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새벽까지 굳은 결심(決心)을 하며 마음을 정한 조대감은 오늘은 기필코 아들 옥동을 집으로 데려가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었다. 나무꾼에 쟁기질 꾼에 이제는 죽은 송장을 다루는 일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 집에 더 있게 했다가는 아들 옥동을 아예 망쳐버릴 것이라는, 깊은 위기의식(危機意識)을 조대감은 심각(深刻)하게 각성(覺醒)한 것이었다.
수탁이 홰를 치며 우는 계명축시(鷄鳴丑時)가 지나고 동이 터올 어둑한 새벽녘 옥동이 부스스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옥동이 일어날 것을 기다리며 그때까지 끓는 분노로 잠을 이루지 못한 조대감은 이불 속으로 손을 뻗쳐 까칠한 옥동의 손을 잡으며 자신도 몰래 울컥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옥동아! 일어났느냐? 이 아비가 큰 잘못을 했구나!"
"아! 아버님, 일어나셨나요? 그런데, 그 무슨 말씀입니까?"
옥동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조대감도 이불을 걷고 일어나 옥동을 마주 보고 앉으며 차분히 말했다.
"옥동아! 네가 글공부는 하지 않고 밖으로 쏘다니며 말썽만 일으키고 놀기에만 열중하니 아버지 친구를 스승으로 삼아 삼 년을 기약하고 보냈는데 글공부는커녕 일만 죽으라고 시켜대니 이 아비 생각하기에 어린 너 생고생만 시키고 길을 잘못 든 것 같으니 오늘 아침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구나!"
옥동이 한동안 말없이 아버지 조대감을 바라보고 있다가 단정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입을 열었다.
"예! 아버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만 소자, 스승님과 약속한 삼년기한(三年期限)을 다 채우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들은 조대감은 깜짝 놀란 얼굴로 옥동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 뭐라! 나무꾼에 쟁기질 꾼, 지금은 죽은 사람, 시체(屍體)를 다루어야 하는데 그 일이 좋단 말이냐? 이 아비는 너에게 저 무식(無識)한 종놈들이나 하는 그 천(賤)하고 험악(險惡)한 궂은일을 절대로 시키고 싶지 않구나! 옥동아! 이 아비와 오늘 당장 집으로 돌아가자구나! 이제 이 아비! 너에게 다시는 글공부하라고 하지 않을 테니,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자유(自由)롭게 살기 바란다. 이 아비, 귀한 너를 고생(苦生)만 시켜 후회막심(後悔莫甚)하단다!"
조대감은 순간 아들 옥동의 손을 부여잡고 뜨건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예! 아버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만, 저는 어머님과 헤어질 때 아버님의 친구 스승님의 말씀을 절대로 어기지 않을 것을 굳게 약조(約條)하였습니다."
옥동이 말을 잠시 끊고 아버지 조대감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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