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출산은 주로 영암에 속해 있으나 남쪽 사면이 강진과 접한다. 북쪽 영암에서 바라본 월출산은 마치 거대한 바위의 성채처럼 우람하고 강렬한 기운을 뿜어낸다. 반면 남쪽 강진에서 마주한 월출산은 아기자기한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처럼 다가온다. 사진가의 시선으로 보면 영암은 힘이고 강진은 결이다. 영암이 대지를 뚫고 솟은 기둥이라면, 강진은 그 기둥을 감싸는 실오라기 같은 풍경이다.
# 월출산 강진 설록다원의 사계
월출산 남쪽 자락 강진 성전면에는 완만한 구릉 위로 펼쳐진 다원이 있다. 이곳은 보성의 급경사 녹차밭과는 달리, 초록 물결이 차분히 춤추는 풍경화 같은 모습이다. 급경사 녹차밭과는 또 다른 여유가 느껴진다. 차나무밭 너머로 월출산 봉우리들이 어우러져 사계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봄의 생명력, 여름의 짙은 녹음, 가을의 깊은 빛깔, 겨울의 고요함이 차분한 산세와 함께 마음을 비치는 거울이 된다.



# 무위사, 소담하면서 큰 절집
‘무위사’라 쓰인 일주문을 지나면 시간은 느려지고 마음은 고요해진다. 사천왕문을 지나 보제루 밑을 통과하면, 극락보전이 단아하게 맞이한다. 국보 제13호인 이 건물은 조선 초기에 세워졌으나 고려 말 양식을 간직한 대표 건축물이다.
겹처마와 맞배지붕은 절제된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내부의 수월관음도(보물 제1314호)는 파도 위 연잎에 선 관음보살을 그린 걸작으로, 자연스러움과 고요함 속에 ‘무위(無爲)’의 뜻을 전한다.
# 월남사지, 석탑과 봉우리의 대화
금릉 경포대 계곡 아래 자리한 월남사지는 폐허 속에서도 고요한 품격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의 삼층석탑(보물 제298호)은 통일신라 계통의 양식을 따르며, 늘씬하고 우아한 비례미로 월출산 봉우리들과 병풍처럼 어우러진다. 정돈된 절터와 석탑 주초 하나에도 시간이 켜켜이 스며 있다. 새로 대웅전이 세워진다 해도, 이곳의 풍경이 지닌 압도적인 아름다움은 변치 않을 것이다. 이곳은 사진가에게 있어 절터의 주초 하나에서도 ‘시간의 흔적이 가장 아름답게 남은 장소’다.



# 백운동 별서, 선비의 풍류가 깃든 정원
무위사에서 백운동정원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월출산 품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하다. 돌담과 동백 숲을 지나면 조선 중기 문신 이담로가 조성한 별서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현재 국가 명승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이곳의 아름다움에 반해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12승경을 노래한 시문을 남긴 곳이다. 계곡의 물을 끌어들여 초당 앞을 흐르게 한 유상곡수(流觴曲水)는 정원의 백미다. 현재 국가 명승 제115호로 지정된 백운동 원림은, 정선대에서 내려다본 풍광 속에서 선비의 멋과 자연의 조화를 보여준다. 영암 강진을 오가는 길에 들러 쉬어가기 추천한다.
# 남도의 시간, 월출산의 품
월출산 남쪽 자락을 따라 걷는 길은 의미 있는 여행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 자연과 인간, 역사와 문화가 겹겹이 쌓인 풍경을 마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온몸으로 하는 독서라고 한다. 사진가의 렌즈는 그 겹을 하나씩 벗겨내며 남도의 깊이를 읽어낸다. 가을이면 영암의 힘과 강진의 결이 만나는 곳, 월출산은 남도 그 자체가 된다. 남도의 자연과 사람의 풍경은 끝이 없고, 그 안의 이야기는 언제나 새롭다.
김덕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