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차창밖 월출산이 세겹이다. 산은 그대로 있으되 능선을 넘으려는 구름들이 고도(高度)를 유지하고 있다. 산이다. 들녘의 안개는 산을 오르려는 듯 피어올랐다. 힘이 부치는 모양이다. 허나 은은하다. 또 하나의 산이다. 산과 물이 만나 이룬 풍경이다. 산수화다.
벚꽃길에도 흩어져 있는 아침안개를 조심스레 걷어내고 달렸다.
어느덧 다다른 영암 군서 도갑사지구. 국립공원답게 오색단풍이 절정을 이뤘다. 지난 비에 많이도 떨어졌겠지만 과객(過客)을 배려했다.
도갑저수지와 매표소를 지나면 주차장이 나온다. 이어 음식점 거리가 있고 그중 목포식당을 오른어깨에 두고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그림1중앙#
낙엽이 얇게 쌓인 비포장길이다. 털커덕 털커덕 어깨가 약간씩 들리고 운전대가 부르르 떨린다. 700여m를 올랐다.
동원농장(대표 서대환·박금자)에 이르렀다. 무지갯빛을 뽐내는 당단풍나무가 반겼다. 순간 그웩그웩 하는 소리. 평소 보기드문 거위가 허스키보이스를 자랑했다.
들어서니 본채와 사랑채, 여름에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을 평상들이 보였다.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허리를 감아 돌린 향나무가 눈에 뛴다.

#그림2중앙#
안채 대청마루를 거쳐 자리를 잡았다.
동원농장 ‘백숙’이 나오기전 닭가슴살무침이 나왔다. ‘응가’집도 함께.
밑반찬은 고구마, 감, 도토리묵, 홍합, 밤, 해초.
가슴살무침은 익히지 않은 육회다. 색이 붉다. 당근과 양파, 깨소금, 썬 고추, 마늘에다 엿 등으로 만든 고추양념장을 버무렸다. 여기에 직접 짠 참기름을 둘렀다. 매운 맛보다 양파의 사각거림이 앞서 오고 사르르 녹는 육회가 한없이 부드럽다.
촌닭 백숙이 나왔다. 압력솥으로 쪘다. 크기가 대단하다. 닭다리부터 시식. 닭다리라기보다 소다리(牛足)으로 불릴만 하다. 큼직하다. 입으로 물자 가득 들어왔다. 이어 닭날개. 어지간한 치킨다리보다 크다. 이때부터 선호하는 부위별로 손이 간다. 남은 다리 하나를 얼른 집는 이. 윤기를 드러내는 껍질을 찾는 이. 남들 손 잘 안가는 ‘퍽퍽살’을 잡는 이. 저마다 제각각이다.
다음은 ‘오리로스구이’.
1회용 황토판을 일단 불위에 올리고 10여분 데웠다.
황토판이 달궈지자 두툼하게 썰린 오리살코기와 함께 표고버섯, 팽이버섯을 올렸다.
자글자글 소리가 나기 시작하자 연기도 사뭇 티를 냈다.
주인 서대환씨의 설명. “오리는 생것으로 먹으면 안되고 충분히 익혀서 드셔야 제맛이오. 우리집 것은 냉동이 아닌 생것인께 걱정들은 마시고.”
#그림3중앙#
표고와 팽이버섯이 익어갔다. 이때 오리살코기 등에 굵은 소금을 뿌려 맛이 들기를 기다렸다. 오리특유의 기름이 황토판을 따라 흘렀다. 흐른 만큼 황토판은 진해졌다. 짜글짜글 기름이 톡톡 튀었다. 한 점 한 점이 노릇노릇 익었다. 껍질이 빨리 익었다. 젓가락으로 집어 식힌 다음 맨 입에 가져갔다. 쫄깃쫄깃. 쩝쩝. ‘선수’들은 껍질을 더 좋아한다기에 먼저 집은 것이다.
적당한 열기와 황토만이 가질수 있는 불판이 조화를 이뤄 오리살코기가 맛이 들었다.
오리로스구이에서 나는 연기가 천장으로 솟았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서향(西向)이다. 대청마루를 지나 국립공원 자락인 앞 산을 바라봤다. 신선이 따로 없고 수랏상이 다름아니다. 대청에 특이할 만한 것이 있다. 웬만한 옛날가옥에서도 볼수 없는 들창. 문을 여닫는게 아니라 아예 문을 완전히 들어올려 마루 쇳걸이에 올려 전망을 탁 트이게 한 것이다.
맛이 든 열무지로 오리살코기를 감았다. ‘평등주부’박금자씨가 직접 담갔다. 사금사금한 맛에 이어 살코기가 혀에 착 감겼다.
깍두기가 크게 썰려 나왔다. 살코기 두 점을 먹고 나서 와그작 씹었다. 무 속에 숨어들었던 시큼한 맛과 신선한 기운이 전해왔다.
입안이 깔끔해졌다.
이어 준비된 상추로 쌈을 했다. 상추를 받치고 살코기 석 점, 재래된장을 얹어 쌈을 했다. 싹싹한 맛에 든든함이 가득했다.
오리로스구이나 백숙을 먹고난 다음엔 ‘닭죽’이 언제나 뒤를 따른다.
색깔이 검다. 흑임자임가 분명히 들었겠다. 흑임자(黑荏子), 검은 깨다. 검정색은 장수(長壽)다. 오래살고 볼일이다.
흑임자와 영암쌀을 3대1로 섞었다. 여기에 녹두와 인삼을 갈아 넣었다.
세밀한 알들이 혀와 입안을 돌아다녔다. 찾고 씹었다. 달지 않다.
원래는 묵은 지와 함께 먹으면 제 맛이다. 하필 이날 모두 떨어졌다. 맛이 들지 않으면 내놓지 않는 박금자씨의 방침이다. 고집(固執), 엄청 세다.
녹두가 어금니 위에서 발견됐다. ‘냉큼 내려 오너라’. 혀가 제 못을 했다.
가루로 낸 탓인지 혓바닥은 물론 입안 곳곳에 여전히 기운이 남았다.
박씨의 설명.
“좋은 재료를 써야 맛이 낸데로 가고 온데로 간다”면서 “손님이 들면 최선을 다해 모시고 있다”고 말했다.
‘동원농장’촌닭백숙과 오리로스구이는 각각 3만원이며 옻닭은 4만원이다. 더덕구이는 1만5천원, 도토리묵은 1만원이다.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음식여행을 했다. 어느새 오후 4시. 주위 구경에 나섰다. 장작으로 불을 땠다. 연기가 기와지붕을 타고 넘었다. 시선이 이를 따랐다. 가뭇없이 흩어졌다. 인생도 저럴까. 고개를 떨구는 순간 단풍나무가 살짝 흔들렸다. 바람이었다. 서늘했다. 목덜미에 치달았다. 움찔. 바람이 존재(存在)를 깨웠다. 실존(實存). 감동이 물결쳤다. ‘동원농장’은 민박도 가능하다. 여름엔 손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손님이 많이 든다. 가을 겨울엔 아늑하다. 평등부부 내외의 손끝이 매워 불편함이 없다. 혹 가족 단위나 모임을 할라치면 염소 등을 마리째 주문할 수 도 있다. 국립공원안이지만 농장이 있는 곳은 사유지이기 때문에 매표소에서 요금을 냈더라도 나중에 환불받을수 있다.
발길을 돌렸다.
산 속은 밤이 빨리 찾아든다. 내려 오는 길. 가을이 잠든 단풍사이로 한줄기 햇볕이 쏟아졌다. 또 다른 객(客)이 올라간다.
(예약 및 문의, 061-472-2029, 473-7925, 011-610-7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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