혁정치에 의해 설치된 현량과에 추천돼 관직에 나갔다가 기묘사화 이후 숙부인 이해와 함께 나주로 낙향했으며 영강사에 배향됐다. 영강사에 배향돼 추모하고 있는 이원(?~1504)은 박팽년의 외손자로서 김종직(1431~1492, 호는 점필재)의 문인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호조좌랑을 거쳐 봉상시를 역임했다. 이 때 스승인 김종직에게 문충(文忠) 시호를 제수할 것을 제안하고, 무오사화(1498년)에 곽산에 유배됐으며 4년만에 나주로 옮겨 유배생활 중 나주 지역사회 향촌의 후진양성에 기여했다. 그는 곽산 월포사, 나주 영강사에 배향됐고, 금강록, 재사당집을 남겼다. 이원의 동생 이구와 이영우의 아버지는 동명이인으로 역사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이원의 동생 이구(1469~1526, 호는 사미정)는 문과급제해 승문원정자, 예조좌랑, 고성현감을 지내고 무오사화, 갑자사화에 연루돼 강원도 홍천에 유배됐다가 중종반정 이후 이조좌랑, 사헌부지평을 거쳐 동부승지, 충주, 홍주 목사를 역임하고, 장예원판결사에 올랐으나 칭병 사직하고, 홍천에 사미정을 짓고 은거했다. 이해의 손자인 이사영(?~? )은 명종조 식년시 문과 갑과에 아원(2등)급제해 해남군수를 역임하며 미암 유희춘 등과 교유했다.

◇안빈낙도 초심 지키며 정신계승
11세 이유경(1543~1609)은 효성이 지극한 효자로서 모친 화순최씨가 병이 났을 때의 일화가 전해진다. 의원이 뱀 쓸개로 약을 지어먹어야 특효라는 처방에 추운 겨울을 한탄하며 목 놓아 울었는데 3일 만에 문득 뱀이 뜰 안으로 들어와 약을 지어 병이 낳았다는 이야기다. 월곡종가는 이해의 10세손이며 중시조 17세인 이광두(1741~?, 호는 월곡)는 화산 이정석의 둘째아들로 월곡 종가를 열어 후손들이 10대를 잇고 있다. 종가의 선현을 모시는 영강사는 1712년 창건해 모산 이해, 야은, 이영우, 오풍 이유경, 이부(?~1504) 등 4인을 배향했다. 1732년에는 재사당 이원을 추배했고 정조 때(1796년) 동재·서재를 지어 제향 및 교육기관의 기능을 하는 서원의 면모를 갖췄다. 훗날 고려 충신 판서 이석(?~?)과 파조 성암 이인정을 추배해 현재에 이른다. 종가는 영강사에서 원적, 삼선생봉안록, 영강서원심원록, 영강사지, 경주이씨과보, 파보, 고목, 계안 등 고문서와 문적 등을 보존하며 가훈 ‘안빈낙도’를 지키고 선조의 정신계승에 힘쓰고 있다. 월곡 종가에 전승되는 내림음식은 제례를 통해 이어지고 있는데, ‘꿩조수개’라는 음식이 독특하다 . /서정현 기자 sjh@namdonews.com

영강사 사당
영강사 현판
성암이선생추모비와 영강사묘정비
성암이선생은 고려 충신으로 사인을 지낸 이인정을 지칭하며 1979년 영강사에 추배해 주벽으로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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