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진소방(중국 사천대학 졸업)

윤처사가 옥동을 바라보며 걸걸한 목소리로 사납게 호통을 치며 말했다.
"예! 스승님, 잘 알겠습니다"
옥동이 말을 하고는 물러 나왔다.
그날 이후로 옥동은 사람이 죽은 초상난 집을 두루 찾아다니며 상두꾼 노릇을 하면서 시체를 장사지내는 일을 해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이런! 내 아들이 상두꾼이라! 스승이라는 자가 어찌 그리 천(賤)한 일을 시킨단 말이냐? 어어흠!……또 다른 일은 없었더냐?"
조대감은 끓어오르는 울분을 그만 옥동 앞에서 참지 못하고 입 밖으로 토해내고 말았다.
"예! 아버님, 실은 소자가 스승님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 궁금하여 저도 글공부를 하고 싶어 비가 오는 일 없는 날, 두 번이나 서당으로 갔는데 그때 스승님께서 버럭 화를 내며, 버선발로 쫓아 내려와 ‘너는 여기는 절대로 얼씬거리지 말라!’고 일렀는데 ‘왜 왔느냐?’고 사납게 호통을 치시면서 가지 않으려는 저에게 몽둥이를 들고 와 내리치며 기어코 쫓아냈습니다!"
옥동이 그때 그것이 많이 억울했던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뭐라? 그그그, 그래!……"
조대감은 순간 부아가 폭발지경(暴發地境)에까지 이르는 것이었다. 글공부를 잘 시키라고 삼년기약(三年期約)하고 귀한 외동아들을 보냈는데 첫해는 하늘 천(天)이 무엇인가 찾으라고 산에 나무지게 지고 나무꾼 노릇 시키고, 두 해째는 땅 지(地)가 무엇인가 찾으라고 황소 몰고 논밭 쟁기질을 시키더니, 세 해째는 사람인(人)이 무엇인가 찾아보라고 여기저기 초상난 집 상두꾼에, 죽은 사람들 파묻고 무덤 만드는 사람 하는 일 중에 가장 천하디천한 일을 시킨단 말인가! ‘에 에잇! 이 빌어먹을 놈의 윤처사! 내 아들이 죽은 사람 송장 뒤치다꺼리하는 일까지 하게 하다니! 이는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혹여, 이 자가 미친 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번쩍 들어 조대감은 가슴이 벌렁벌렁 참지 못할 지경에 까지 이르고 말았던 것이었다.
또한, 아들 옥동을 보아하니 이 집에 와서 궂은일만 하다 보니 여느 종놈들처럼 손이 거칠어 뭉툭해졌고, 얼굴도 대가(大家)의 참신서생(斬新書生) 도련님답지 않게 시꺼멓게 타 버렸지 않은가! 누가 보면 영락없는 미천(微賤)한 상놈이 아닌가! 아서라! 여기서 그만 저 윤처사와의 인연을 아예 뚝! 잘라 끊어 버리고 당장 내일 아침 집으로 데려가야 아들 옥동의 장래신상(將來身上)에 이롭지 않겠는가! 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조대감은 하는 것이었다.
어느새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옥동은 일이 고되었던지 잠이 들었는데, 그럴수록 조대감은 불같은 분노가 가슴에 들끓어 이가 벅벅 갈리는 것이었다. 친구가 좋다고 참으로 사람 믿어서는 아니 되는구나! 귀한 아들 맡겨 신세 버리고 급기야는 날벼락 맞는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조대감은 자신이 아들 옥동을 윤처사에게 맡긴 것을, 깊이 후회(後悔)하기에까지 이른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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