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눈이 펑펑 내리던 지난겨울 옥동은 자기 방에 있다가 스승 윤처사가 서당 아이들을 글공부시키고 있는 대청마루 옆 커다란 방 아궁이에 이글이글 장작불을 지펴놓고는 장서각 앞으로 갔다. 마치 부풀어 오른 솜옷을 입은 듯 하얀 눈 속에 푹 파묻혀 쌓여 있는 장서각 문은 자물쇠가 잠겨있지 않았다. 옥동은 조심스럽게 그 문을 열어젖혔다. 그때 ‘삐걱!’ 하는 문 여는 소리가 날카롭게 솟아올랐다. 옥동은 아차! 하며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네 이놈! 게서 무엇을 하는 게냐?"

순간 옥동의 등 뒤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옥동은 퍼뜩 뒤돌아보았다. 스승 윤처사가 성난 얼굴로 옥동을 노기등등(怒氣騰騰)한 눈빛으로 잔뜩 노려보고 서 있었다.

"예! 스승님! 저 장서각 안에 있는 책을 읽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옥동이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뭐라? 하늘이 무엇인지 땅이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라 한 걸 그새 잊었느냐?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하는 놈이 그 장서각엔 무엇 하러 들어가는 거냐? 너 같은 놈은 거기 들어갈 자격이 없다! 어서! 썩 물러가라!"

윤처사가 뇌성벽력(雷聲霹靂)같이 사납게 고함을 쳤다.

"예예! 스스 스승님!......"

옥동이 가느다란 목소리로 겨우 대답을 하고는 그 문 앞을 물러 나왔다. 그러나 그날 이후 가슴 속에 끓어오르는 깊은 의문에 사로잡힌 옥동은 한 달 뒤 또 아무도 몰래 그 장서각 앞으로 갔다. 그 안에 있는 책을 모조리 다 읽고 싶은 불 끓는 의지가 가슴 속에서 끓어 올랐던 것이었다.

"네 이놈! 어찌하여 그 앞에서 서성거리느냐? 어서 썩 물러가라!"

순간 옥동의 등 뒤에서 스승 윤처사가 사납게 앙칼진 쇳소리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 어떻게 옥동이 장서각에 들어가려 하는 것을 스승 윤처사가 알았을까? 아마도 분명 윤처사는 옥동의 일거수일투족(一擧手一投足)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예! 스스스 스승님! 저 장서각 안에 있는 책을 모조리 다 읽고 싶습니다!"

옥동이 말했다.

"네 이놈! 사특한 마음으로 경서(經書)나 줄줄 암기(暗記)해 그 기술(技術)을 익혀 어디에다 쓰려고 그러느냐? 어려운 문자(文字)를 조금 배워 안다고 그 잘난 과거에 급제하였노라고 도시고 까불면서 높이 앉아있는 저 낯짝 번지르르한 탐학(貪虐)한 잡놈들처럼 백성의 피를 빨아 기름지고 맛있는 술과 밥을 매일 밤 차려놓고, 이쁜 계집을 줄줄이 얻어 호의호식(好衣好食)하며 ‘나 잘났다!’ 하고 큰 칼 옆구리에 차고 희희낙락(喜喜樂樂) 백성들 겁박(劫迫)해 주리 트는 못된 짓만 골라 일삼으며 우쭐거리며 살고 싶어 그러느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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