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14)살인죄(殺人罪)

<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14)살인죄(殺人罪)

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공양주보살님! 관세음보살님은 그 기장 세 알을 먹은 업을 그렇게 소가 되어 삼 년을 일해주고 갚았다는데, 500 도적도 끝까지 눈을 뜨지 않고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는데, 언제 죽을지 모를 이 늙은 몸이 장육전을 지을 시주자가 될 수만 있다면 무엇을 못 하겠어요!”

눈물을 흘리면서 말을 마친 거지 할머니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말했다.

“지리산의 문수보살님이시여! 이 몸이 죽어 저 임금님이 산다는 구중궁궐 왕궁에 태어난다면 장육전 불사를 반드시 이루겠습니다! 저에게 가피(加被)를 내려 주소서!”

거지 할머니는 수십 번 땅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그 말을 외우더니 순간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는 지리산 깊은 계곡 아래로 찰나에 몸을 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아! 아악!”

그 모습을 지켜보던 공양주보살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거지 할머니가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아스라이 저 아래 계곡으로 몸을 던졌으니 바로 즉사(卽死)하였을 게 틀림없었다. 겁이 덜컥 난 공양주보살은 ‘어쩌다가 팔자에 없는 장육전 화주가 되어 애매한 생목숨 하나를 죽게 하다니!……허억! 그러고 보니 이것은 내가 살인죄(殺人罪)를 저지른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는 혼비백산(魂飛魄散) 큰일이다 싶어 그 길로 마구 발길 닿는 데로 허겁지겁 달아나고 말았다. 한 생명을 죽게 하였으니 절로 들어갔다가는 크게 경을 칠 일이었고, 그렇다고 그 죽음을 어디다 발설하였다가는 크게 다칠 일이었던 것이다. 혹여 누가 그것을 보지나 않았을까? 두려워 후들후들 떨리는 놀란 가슴을 부여안고 공양주보살은 지리산 아래로 ‘걸음아! 나 살려라!’하고 마구 달아나면서 되도록 이곳에서 멀리 달아나 살 것을 생각하면서 떨리는 다리를 바쁘게 옮겼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었다. 어찌하여 부처님은 어려서부터 출가하여 불도를 닦아온 수행이 깊은 어려운 경전을 탐독하고 일심으로 도를 닦아온 저 총명하고 이름 높은 하고많은 스님들을 장육전 중건불사의 화주로 선택해 쓰지 않고 왜 하필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나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일자무식(一字無識) 공양주보살을 화주로 선택하였고, 또 그 공양주보살 보다도 더 형편없는 병든 최하층 천민, 누더기를 덕지덕지 걸친 아무런 생존능력 없는 저 거지 할머니를 선택해 어마어마한 천억 금의 돈이 들어가는 장육전 중건 불사의 시주자가 되도록 하였을까?

가난하고 머리 미련하고 아무런 능력 없는 인간 세상에 전혀 쓸모없는 밥버러지, 기생충 같은 공양주보살이나 거지 할머니는 저 맑고 아름다운 청정 도량, 위대한 부처님이 거하는 곳에는 전혀 맞지 않기에, 저 공부 많이 하고, 수행 많이 한 도력 높은 스님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기에 전생에 지은 죄가 아주 많을 것 같은 자들을 그곳에서 영원히 쫓아내 버리려고 그랬던 것일까? 과연 그럴까? 공양주보살은 자꾸 자신도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헤집어보며 ‘설마 그럴 리가!’ 하고 잽싸게 후들거리는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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