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80주년을 맞았지만,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그 흔적을 기록하고 미래세대에 전하기 위해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제주를 찾는다면 반드시 발걸음을 옮겨야 할 곳,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 비행장이다.
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상공 400피트에서 내려다본 알뜨르의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들판 한가운데,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비행기 격납고 20여 기가 파도처럼 굳어진 채 덩그러니 남아있다. 시간이 멈춘 듯한 그곳은 역사의 무게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 시간이 겹겹이 쌓인 증언의 땅
알뜨르에서 보낸 며칠 동안, 나는 드론을 띄워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시야에 담으며 이 땅을 샅샅이 살폈다. 한때 일본군 비행기들이 이착륙했던 활주로를 찾고, 격납고의 흔적을 하나하나 더듬으며 80여 년 전 그날을 상상했다. 알뜨르 비행장은 단순한 옛터가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상징적 공간이며, 고통과 아픔, 그리고 긴 시간의 흐름을 품은 역사의 증거물이다.
드론 카메라가 제공하는 시각은 지상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독특한 화각을 선사한다. 비행장과 관제탑이 있던 자리,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격납고들을 통해 제주의 시간이 층층이 쌓인 공간의 전모가 드러난다.

# 균열 속에서 읽는 역사의 상처
동틀 무렵 햇살을 받은 격납고 표면에 새겨진 무수한 균열들. 그것은 시간이 만들어낸 흔적이자, 제주의 고통스러운 역사와 직결된 상처였다.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강제 동원으로 고통받은 제주민들의 한이 아직도 그 자리에 서려 있다.
태평양전쟁의 아픔도, 4·3 사건의 깊은 상처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관제탑 터와 격납고, 모슬봉과 옛 활주로까지 시각적으로 담아내며 느낀 것은, 폐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도 과거와 현재가 한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 기억을 위한 증언
비행장과 주변 풍경에 남은 과거의 흔적들. 그것이야말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제주의 진짜 속살이다. 남아있는 격납고들은 마치 흐려져 가는 기억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사이에 펼쳐진 농경지를 보며, 과거의 아픔이 현재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근처 섯알오름에는 4·3 예비검속으로 희생당한 이들의 아픈 이야기가 있다. 작업을 통해 깨달은 것은, 역사적 사건들이 물리적 공간에 깊숙이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알뜨르의 격납고들은 과거가 살아 있는 기념비다.

# 기록을 통한 기억의 계승
이 사진 작업은 사라져간 이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일이며, 그 기억을 통해 우리의 방향을 제시하는 메시지를 담는 작업이다. 드론 카메라로 담아낸 이 기록들이 그 의미를 온전히 증언하는 역사의 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제주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상처를 통해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는 이유다.제주도를 방문한다면 일제강점기 알뜨르 비행기 격납고를 방문하기를 희망한다.
*알뜨르: 제주어에서 유래한 지명, ‘알’: 아래쪽을 뜻하는 말, ‘드르’: 넓은 들판을 의미하는 말. ‘알뜨르’는 ‘아래에 있는 넓은 평야’를 뜻하는 합성어입니다.
김덕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