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옥동이 스승 윤처사 앞에서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수그려 절을 하고는 귀를 기울였다.
"옥동아! 삼 년 동안 참 고생이 많았구나! 같은 물이라도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되고, 산양이 먹으면 젖이 된다는 말을 아느냐?"
"예! 스승님! 어렵고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사람의 고통을 알고 함께 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성인의 마음을 내는 것이요. 어렵고 힘들게 살아온 까닭으로 그것이 싫어 혼자만 잘살려고 몸부림치며 나아가는 자는 소인배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옥동이 또랑또랑 말했다.
"으음! 그래! 그사이 공부가 많이 늘었구나! 앞으로 옥동이 강도, 도적놈이 되어 살게 된다면 이 스승이 강도, 도적놈을 가르친 몹쓸 자가 될 것이고, 탐학한 탐관오리가 되어 백성의 피를 빨며 사는 사특한 자가 되면, 이 스승이 또한, 그런 탐관오리를 가르친 흉악한 자가 될 것이다. 그 점 명심(銘心)하거라!"
"예! 잘 알겠습니다"
옥동이 말했다. 스승 윤처사가 깊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멀리서 보아서 이름만 높은 사람이 되지 말고(遠視勿名高人), 가까이서 지내보았을 때(近親見), 만물을 살리는(萬物之生) 봄바람같이 부드럽고(柔如春風), 태산의 덕을 지니고(德如泰山), 지혜 맑은 물 같거라!(智如淸水)! 으으음!……그래, 잘 가거라!"
스승 윤처사가 말을 마치고는 그윽한 눈빛으로 옥동을 바라보았다.
"으음! 그래! 옥동아! 이 아비가 살아보니 이름만 높은 사람, 실상은 아무 볼 것이 없었느니라! 옛사람이 이르기를 명리권부(名利權富)는 재앙(災殃)의 근원(根源)이라 하더니, 살아보니 틀림없는 말이더구나! 스승님께 그만 하직인사(下直人事) 올리거라!"
옆에서 듣고 있던 조대감이 말했다.
"스승님! 그간 감사하옵니다. 스승님의 뜻 결코, 잊지 않고 가슴에 새기고 살겠습니다!"
옥동이 깊숙이 허리를 굽혀 작별의 절을 하고는 말 등위에 올라 삼 년 동안 기거하며 살던 스승 윤처사의 집을 떠나 아버지 조대감을 따라 마침내 집으로 향해 가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조대감은 윤처사 집을 다시 찾았다. 옥동과 같이 집에서 생활하며 살아보니, 어느덧 세상일에 달통한 학문에 열중하는 진심한 선비의 모습에 너무도 놀라워 그 깊은 고마움을 윤처사에게 전하려고 간 것이었다.
그런데 그날 정오 무렵 조대감이 윤처사 집에 당도하여보니 왠지 집안이 썰렁했다. 한눈에 휘둘러 보는데,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꽤 오래전에 사람이 살지 않은 듯 방문이 모두 뜯겨 있었다. 도대체 이 어찌 된 일인가? 허허! 지난번 휩쓸고 간 대역변란(大逆變亂)이라도 당한 것인가? 조대감은 순간 뇌리를 번쩍 스치고 가는 불길한 예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뿔사! 망할 놈의 세상사(世上事)! 몹쓸 놈의 인간사(人間事)! 이 땅에서 고결(高潔)한 선비의 생사존망(生死存亡)은 다 이와 같은가?"
조대감은 넋 나간 듯 중얼거리며 윤처사의 마당에 마치 짚단처럼 풀썩 쓰러져 마치 어린아이처럼 "어어어어 어어엉! 유유유! 윤처사! 어어엉엉엉! 엉엉엉!……" 마당을 뒹굴며 목놓아 울부짖는 것이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