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을 걷는 이들은 대부분 메타프로방스에 들린다. 왜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라고 부르는 것일까? 이곳에 올 때마다 드는 궁금증이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이 나무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지녔다. 공룡 시대부터 존재했으나 화석으로만 남아 멸종했다고 여겨졌던 나무. 그러나 1940년대 중국 깊은 산골에서 군락을 이루며 살아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메타세쿼이아라는 이름은 화석 연구를 통해 세쿼이아와 다른 새로운 속임이 밝혀져 붙여진 학명으로, ‘세쿼이아 이후의 것’ 또는 ‘세쿼이아를
사계절 내내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전남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숲길은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넘어, 자연이 건네는 깊은 치유와 계절의 서정을 만끽할 수 있는 남도의 대표적인 힐링 명소다. 하늘로 뻗은 거목들이 빚어내는 풍경은 시기마다 옷을 갈아입으며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 1970년대 묘목이 만든 기적관방제림을 지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 가면 1970년대 초 가로 경관 조성 사업으로 심어진 1,300~1,500본의 나무들과 조우한다. 메타세쿼이아를 가로수로 삼은 이곳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25m 이상의 거목들
카메라를 들고 담양천 둔치에 섰다. 오늘도 이 길을 걷는다. 쉼이 필요할 때마다,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찾게 되는 곳. 관방제림에서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까지 이어지는 이 2km 남짓한 숲길이 내게는 걷기 명상의 공간이자, 사계절을 렌즈에 담는 작업실이다. # 400년을 지켜온 관방제림의 숨결파인더 속으로 들어오는 첫 번째 피사체는 천연기념물 제366호 관방제림이다. 1648년 담양 부사 성이성이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심은 나무들. 320여 그루의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나무가 만든 이 거대한 풍치림은 단순한 숲이 아니다.
여기저기에서 가을 축제가 한창이다. 그러나 나는 북적이는 인파보다 호젓하게 가을을 사색하며 즐길 수 있는 곳을 찾는다. 오늘은 마음의 카메라와 함께 화순 적벽과 연둔리 둔동 숲정이를 찾아간다. 나만의 남도 힐링 공간을 소개한다.# 천 년의 시간이 빚어낸 붉은 절벽화순적벽은 전남 화순군 이서면 창랑리, 보산리, 장항리 일대의 동복호 주변에 펼쳐진 적색 절벽 경관이다. 조선 중종 때인 1519년 기묘사화로 화순 동복에 유배된 신재 최산두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 소동파의 적벽에 버금간다 하여 ‘적벽’이라 명명했다.절벽이 붉은색을 띠는
처가가 있는 강진을 오가는 길, 나주시 반남면 들녘에 우뚝 솟은 고분들을 지날 때마다 나는 궁금했다. 저 거대한 봉분 아래 누가 잠들어 있을까. 한 사람의 무덤치고는 너무 크지 않은가. 막연한 호기심은 카메라를 들게 했고, 종종 영산강 지류를 따라가는 출사는 뭔가가 기다리는 듯했다.자미산을 중심으로 흩어진 신촌리, 덕산리, 복암리, 옥야리 고분들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듯하다. 약 1500년 전 마한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시간의 지층이다.영산강 유역은 예로부터 사람 살기 좋은 곳이었다. 비옥한 평야와 바다가 만나는 이곳은 선사
# 3년간 7번, 섬을 걷고 또 걸었다.송도 선착장에서 25분. 배가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는 동안 렌즈 너머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병풍도의 첫인상은 언제나 강렬했다. 서북쪽 해안 절벽이 파도와 풍화에 깎여 만든 장엄한 병풍 같은 풍경. ‘병암(屛巖)’이라 불렸던 이 바위는 섬의 이름이 되었고, 내 카메라에 담긴 수백 장의 사진 속에서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맨드라미 꽃으로 피어나다.2020.1월 첫 방문할 때만 해도 병풍도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방치된 논밭, 염전, 빈집들이 보였다. 하지만 신안군의 ‘사계절
맑은 물이 흐르는 강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힐링이다. 섬진강은 전북·전남·경남을 관통해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하천으로, 남도의 자연과 사람들의 삶이 맞닿아 있는 강이다.섬진강(蟾津江)의 ‘섬(蟾)’은 두꺼비를 의미한다. 고려 우왕 때(1385년경) 왜구가 침략했을 때, 강 하구의 군사 요충지 ‘섬진(蟾鎭/蟾津, 두꺼비 나루)’ 부근에서 수많은 두꺼비가 울어 왜군이 놀라 물러났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과거에는 모래내, 다사강 등으로도 불렸다.섬진강 상류는 대체로 호남정맥 등 산악 지형 사이를 흐르는 계곡 성격을 띤다. 상류
강진과 인연을 맺은 지 35년이다. 카메라와 함께 강진만 생태공원으로 향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20만 평에 펼쳐진 갈대밭이 물결을 이룬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바람이 불어와 갈대가 일제히 소리 내며 춤을 춘다.나에게는 강진만과 관련하여 남도의 풍경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세 곳이 있다. 바로 장흥과 강진을 잇는 탐진강, 아홉 물줄기가 모여드는 구강포, 그리고 생명의 보고 강진만과 가우도이다.# 탐진강, 구강포, 강진만탐진강은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발원해 강진만에 다다른다. 과거에는 예양강, 수령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고
월출산은 주로 영암에 속해 있으나 남쪽 사면이 강진과 접한다. 북쪽 영암에서 바라본 월출산은 마치 거대한 바위의 성채처럼 우람하고 강렬한 기운을 뿜어낸다. 반면 남쪽 강진에서 마주한 월출산은 아기자기한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처럼 다가온다. 사진가의 시선으로 보면 영암은 힘이고 강진은 결이다. 영암이 대지를 뚫고 솟은 기둥이라면, 강진은 그 기둥을 감싸는 실오라기 같은 풍경이다.# 월출산 강진 설록다원의 사계월출산 남쪽 자락 강진 성전면에는 완만한 구릉 위로 펼쳐진 다원이 있다. 이곳은 보성의 급경사 녹차밭과는 달리, 초
전라남도 서남쪽에 자리한 영암군. 그 중심에는 해발 809m의 월출산이 우뚝 솟아 있다. 7세기 백제에서는 달나산(達拏山)이라고 불렸으며, 백제가 멸망한 뒤 통일신라에서는 월나악(月奈岳)이라고 불렸는데 모두 "달이 나오는 산"의 뜻을 가진 당시 순우리말을 표기한 것이다. 신라 때에는 월나산(月奈山), 고려 때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불렸다.월출산 이름이 고을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영암(靈巖)은 월출산에 있는 바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動石)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과 춘양면 일대는 수천 년 전 선사인의 숨결이 깃든 거석문화의 보고다. 2000년 고창·강화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고인돌 유적)으로 등재된 화순 고인돌 유적지는 문화재 관람지를 넘어 생태·문화·관광이 어우러진 복합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특히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는 총 596기의 고인돌이 밀집된 지역으로, 자연 속에서 ‘돌의 서사시’가 펼쳐진다. 이 길 위에서 방문객들은 선사시대의 삶을 배우고, 현재를 되새기며, 미래를 상상하게 될 것이다. # 효산리 일대의 고인돌도곡면 효산리 일대는 고인
전남 무안군 해제면. 발끝에 닿는 황토의 감촉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이곳은 단순한 갯벌이 아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습지보호지역이자 람사르 습지 1732호로 지정된 생명의 보고, 살아 있는 무안 황토 갯벌이다.무안 갯벌은 해제면, 현경면, 망운면 일대에 걸쳐 펼쳐진 광활한 갯벌 지대다. 총면적은 약 3,000ha(30㎢)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고, 해제 반도가 서해를 품에 안은 함평만 일대가 대표적인 지역이다. 함평만의 340여 ㎢에 달하는 갯벌은 칠산바다와 만나며 넓은 존재감을 드러낸다.이 갯벌은 약 5,000년 전부터 한반도에서 공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신안 갯벌은 단순한 자연경관을 넘어, 인류와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미래세대를 위한 귀중한 자산이다. 2021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갯벌’ 중 핵심을 이루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신안 갯벌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은 생태·문화·경제적 가치를 모두 갖춘 대표적인 자연유산으로 자리매김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갯벌 사진들은 지난 7년간 증도, 암태도, 병풍도, 자은도, 내우목도, 박지도 근처에서 오고가며 촬영되었다.# 숫자로 보는 신안 갯벌의 위상신안 갯벌의 규모는 압도적이다.
지난 8월 8일은 섬의 날이었다. 서해안의 섬과 섬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갯벌이 있다. 전북 고창군 심원면 만돌마을.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갯벌의 중심부에 자리한 작은 어촌이다. 바다와 육지가 맞닿은 경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갯벌만큼이나 깊고 넓다. 만돌마을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을 넘어, 생태와 문화, 그리고 인간의 삶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생명의 무대다. # 만돌마을의 유래조선시대부터 어업과 염전으로 번성했던 마을은 장차 굴뚝이 만 개가 솟을 것이라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만돌(萬突)’이라고 하였다.
광복 80주년을 맞았지만,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 흔적을 기록하고 미래세대에 전하기 위해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제주를 찾는다면 반드시 발걸음을 옮겨야 할 곳,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 비행장이다.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상공 400피트에서 내려다본 알뜨르의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들판 한가운데,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비행기 격납고 20여 기가 파도처럼 굳어진 채 덩그러니 남아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곳은 역사의 무게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 시간이 겹겹이 쌓인 증언의 땅알뜨르에서 보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이른 새벽에 기적을 보러 길을 나서길 추천한다. 무안군 일로읍 복룡리 회산백련지에서는 순백의 연꽃을 볼 수 있다. 면적 약 10만 평으로 2001년 기네스북에 동양 최대 백련 자생지로 등재된 명소이다. # 두 저수지의 만남, 복룡지에서 백련지까지회산백련지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인 19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름 없던 두 개의 저수지를 합쳐 만든 복룡지는 인근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는 평범한 농업용 저수지였다. 하지만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면서 저수지 기능을 상실하며 새로운 운명을 맞게
카메라를 들고 장성 축령산으로 갈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과연 이 울창한 편백숲이 한 사람의 의지로 만들어진 것이 맞을까? 이 산에 들면, 아름드리 편백들이 마치 거대한 녹색 숲을 만든다. 파인더 속으로 들어오는 이 풍경 앞에서 나는 경건해진다.# 250만 그루의 기적1956년, 춘원 임종국 선생이 개인재산을 털어 나무를 심기 시작했을 때 이곳은 황폐한 민둥산이었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상처받은 땅이었다. 하지만 선생은 34년간 포기하지 않았다. 가족들과 함께 물지게로 물을 날라 가뭄 속에서도 어린나무들을 살려냈다.
전남 담양 병풍산에서 발원해 광주와 나주, 목포를 지나 서해로 흘러드는 영산강. 단순한 물줄기를 넘어 남도의 역사와 삶을 품은 젖줄이다. 여름이면 더욱 생생해지는 영산강 상류의 표정을 6년간의 기록 사진에 담았다. 계절의 숨결과 인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앵글들이다.# 상류에서 만나는 영산강의 다채로운 얼굴발원지 담양 병풍산 일대부터 영산강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담양 가마골 계곡에서는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며 전형적인 산간 계곡의 정취를 자아낸다. 여름철 피서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이곳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점차
#렌즈로 본 생명의 복원 현장장마는 어디로 갔을까. 매년 이맘때면 억수같이 쏟아지던 빗소리 대신, 밤새 달궈진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만이 새벽을 맞는다. 세계 곳곳에서 들려오는 기상 이변 소식 속에서, 카메라를 들고 습지를 찾았다.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를 읽기 위해서다. 운곡습지는 고창군 아산면 운곡리 낮은 구릉지의 골짜기 밑바닥인 오베이골 일대에 형성된 습지다. 오베이골은 오방골의 전라도 사투리로, 오방은 다섯 방위를 뜻한다. 사실재, 행정재(송암), 직업재(매산), 굴치재(용계), 백운재(운곡) 등 다섯 갈래 길로 나뉘는
#생명이 깨어나고 자라는 무등산 평두메습지무등산 자락 깊숙한 곳, 충민사에서 오솔길을 따라 약 25분 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평두메습지가 광주의 첫 람사르습지로 등록되며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평두메’라는 독특한 지명은 무등산 골짜기에 평평하고 넓은 들이 펼쳐져 있어 마을이 형성되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봄, 생명의 무대가 열리고봄철 평두메습지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답게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얼음이 녹으며 생기는 물의 흐름은 새로운 생명체들의 서식지를 만들어내고, 월동했던 생물들이 활발히 움직이며 습지 전체가 역동적으로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