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줌의 쌀을 넣고 두어 됫박 샘물을 퍼서 부었다. 작은 솥이 가득 찼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어미는 끓였다. 다 헤진 주걱끝이 더 헤져라 눌지 않도록 저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냄새는 번져갔다.
아이들은 재잘거렸다. 즐거워했다. 어미는 마음이 편해졌고 허리를 폈다. 그러나 아이들은 철이 없었다. 어미는 속이 탔지만 가난은 어쩔수 없었고 마음은 또다시 무너져 내렸다.
다시 죽(粥)을 끓여야만 했다. 수확이 끝난 최부잣집 텃논을 샅샅이 뒤졌다. 쭉정이라도 구할 요량이었다. 귓가를 맴도는 아이들 소리에 다시 허리를 굽혔다. 벌건 대낮이었지만 눈에 불을 켰다. 하루 넘기기가 개구리 오척(尺) 높이의 담 넘기 보다 어려웠다.
그랬다. 잘먹어야 하루 두 끼가 정량이었던 시절, ‘죽’은 그렇게 일상에서 가족의 생명끈을 이어준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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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죽’은 가족외식의 한 축이다. 전통을 이으면서도 영양과 맛을 갖췄다. 광주에도 등장했다.
광주시 서구 화정동 서광주세무서 후문 건너편 ‘안성(安成)죽’(대표 박정희).
문을 연지 한달 남짓. 전통건강죽으로는 특전복죽을 비롯해 전복죽, 녹두죽, 잣죽, 흑임자죽, 녹차죽, 호박죽, 팥죽이 있다. 영양맛죽으로는 백합죽과 낙지죽, 해물죽, 버섯굴죽, 새우죽, 쇠고기버섯죽, 참치야채죽, 야채죽이 있다. 종류가 다양하다.
먼저 야채죽. 호박과 당근, 부추, 양파, 표고버섯 등을 콩알보다 작게 다지고 또 다졌다. 과립형이다. 육수는 무와 대파, 다시마, 양파에다 파뿌리 등을 넣고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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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불에 끓였다가 은근한 불로 1시간 가량 서서히 끓였다. 이를 식혀뒀다가 육수로 사용한다.
늦게 익는 재료부터 순서대로 넣은뒤 잘 저어야 한다. 한 눈을 팔지않고 오로지 젓는다. 눌지않도록. 재료들의 색깔이 점점 변해가고 10여분에 이르면 불을 줄이고 이를 내놓는다.
그릇은 대접이다. 양이 많다. 김가루와 참깻가루가 얹혀져 있다. 이를 살살 숟가락으로 섞었다. 젓기 시작하자 약하게 피어오르던 김이 모락모락 났다. 속은 뜨겁다는 얘기다.
무엇무엇을 할때 ‘식은 죽 먹기’라고들 하지만, 죽은 따뜻하게 먹어야 제 맛을 느낄수 있다. 뜨거우므로 숟가락으로 푹 떠서 먹기보다 숟가락으로 뜰 수 있는 양의 절반이하 정도를 떠서 먹는게 정상이다. 한꺼번에 많이 떠서 먹으면 죽 맛을 잘 모를 뿐더러 진짜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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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루와 참깻가루가 섞이면서 각종 야채들 특유의 색깔과 함께 향긋한 내음이 그릇 주위를 맴돌았다. 코를 갖다대고 한 숟갈 떴다. 가볍게 입안에 넣고 따스한 기운과 향을 음미했다. 부드럽고 담백했다. 당근은 사극사극 제 몫을 했고 부추는 신선함을 전했다.
떠먹어도 떠먹어도 양은 제자리.
밑반찬으로 손을 옮겼다.
‘안성죽’의 밑반찬은 주인 박정희씨의 솜씨와 연구 결과물. 동치미와 김치, 쇠고기장조림, 오징어젓이다.
우선 동치미. 자세히 밝힐순 없지만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짜지 않게 담갔다. 마늘과 생강, 대파 등으로 조리한 뒤 하룻밤을 재웠다. 맛이 들도록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역시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 조금 간기를 느낄 정도. 싸각싸각 씹히는 무은 얇게 썰려 맛이 잘 들었고 먹기에도 편했다.
김치는 자칫 심심할수 있는 죽에다 확실한 자극을 주는 촉매제다. 매콤함보다 매운 맛이 강했다. 캡사이신 성분이 많아 톡 쏘는 고추 탓이렸다. 새우젓갈을 넣어 시원한 맛 또한 제법이다. 죽을 두어번 더 먹었더니 매운 혀가 이내 잠잠해졌다.
쇠고리장조림은 암소한우 살코기와 꽈리고추가 재료다. 간장으로 조리했지만 짜지않다. 간식으로 먹어도 괜찮을 정도다.
오징어 젓갈은 새콤달콤하다. 고추장과 고춧가루, 물엿, 식초 등으로 버무렸다.
다음은 전복죽. 바위에 은신하며 천연미네랄을 풍부하게 함유한 전복이 가장 중요한 재료다. 역시 전복을 잘게 썰고 표고버섯으로 궁합을 맞췄다. 밥알과 버섯은 언제 씹힌지도 모르게 넘어갔다. 숟가락을 뜰 때마다 전복 낱알이 씹혔다. 쫀득쫀득했다. 서너숟갈 계속 이어졌고 그때마다 어금니사이에 있었다. 든든했다. 전복죽에는 쇠고기장조림이 어울렸다. 해산물과 육고기조림이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짭짤한 맛을 선보였다.
새우죽의 새우는 잔뜩 웅크렸다. 냉동이 아닌 생새우를 일일이 손으로 까고 데쳤다. 맛과 영양이 달아나지 않고 고스란히 남았다. 붉은 생명선이 생새우를 감돌았고 그대로 웅크렸다. 어금니로 살짝 물었더니 익힌 생살이 쫀쫀한 맛으로 부응했다. 포근하면서 부드러운 맛이다.
고단백 저칼로리의 대명사인 새우죽은 김치와 어울렸다. 새우 역시 양이 많아 뜰 때마다 생새우가 한두개, 두세개 건졌다. 애쓰는 것은 이(齒), 제일 행복한 것은 혀, 동치미 국물로 죽맛을 배가시켰다.
‘안성죽’의 메뉴가운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참치야채죽과 쇠고기버섯죽, 새우죽 순이다. 특히 참치야채죽에 들어가는 참치는 참치의 기름기를 모두 빼는 대신 참치살코기맛은 그대로 살렸다. 이어 깨소금으로 양념을 한 뒤 죽으로 내놓는다. 쇠고기버섯죽은 암소한우 살코기를 갈아서 만들어 영양 만점이다.
이밖에 전복을 포함해 ‘안성죽’이 내놓는 모든 음식 재료는 매일 아침 풍암동 공판장에서 박 대표가 직접 고른다. 모든 재료는 국내가 원산지이며 신선함이 가장 기본적인 선택기준이다.
평소 건강에 관심을 많이 가져왔다는 박 대표는 “고단백 저칼로리로 만든 영양맛죽을 제공할수 있어 저도 기분이 좋다”면서 “양껏 먹어도 부담이 없고 가벼운 느낌을 주는게 영양맛죽의 최대 강점”이라고 말했다.
이때 옆 식탁이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까르르 까르르, 재잘재잘, 기말고사가 끝났다며 ‘안성죽’을 찾은 상무중 3학년 여학생들이었다. 조형윤 양은 양 많고 값이 싼 팥죽을, 강승희 양은 최고의 맛죽은 역시 참치야채죽이라며 으스댔다.
‘안성죽’은 포장판매도 한다. (문의, 374-7009, 010-2338-7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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