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계속 이어지고, 밤이 무르익어가는 사이 고을 청년들이 자원입대하여 한데 어우러졌다. 숫자는 가일층 불어났다.(중략)강진의 상가선(商賈船)은 진도로 건너갈제금구(金溝)의 금(金)을 일어 쌓인 게 김제(金堤)로다농사하는 옥구 백성 임피사의(臨陂蓑依) 둘러입고정읍의 정전법(井田法)은 납세인심(納稅人心) 순창이라고부(古阜) 청청(靑靑) 양유읍(楊柳邑)은 광양 춘색이 팔도에 왔네곡성의 묻힌 선비 구례(求禮)도 하려니와흥덕(興德)을 일삼으니 부안(扶安) 제가(齊家) 이 아닌가호남의 굳은 법성(法聖) 전주(全州) 백성 거느리고장성(長城)
옥동이 스승 윤처사 앞에서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수그려 절을 하고는 귀를 기울였다."옥동아! 삼 년 동안 참 고생이 많았구나! 같은 물이라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고, 산양이 먹으면 젖이 된다는 말을 아느냐?""예! 스승님! 어렵고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사람의 고통을 알고 함께 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성인의 마음을 내는 것이요. 어렵고 힘들게 살아온 까닭으로 그것이 싫어 혼자만 잘살려고 몸부림치며 나아가는 자는 소인배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옥동이 또랑또랑 말했다."으음! 그래! 그사이 공부가 많이 늘었구
"아아! 으으음!……그 그렇군 유유 윤처사!……"가만히 귀를 열고 윤처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조대감은 순간 답답하게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린 듯 깜짝 놀란 눈을 크게 뜨고 깊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윤처사는 맹모삼천지교에 어린 그 깊은 의미를 헤아려 보고 있었고, 옥동의 교육방법에 대하여 깊이 고민한 결과 나무꾼에 쟁기질 꾼에 죽은 사람 장사지내는 일을 시켰다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무턱대고 그냥 시킨 것이 아니라 윤처사 나름으로 깊이 고민(苦悶)하고 사색(思索)한 결과(結果) 단행한 것이 아닌가! 한 아이의 전 인생의 미래가 걸린
윤처사가 너털웃음을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아니야! 천하에 윤처사가 아니었다면 어찌 저 옥동에게 그런 명약처방(名藥處方)을 할 수 있었겠는가! 지난날 옥동에게 나무꾼에, 쟁기질 꾼에, 죽은 사람 장사(葬事) 지내는 일까지 시켰을 때 실로 극한 울분에 휩싸였다네! 그것이 윤처사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한 속 좁은 나의 마음이었다네!"조대감은 진심으로 지난날을 숨김없이 말했다."허! 허흠! 자식 가진 사람이면 누구라도 다 그랬겠지! 어찌 조대감을 탓할 수가 있겠는가? 다만 나는 망아지를 물가로 끌고 가서 물을 먹이려 해도 제가 안 먹
"허허! 허흠! 그그 그렇게 된 사연이로구나!"가만히 아들 옥동의 말을 듣고 있던 조대감이 놀란 얼굴로 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버님! 소자(小子), 장서각(藏書閣)에 읽고 있는 서책(書冊)이 있습니다. 그만 일어나겠습니다"옥동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어흐흠! 그 그래! 그러려무나!"조대감이 말했다.옥동이 방문을 열고 장서각을 향해 갔다. 장서각에 들어가 등불을 켜고 밤늦도록 서책을 읽기 위해서였다. 아니 옥동은 아예 장서각에서 기거하다시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사랑방 문을 나가는 아들 옥동을 바라보며 조대감은 깊은 감회
"그렇사옵니다. 스승님! 사람의 마음 씀과 행동에 따라 고결한 성현(聖賢)과 어리석은 소인배(小人輩)가 나누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태어나는 환경만 서로 달랐을 뿐, 사람으로 공평(公平)한 한 생명(生命)으로 다들 똑같이 태어났는데, 어찌 반상(班常)이 따로 정해져 있을 수 있겠습니까?"옥동이 눈빛을 반짝이며 스승 윤처사를 바라보며 또랑또랑하게 말했다."허허! 그래?……하하! 그렇구나! 그렇구나! 하하하하하하!"윤처사가 옥동을 바라보며 순간 환한 얼굴로 파안대소(破顔大笑)하는 것이었다. 옥동이 항상 싸늘하고 고약하게만 자신만
"네놈은 아직 멀고도 멀었다! 자신의 상태도 아직 되돌아 성찰(省察)해 볼 줄 모르는 놈이 한갓 가슴 속에 끓는 찰나의 욕심만으로 덤비려 들다니! 네 이놈! 이 몽둥이맛을 보아야 물러가겠느냐? 어서! 썩 물러가라!"순간 스승 윤처사가 옥동을 향해 몽둥이를 사정없이 내려치는 것이었다. 어깨에 빗자루 몽둥이를 한차례 얻어맞은 옥동은 그만 고개를 깊이 수그려 절하고는 조용히 몸을 돌려 물러 나오고 말았던 것이었다.그런데 그렇게 장서각에 들어가 온갖 책들을 독파(讀破)해 모조리 다 읽고 싶은 깊은 충동에 사로잡힌 옥동은 그 장서각 안을 들
윤처사가 괄괄한 목소리로 말하다가 말을 뚝 끊더니 매서운 눈빛으로 옥동을 바라보면서 순간 고개를 위아래로 크게 끄덕이면서 다시 사납게 소리쳐 말했다."오호!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럼! 그렇지! 보아하니 이놈이 고된 나무꾼 일에, 힘든 쟁기질 일에, 천하디천한 죽은 사람 장사(葬事) 지내는 일을 해보니 아이쿠나! 이놈 세상! 이 세상 편하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용케 그것을 깨달아 알았나 보구나! 천지인(天地人)이 무엇인지 깊이 사색(思索)해 보라 내 일렀거늘, 한마디는커녕 반 마디 답도 못 하는 놈이!...... 허허! 이 이런!
눈이 펑펑 내리던 지난겨울 옥동은 자기 방에 있다가 스승 윤처사가 서당 아이들을 글공부시키고 있는 대청마루 옆 커다란 방 아궁이에 이글이글 장작불을 지펴놓고는 장서각 앞으로 갔다. 마치 부풀어 오른 솜옷을 입은 듯 하얀 눈 속에 푹 파묻혀 쌓여 있는 장서각 문은 자물쇠가 잠겨있지 않았다. 옥동은 조심스럽게 그 문을 열어젖혔다. 그때 ‘삐걱!’ 하는 문 여는 소리가 날카롭게 솟아올랐다. 옥동은 아차! 하며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네 이놈! 게서 무엇을 하는 게냐?"순간 옥동의 등 뒤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옥동은 퍼뜩 뒤돌아보
"옥동아! 오늘은 그만 책을 덮고 일어나거라! 아버지와 함께 저녁을 먹자구나!"윤처사가 말했다. 옥동이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일어나며 말했다."예! 스승님! 그렇게 하겠습니다!"옥동이 조대감과 윤처사 뒤를 따라 나왔다.사랑방 앞에 이르자 윤처사가 말했다."오늘 밤은 모처럼 두 부자가 만났으니 함께 저녁을 들고 주무시게나!""으응! 그 그래, 윤처사 감사하네!"조대감이 말했다."스승님!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옥동이 깊이 고개를 수그려 절을 했다."그래그래, 옥동아! 오늘 밤은 아버님과 편히 지내거라!"윤처사는 사랑방에서
"유유 윤처사! 우리 아들 옥동은 어디, 머머, 멀리로 간 것인가? 아직도 안 돌아오는 것이?........""아참! 그 그래! 깜박 잊고 있었네! 이리 따라오시게!"윤처사가 저녁 밥상을 방안에 그대로 둔 채 따라오라고 하면서 사랑방 문을 나서더니 앞장서서 걸었다. 도대체 어디를 향해 가는 것일까? 조대감은 윤처사 뒤를 따라갔다. 봄이 깊어 가는 서녘 하늘에 붉은 석양 노을이 짙게 깔리고 있는 찰나였다. 윤처사는 서당 앞으로 가더니 그 뒤에 서 있는 작은 건물 앞에 우뚝 멈춰 섰다.닫혀 있는 나무판자로 만든 문을 밀고 들어가는 윤처
윤처사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달리, 운명(運命)과 관련한 명리학적(命理學的)으로 말한다면 자네가 작년에 재물을 잃어버릴 손재수(損財數)가 있었으니 그리되었다고 할 수 있네. 그 손재수가 없었다면 집안에 크나큰 다른 액운(厄運)을 당할 운이었는데, 그 동생에게 많은 돈을 내주고 딸이 시집을 잘 가도록 덕을 베풀었기에, 가족 중 누구 하나가 크게 아파 몸이 상해 병신이 된다거나 죽어 나갈 운을 감했다고 한다면 어찌하였겠나?"윤처사가 말했다."아! 아이구! 서서서, 선생님! 그런 말씀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가가 가슴이
"아! 아이구! 서, 선생님! 가련한 사슴이 목숨을 살려달라 청하는데 어찌 인정(人情) 없이 못 본 척하겠습니까? 당장 숨겨서 살려주어야지요!""그래!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 자네의 일은 그와 같다네! 이웃 마을에 사는 동생이라는 자가 와서 딸 시집보낼 돈이 없으니 빌려 달라고 한 것은,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이 목숨을 살려달라고 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네! 당장 가진 돈이 없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었겠으나, 나무꾼이 나무 짐 뒤로 사슴을 숨겨주어 사냥꾼을 피해 살아나게 한 것과 같이, 마침 있는 돈을 그 동생에게 빌려주어 딸을
여느 때와 같이 조대감은 정오 무렵 윤처사의 집에 당도(當到)했다. 아들 옥동이 삼 년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조대감은 사내종에게 맛난 음식들을 서당으로 가져오게 해놓고 말고삐를 맡기고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서당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곳에 윤처사는 없었다. 아이들만 모여서 글공부를 하고 있었다. 혹여 그 안에 아들 옥동이 있을까 싶어 조대감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휙 휘둘러 보았다. 그러나 아들 옥동은 역시나 거기 없었다.‘집으로 돌아갈 무렵까지 아이들과 함께 글공부를
아마도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윤처사는 분명 옥동에게 직접경험(直接經驗) 체득(體得)하여 깨닫게 하는 살아있는 현장교육(現場敎育)을 하는 것이리라!맹자에 이르기를, ‘하늘은 큰일을 맡기고자 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의 마음과 의지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의 몸을 수고롭게 하고, 굶주림에 시달리게 하며, 그의 처지를 궁핍하게 하니, 하는 일마다 어긋나게 만든다. 이는 인내하는 성품으로 마음을 움직여서 그가 잘할 수 없었던 일에 보태어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爲 所
"예! 어머니! 잘 알겠습니다. 소자, 이 길로 돌아가 열심히 글공부에 전념(專念)하겠습니다!"맹자는 고개를 깊이 수그리고 절을 하고는 곧장 글공부하던 서당으로 돌아간 것이었다.맹자의 어머니는 아들 맹자에게 짜고 있던 베를 과감하게 잘라 보이면서까지 교육을 하였건만 조대감 자신은 지금 믿고 맡긴 자식의 교육에 대하여 그 교육방법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가 자식더러 그만두고 돌아가자고 하지를 않았는가? 더더욱 학문으로나 인품으로나 전혀 결격사항(缺格事項)이 없는 절친을 스승 삼아주며 그 교육방법에 대하여서는 절대함구(絶對함구) 하기로
"허허흠! 이이!……저저! 저!……"조대감은 황급히 옥동이 뛰쳐나가는 뒷모습을 보고 놀란 눈빛으로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다.어찌하여 자식에게 인품과 학덕 좋은 스승에게 글공부 잘하라고 보내놓고 나중에 와서 그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만 자식에게 집으로 돌아가자고 한단 말인가? ‘허허! 내가 지금 정신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교육방법(敎育方法)에 대하여서는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절대로 일언반구(一言半句)도 거들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벌써 그것을 잊었단 말인가? 되려 자식은 스승의 교육방법에 대하여 잘 적응(適應)하면서 아버
자식(子息) 겉만 낳았지 속은 낳은 것 아니라는 말이 있더니, 이제 옥동은 어느새 아버지 조대감의 말보다도 자신의 주의주장(主義主張)을 내세우고 관철(貫徹)할 만큼 성장(成長)해버렸단 말인가? 스승 윤처사 밑에서 오직 배운 것이라곤 누구나 다 아는 천지인(天地人) 세 가지 글자일 뿐인 데다가 오로지 나무꾼이며 쟁기질이며 급기야는 죽은 사람을 묻어 장사(葬事)지내는 일만 하지 않았던가!조대감은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옥동아! 이 아비는 너에게 글공부를 많이 하여, 입신출세(立身出世)하여, 일신(一身) 부
"그러나 아버님, 지금은 그 어머님과 했던 굳은 약조(約條) 때문에 그것을 어기기 싫어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옥동이 단호하게 말했다."허허흠! 그 그래! 그렇다면 옥동아! 무, 무, 무엇 때문이냐?"조대감이 놀란 눈빛으로 옥동을 바라보며 말했다. 옥동이 아버지 조대감을 바라보며 또랑또랑하게 말했다."소자, 이곳에 와서 스승님께 배운 하늘 천(天)과 땅 지(地)와 사람인(人)이 무엇인지, 이 세글자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제 얼핏 알 듯 말 듯 하옵니다. 그리고 어제는 십 리 밖 거지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새벽까지 굳은 결심(決心)을 하며 마음을 정한 조대감은 오늘은 기필코 아들 옥동을 집으로 데려가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나무꾼에 쟁기질 꾼에 이제는 죽은 송장을 다루는 일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 집에 더 있게 했다가는 아들 옥동을 아예 망쳐버릴 것이라는, 깊은 위기의식(危機意識)을 조대감은 심각(深刻)하게 각성(覺醒)한 것이었다.수탁이 홰를 치며 우는 계명축시(鷄鳴丑時)가 지나고 동이 터올 어둑한 새벽녘 옥동이 부스스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옥동이 일어날 것을 기다리며 그때까지 끓는 분노로 잠을 이루지 못한 조대감은 이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