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허허! 허흠! 그그 그렇게 된 사연이로구나!"
가만히 아들 옥동의 말을 듣고 있던 조대감이 놀란 얼굴로 깊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버님! 소자(小子), 장서각(藏書閣)에 읽고 있는 서책(書冊)이 있습니다.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옥동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흐흠! 그 그래! 그러려무나!"
조대감이 말했다.
옥동이 방문을 열고 장서각을 향해 갔다. 장서각에 들어가 등불을 켜고 밤늦도록 서책을 읽기 위해서였다. 아니 옥동은 아예 장서각에서 기거하다시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랑방 문을 나가는 아들 옥동을 바라보며 조대감은 깊은 감회(感懷)에 사로잡혔다. 하라는 글공부는 하지 않고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매일 밖으로만 쏘다니며 말썽만 일으키던 아들 옥동이 어떻게 저렇게 서책을 열심히 탐독(耽讀)하는 아이로 거듭났단 말인가! 여러 서당 훈장들을 집안으로 불러 모셔놓고 글공부를 시켰건만, 그때마다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던 녀석이 세상사(世上事)와 인생사(人生事)를 깊이 숙고(熟考)하며 서책을 밤새워 읽으며 진리(眞理)를 탐구(探求)하는 품격있는 선비의 풍모(風貌)를 풍기다니, 조대감은 아들 옥동의 말을 듣는 내내 가슴이 뭉클해 눈가에 뜨건 눈물이 스며 올랐던 것이었다.
생각해 보건대 이 모든 것이 다 저 아들 옥동의 스승 윤처사 덕분이었다. 진득하게 앉아 오래 인내(忍耐)하며 글공부하기를 싫어하는 옥동의 특성(特性)을 미리 파악(把握)해 알았던 윤처사는 옥동에게 하늘 천(天) 한 글자 가르쳐 주고는 그것에 대한 답을 찾으라고 대범하게 나무 지게 짊어지어 주고 나무하러 보냈던 그 혜안(慧眼)이 문득 느껴져 조대감은 순간 가슴이 서늘해졌다. 글공부하기 싫어하는 놈 괜히 윽박질러 붙들어 놓아보았자 반항심(反抗心)만 더 키워줄 뿐 아무런 소득도 효과도 없다는 것을 잘 알았던 윤처사는 옥동에게 단호하게 극약처방(劇藥處方)을 감행(敢行)했던 것이 아닌가! 친구 윤처사의 깊은 속마음을 조대감은 이제야 분명하게 깨달아 안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날을 울분 속에 휩싸여 때론 분노하며, 때론 후회하며 지냈던가? 그 얼마나 어리석은 번민(煩悶)의 날들이었던가!
다음날 조대감은 사랑방에서 윤처사와 함께 아침을 먹고 나서 밥상을 물리고 말했다.
"윤처사! 그간 참으로 고생 많았네! 철없던 우리 옥동이가 저리 변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네!"
"하하하! 조대감! 내가 무엇을 하였다고 그러는가? 나는 지난 삼 년 동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네! 나는 옥동에게 누구나가 다 아는 천지인(天地人) 딱 세글자를 가르쳐 주었을 뿐이라네! 그것은 누구라도 가르쳐 줄 수 있는 글자가 아니던가? 그런데, 놀랍게도 그 세 글자의 깊은 의미(意味) 속으로 끝없는 물음을 던지며 칼과 망치와 책과 붓을 들고 없는 문을 만들며 길을 뚫고 들어간 것은, 다름 아닌 자네 아들 옥동이라네! 나는 지금 그것이 한량없이 고마울 따름이라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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