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15)그리움의 하늘
<제6화>늙은 거지와 공양주보살 (15)그리움의 하늘
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공양주보살은 급기야 불쌍한 거지 할머니를 자신이 죽게 한 것이라고, 그것은 자신이 분명 커다란 살인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공포에 떨며, 불행하고 처참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속으로 하염없이 흐느껴 울며 걷고 있었다.

화엄사에서 공양주보살이라도 했을 적에는 청정한 도량에서 도 닦는 맑은 눈빛의 수행자 스님들을 보고 세끼 거친 밥이라도 걱정 없이 먹으며 마음 편히 살았는데 그것도 자신의 복이 아닌가 싶어 마구 울부짖으며 혹여 누가 자신을 붙잡으러 오지나 않나 하고 자꾸 뒤돌아보면서 멀리로 멀리로 달아나고 있었다.

세월은 흘러 그새 육 년이 지났다. 화엄사 장육전 화주로 소임을 맡았던 공양주보살은 그동안 어디로 흘러가 살고 있었을까? 공양주보살은 거지 할머니의 죽음 뒤로 그곳을 떠나 남도의 지리산에서 멀리 떨어진 한양 땅으로 달아나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하면서 급기야 주막집에 들어가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해주면서 겨우 밥을 얻어먹고 살고 지냈다. 그야말로 슬프고 괴로운 삶의 연속이었다.

세월은 사람을 그렇게 전혀 다른 차원의 삶으로 내몰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화엄사 장육전 중건 불사 화주 소임을 맡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잊을 수는 없었다. 어쩌다가 아무런 능력도 없는 자신이 그런 엄청난 불사의 화주로 선택되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오고 그것도 부족하여 거지 할머니에게 시주자가 되도록 부탁을 하여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고 말았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리고 두려움에 뛰는 것이었다.

그래도 누군가 좋은 시주자가 나타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장육전 중건 불사를 실행할 수 있으련만 하고 마음속 한구석에 그런 기대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공양주보살에게는 그런 행운의 시주자는 결코 없었다. 돈 많은 고관대작의 권력자들은 한갓 못생기고 늙은 주막집 부엌에서 일이나 하는 잡일꾼 가난뱅이 공양주보살과는 결코 인연 있는 대상들이 아니었다.

눈 덮인 추운 땅에도 다시 봄이 오고 꽃이 피고 새가 울었다. 멀리 떠나와 한양 땅 콩나물시루 속처럼 버글거리는 사람들 속에 섞여 지난 시절의 자신을 모조리 묻어버리고 자신마저 잊어버리려고 애쓰며 살아가는 공양주보살도 봄이면 지리산 화엄사에서 살던 그 아름다운 봄이 눈 가득 살아나 섧도록 그리운 것이었다.

절 마당에 색색의 고운 봄꽃들이 피어나고 이름도 모를 아름다운 봄 새들이 날아와 꽃가지에 앉아 울던 그 소리는 언제나 귓가에 쟁쟁하던 것이다. 처마 끝에서 바람 따라 우는 풍경소리는 맑은 마음에 울리던 슬픈 노랫가락처럼 모진 세월에 남모르는 상처 깊은 가슴을 울리고 또 기쁜 소식처럼 가슴을 때리기도 해서 좋았다.

그렇게 슬픔도 기쁨도 다 녹여버리고 어느 결엔 가슴의 모든 아픔을 지워버리고, 기쁨도 지워버리고 맑은소리만 홀로 굴러다니더니 그 아름다운 찰나도 제 것이 못되어서 이렇게 멀리 떠나와 속세의 아수라장에 깊이 젖어 궂은일을 하며 살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서 바라보는 봄 하늘은 언제나 먼 그리움의 하늘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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