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가을

 

겨울

전라남도 서남쪽에 자리한 영암군. 그 중심에는 해발 809m의 월출산이 우뚝 솟아 있다. 7세기 백제에서는 달나산(達拏山)이라고 불렸으며, 백제가 멸망한 뒤 통일신라에서는 월나악(月奈岳)이라고 불렸는데 모두 "달이 나오는 산"의 뜻을 가진 당시 순우리말을 표기한 것이다. 신라 때에는 월나산(月奈山), 고려 때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불렸다.

월출산 이름이 고을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영암(靈巖)은 월출산에 있는 바위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動石)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바로 영암인데, 이 동석 때문에 큰 인물인 많이 난다고 하여 고을 이름도 ‘영암’이라 하였다고 한다.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바라본 월출산은 계절마다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봄이면 천황지구 들판이 황금빛 유채꽃으로 물들고, 여름엔 도갑지구 계곡에서 맑은 물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을 단풍과 겨울 설경까지, 남도의 정서가 이 산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구정봉

 

 

# 왕인박사의 발자취, 학문의 성지

월출산 문필봉 기슭에는 또 다른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백제의 대학자 왕인박사가 학문에 전념했던 공간들이다. 왕인이 공부했다는 책굴(冊窟)과, 일본으로 건너간 뒤 후대인들이 그를 기려 새겼다는 높이 2.57m의 석인상(石人像)이 있다.

책굴은 박사가 조용히 공부했던 천연석굴로 임진왜란 때 아낙네들이 난을 피하여 길쌈을 했다고 해서 베틀골이라는 별명이 있다. 굴 안에서 왕인은 『논어』와 『천자문』을 익혔다고 전해진다.

문산재
문산재

문산재와 양사재는 박사가 일본으로 떠난 뒤 후학들이 인재를 길러낸 곳으로 월출산 중턱에 터만 남아있던 것을 복원했다. 자료에 의하면 1688년 숙종 때 구림 대동계에서 창건한 문산재는 조선시대 인재들의 학문 공간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이 공간들을 오가며 생각해본다. 1600여 년 전 이곳에서 공부한 한 학자가 바다 건너 일본 문화의 초석을 놓았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 천년 고찰 도갑사, 세월을 견뎌낸 해탈문

월출산 북서쪽 자락에 자리한 도갑사. 도갑사는 신라말에 도선국사가 지었다고 하며 고려 후기에 크게 번성했다고 전한다. 이 천년고찰의 입구에는 우리나라 산문 건축의 백미인 해탈문이 서 있다.

1962년 12월 20일 대한민국 국보 제50호로 지정되었다. 1457년 세조의 명으로 신미대사와 수미대사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대규모로 중창하여 절을 다시 크게 일으켰다. 이때 작은 절이었던 도갑사에 966칸에 달하는 건물들이 들어섰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으로 맞배지붕을 사용하고 있다. 조선초기 목조건축물로 주심포식과 다포식 공포형식이 섞여 있다. 가운데 1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렌즈를 통해 바라본 해탈문은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 피안의 세계로 들어서는 상징적 공간이다. ‘월출산도갑사’라 쓰인 현판이 달빛 아래서도 또렷하게 보일듯하다.

# 구림리, 흙과 붓의 예술

 

영암군 구림리는 남도 예술혼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영암 도기박물관과 하정웅 미술관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흙으로 빚은 도기와 붓으로 그린 예술이 공존한다.

구림리는 통일신라시대부터 도기를 생산해 온 곳이다. 국내 최초로 유약을 칠한 도기를 만들어낸 가마터가 존재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하정웅 미술관은 재일 교포 사업가이자 미술 컬렉터인 동강 하정웅 선생이 평생 수집한 작품 3,800여 점과 미술 도서 2,100여 권을 기증하여 설립된 공립미술관이다. 이 공간들은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창작의 장소로 거듭나고 있었다.

# 사계절이 빚어낸 풍경화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눈으로 바라본 영암은 한 폭의 거대한 풍경화다. 봄이면 유채꽃 물결이 월출산 자락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여름엔 푸른 계곡물이 더위를 식혀준다. 가을 단풍이 산을 붉게 물들이고, 겨울 설경이 신령한 기운을 더한다.

월출산은 호남의 5대 명산 중의 하나로 꼽히는 월출산은 광주의 무등산, 순천의 조계산과 더불어 호남지방의 삼각 지점을 형성한다. 월출산은 넓은 나주평야의 가운데에 돌출한 잔구성 산지의 형태를 취하며, 산 전체가 수석의 전시장이라고 할 만큼 암석 봉우리와 절벽 등 기암괴석이 많은 거대한 돌덩어리로 구성된다.

월출산 국립공원 드론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포착한 안개 속의 천황봉과 구정봉은 신비스러운 자연의 선물이었다. 영암의 시간은 월출산을 따라 흐른다. 백제의 학자가 걸었던 길, 천년 고찰이 지켜온 신앙, 국보가 품은 예술혼까지. 모든 것이 이 ‘달 뜨는 산’ 아래에서 꽃피웠다.

가을2
가을2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마다 월출산이 품은 천년의 이야기들이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김덕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덕일 작가
김덕일 작가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

"광주전남 지역민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남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