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아! 아이구! 서, 선생님! 가련한 사슴이 목숨을 살려달라 청하는데 어찌 인정(人情) 없이 못 본 척하겠습니까? 당장 숨겨서 살려주어야지요!"
"그래!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 자네의 일은 그와 같다네! 이웃 마을에 사는 동생이라는 자가 와서 딸 시집보낼 돈이 없으니 빌려 달라고 한 것은,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이 목숨을 살려달라고 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네! 당장 가진 돈이 없었다고 하면 어쩔 수 없었겠으나, 나무꾼이 나무 짐 뒤로 사슴을 숨겨주어 사냥꾼을 피해 살아나게 한 것과 같이, 마침 있는 돈을 그 동생에게 빌려주어 딸을 잘 시집보낼 수 있게 했으니 한 사람 어려운 사정을 봐주어 살려준 것이 아닌가!"
"하! 하긴, 그렇긴 하구만요. 서서 선생님!"
사내가 수긍이 간 듯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만약, 그 사냥꾼이 나무꾼 말을 믿지 않고 나무 짐을 샅샅이 뒤져 숨은 사슴을 찾아내 숨겨준 사실을 알고 ‘고얀 나무꾼 놈! 거짓말을 하였구나!’ 하고 그 화살을 자네의 심장에 겨누었다면 어찌하였겠나? 자네는 도와 달라는 사슴을 숨겨준 것을 후회하였겠나?"
윤처사가 말했다.
"으음!……아! 아이구! 서서 선생님! 사람의 도리가 어찌 그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남아(男兒) 일구이언(一口二言)은 이부지자(二父之子) 라고 들었습니다.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린 사슴을 살리려고 숨겨주고, 발각(發覺)되니 그것을 후회한다면 처음부터 아예 숨겨주지를 말았어야겠지요. 서서, 선생님!"
사내가 잠시 생각을 한 듯하다가 말했다.
"허흠! 바로 그것이네! 적어도 사람이라면 약자를, 불쌍한 자를 살려주려고 하였다면, 그로 인하여 어쩔 수 없는 불행(不幸)한 일이 초래(招來)하더라도 의연(毅然)하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그것이 사람이네! 남의 불행을 대신 내 어깨를 내밀어 매는 것! 남의 죽을 목숨을 내가 대신 끌어안는 것! 그것이 인간의 선행(善行)이라는 것일세! 자네, 이 말이 무슨 말인 줄 알겠는가?"
윤처사가 말했다.
"아! 예! 서서 선생님! 그그 그런데 서서 선생님, 그로 인해 소인이 돈이 없어 지금 형편이 많이 어려운 데요……."
사내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래! 잘 알고 있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시게! 그렇지않는다면, 어찌, 이 인간사에 선행(善行)이라는 말과 희생(犧牲)이라는 말이 있을 것이며, 성인(聖人)이나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이 이 인류사(人類史)에 있을 수가 있었겠는가?"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