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여느 때와 같이 조대감은 정오 무렵 윤처사의 집에 당도(當到)했다. 아들 옥동이 삼 년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조대감은 사내종에게 맛난 음식들을 서당으로 가져오게 해놓고 말고삐를 맡기고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서당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곳에 윤처사는 없었다. 아이들만 모여서 글공부를 하고 있었다. 혹여 그 안에 아들 옥동이 있을까 싶어 조대감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휙 휘둘러 보았다. 그러나 아들 옥동은 역시나 거기 없었다.
‘집으로 돌아갈 무렵까지 아이들과 함께 글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니?……’
조대감은 또 문득 섭섭한 마음이 가슴 깊이에서 모락모락 엄습(掩襲)해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으니……’ 하고 마음을 안심(安心)시키는 것이었다.
조대감은 아들 옥동도 옥동이었으나 윤처사가 눈에 보이지 않아 사랑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랑방 문 앞에 당도하니 거기 방안에서 두런두런 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윤처사와 웬 사내가 방 안에 있는 것이었다. 조대감은 방해하기가 싫어 그냥 사랑방 마루에 조용히 걸터앉았다. 방안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두런두런 새어 나왔다.
"선생님! 이웃 마을 동생이 지난해 딸 시집보낸다고 많은 돈을 빌려 갔는데, 설을 쇠고 바로 갚는다고 약조를 했는데 도무지 갚지를 않습니다! 새로 농사를 지으려면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이를 어찌하면 조조, 좋겠습니까?"
다급한 사내 목소리였다.
"허흠! 그래, 채무불이행(債務不履行)이라! 그렇다면 자네, 관(官)에 송사(訟事)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윤처사의 목소리였다.
"예예! 선생님! 그 동생이 가지고 있는 작은 전답(田畓)이라도 빼앗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보아하니 그 동생이라는 자가 형편이 몹시 어려운가 보는데, 당장에 송사까지야 해서야 되겠는가! 공자께서도 한번은 친구에게 많은 돈을 빌려준 사람이 찾아와서 사기(詐欺)를 당했다고 하소연하자, 오로지 재물(財物)만을 추구하고 좋아하는 친구를 사귀다가 그리되었으니, 이는 궁극적(窮極的)으로 그런 친구를 사귄 자신의 잘못이 아닌가! 라고 한탄(恨歎)하셨다네! 학문을 좋아하고 바르고 정직한 친구를 사귀었다면 그런 일은 없지 않았겠나! 그러나 자네의 상황은 이와 다르네! 내 한마디 묻겠네. 자네 ‘나무꾼과 선녀’라는 옛날이야기 잘 알지?"
"아! 그 이야기 어려서 할머니에게 들어서 잘 알지요!"
"그래, 만약 자네가 그때 그 나무꾼이었다면, 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는데, 활을 든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나무꾼님! 저를 좀 숨겨서 살려주십시오!’ 한다면 어찌하겠나?"
윤처사가 조용히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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